본문 바로가기

시리즈

[교육에 ‘노동’은 없다]③교사라는 이름의 노동자...반노동·반인권 온상이 된 학교라는 일터


서울에 있는 한 공립 남녀공학 중학교. 이 학교에는 휴직중인 교사를 제외하고 총 52명의 ‘선생님’이 근무한다. 물론 선생님이라 불린다고 해서 다 같은 교사는 아니다. ‘특정 교과를 한시적으로 담당할 필요가 있을 때’ 채용하는 기간제교사가 이 가운데 8명, 영어회화전문강사 등 ‘강사’가 8명이다. 

행정업무를 하는 직원은 총 16명, 이 중 11명은 무기계약직이거나 비정규직인 학교회계직 노동자다. 교사 3명 중 1명, 행정직원 대부분이 정규직 노동자이 아닌 이 학교의 풍경은 그다지 새롭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아이들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배워야 할 학교라는 공간은 이미 수많은 직종의 비정규직과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이 일하는 ‘비정규직 백화점’이 된 지 오래다. 

학교 안 노동자 10명 중 4명 ‘비정규직’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와 행정업무·수업지원 등의 업무를 하는 직원들이 함께 일한다. 교사는 정년을 보장받는 정규직 교원과 비정규직인 기간제 교원으로 나뉜다. 교원이 아닌 영어회화전문강사, 스포츠강사, 방과후강사, 교과교실제강사 등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행정업무를 하는 직원들은 또 교육행정직 공무원(사립학교의 경우 정규직 직원)과 비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인 ‘학교회계직’ 노동자들로 나뉜다. 전산업무, 과학실험 보조업무 등을 하는 교육실무사, 행정보조, 시설관리 등을 하는 행정실무사, 급식업무를 하는 영양사와 조리사 등 급식실무사, 돌봄교실을 맡는 돌봄전담사, 사회복지 업무를 하는 복지실무사 등 다양한 업무형태의 50여개 직종이 있다. 

학교비정규직노조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국 학교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무기계약직은 학교회계직 약 14만1000명, 비정규직 강사 16만5000명, 파견·용역 2만7000명, 기간제 교사 4만7000명 등 약 38만명 수준(무기계약직 포함)이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의 41%에 달한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다]조리사들, 뼈품 팔아 반찬 하나라도 더 내주는 데 그냥 동네 아줌마라니

이렇게 다종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학교에서 일하게 된 것은 학교의 업무 범위가 넓어지고 그에 따라 필요한 사람들이 늘었는데 교육당국이 그 자리를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채워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도시락을 싸오는 대신 급식을 먹게 되면서 채용한 조리사들, 교원 업무 경감을 위해 늘린 교육실무사와 행정실무사들, 학교가 돌봄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서 채용한 돌봄전담사들, 학교에 도서관 설치가 의무화되면서 늘어난 사서들이 대체로 비정규직이거나 ‘비정규직과 다를 바 없는 처지의’ 무기계약직이다.

때로는 정교하지 못하거나 실패한 정책이 비정규직을 양산하기도 했다. 교원 수급정책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자 원래 병가·휴직자를 대체하는 역할인 기간제교사들은 담임업무를 맡는 등 상시지속적 업무를 하는 일이 흔해졌다. 이명박 정부는 초등학교 영어수업시수를 무리하게 늘리고 비정규직 영어회화전문강사들을 뽑아 모자란 영어교사 자리를 채웠다. 

‘비정규직 차별’ 목격하며 자라는 아이들 

아이들은 학교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명확하게 그어진 넘을 수 없는 선을 목격하며 자란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정규직이냐 아니냐에 따라 처우 차이가 크다. 지난해 학교 영양사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정규직 ‘영양교사’와 같은 업무를 하는데도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며 진정을 냈다. 10년차 영양사 임금은 영양교사 임금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학교비정규직노조의 자체 집계에 따르면 학교에서 일하는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공무원 최하위 직급의 60% 수준 임금을 받는다.

승진과 승급 대상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아무리 일을 잘해도 성과급이나 명절휴가비 등도 받지 못한다. 불안정한 지위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일선 중학교 행정실에서 행정실무사로 근무하는 ㄱ씨는 “종합감사 때 경고를 받아야 할 공무원이 있었는데 ‘승진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경고를 줄 수 없다며 나에게 경고를 준 일도 있었다”고 최근 한 기자회견 자리에서 털어놨다.

방학이면 실업자 되는 기간제 교사들 “쪼개기 계약이 가장 큰 차별”

계약직으로 2년 이상 일하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법이 있지만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지도 못하는 이들도 숱하다. 학교들이 무기계약직 전환을 갖가지 방법으로 피해가기 때문이다. 방학을 빼고 1년을 넘지 않게 쪼개기 계약을 맺어 무기계약직 전환과 퇴직금 지급 의무를 피해가기도 하고, 2년 이상 근무해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필요가 없는 초단시간근로자들에게 초과노동을 시키기도 한다. 

지난달 학교비정규직노조 기자회견에 나온 돌봄전담사 ㄴ씨는 한 학교에서 4년 동안 일했지만 무기계약직이 되지 못했다. 주 15시간 미만 근무하는 초단시간근로자인데다, 학교가 10개월씩 쪼개가며 그와 계약을 맺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학교로부터 “업무를 위탁으로 전환할 예정이니 다른 자리를 알아보라”는 통보를 받았다. 

지난해 정부는 일부 직종 학교비정규직들이 ‘향후 2년 이상 상시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업무’에 종사할 경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도록 지침을 정했다. 하지만 실제로 현재 전환심의절차가 종료된 7개 교육청(경북, 대구, 울산, 경기, 인천, 서울, 부산)의 정규직 전환율은 8.7%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에 '노동'은 없다]교사라는 이름의 노동자...반노동·반인권 온상이 된 학교라는 일터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도 빠진 기간제교사의 취약한 지위는 아이들에게 좀더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기간제교사 역시 방학을 빼고 1년을 넘지 않게 쪼개기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 기간제교사를 담임으로 맞은 아이들은 12월 방학식과 동시에 담임선생님과 헤어지고 2월에 단기 시간강사와 함께 학기를 마무리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방학식 이후에 학부모가 아이 문제로 교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상담할 담임교사가 없는 셈이다. 

정규직 교사들도…‘노동 3권’ 대신 ‘0.5권’ 

정규직 교사들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결성되기 전부터 교사들의 노동 3권을 보장하라는 요구가 빗발쳤지만, 지난 30년간 이 구호는 실현되기는커녕 후퇴했다. 교사들은 사용자에 대항해 파업이나 태업을 할 권리인 단체행동권이 없다. 교원노조법은 ‘노조와 조합원은 파업·태업 등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하는 일체의 쟁의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고 있다. 

언론인들은 공정언론을 지키기 위해 파업을 하고,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성과연봉제 도입 철회를 요구하며 파업을 할 수 있지만 교사들은 교육개혁을 내걸고 파업을 할 수 없다. 노동조합을 결성해 운영할 권리인 단결권은 1999년 교원노조 합법화 이후 법적으로 보장됐지만, 2013년 10월 정부가 전교조에 해직자 9명이 조합원으로 소속돼 있다는 이유로 법외노조 통보를 한 뒤로 사실상 무력화됐다. 교사들이 전교조 전임자 활동을 하느라 휴직을 신청하면 해임 등 징계를 받는다. 2013년 이후 전임자로 일하다 해직된 교사만 34명이다. 

[사설]ILO 핵심협약 비준,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부터 바꾸자 

2015년 헌법재판소가 전교조 법외노조 조치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을 때 소수의견을 냈던 김이수 당시 헌법재판관은 “해직교사를 조합원에서 제외하도록 한 조항이 교원의 단결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단체교섭권 역시 ‘교육정책과 교육과정에 대한 사항’은 단체교섭 사항이 아니라고 교육부가 못박은데다, 전교조가 법적인 노조 지위를 잃으면서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한도 상실한 상태다. “교사들은 노동 3권이 아니라 노동 0.5권만 가지고 있다”는 말이 교사들 사이에서 나온다.

교사들은 점점 ‘노동’에서 멀어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 9만명 이상으로 늘었던 전교조 조합원 수는 법외화 같은 부침을 겪은데다 젊은 교사들의 관심도 줄어들면서 5만명대로 줄어들었다. 한 일선 중학교 교사는 “교사도 노동자라는 인식 자체를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교사들이 아주 많고, 그러다 보니 노동자로서의 보편적·기본적 권리를 교과 특성에 맞춰 수업을 설계하고 이야기를 나눌 토대가 마련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