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랑 기자
몇해 전 여성 탈의실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 비난을 받은 기업이 이번엔 최저임금 인상을 핑계삼아 사업장을 닫고 여성 노동자를 무더기 배치전환하고 작업장을 폐쇄해 논란이 되고 있다.
라벨(견출지)을 만들어파는 ‘레이테크코리아’라는 회사의 포장부 여성 노동자들은 7일까지 16일째 공장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을 한달 여 앞둔 지난해 11월27일 사측은 포장부를 없애고 업무를 외주로 돌리겠다고 통보했다. 회사 대표 임모씨(34)는 노동자들에게 “회사 사정도 어렵고 최저임금도 많이 올라 부담이 크다”며 앞으로 영업부 일을 하라고 했다.
라벨 제조·판매업체 레이테크코리아 포장부 노동자들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미랑 기자
포장부 노동자 21명은 모두 중·장년 여성이다. 가장 젊은 직원이 만 45세이고, 올해 60세로 정년을 앞둔 직원도 세 명이나 된다.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짧게는 6년, 길게는 10년정도 라벨을 비닐봉투에 나눠 담는 작업을 해왔다. 2011년부터 이곳에서 일한 강모씨(52)는 영업부로 가라는 대표의 말을 듣고 “나가란 소리구나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했다. 황모씨(53)는 “최저임금이 올라 살림이 좀 나아지겠구나 싶었는데 눈앞이 캄캄했다”고 했다. 2000년 설립된 이 회사는 전체 직원이 53명이며, 포장부 직원이 그중 40%를 차지한다.
갑작스레 업무를 바꾸는 데에 반발한 노동자들은 포장부에서 계속 일하게 해 달라며 지난달 23일부터 서울 약수동의 작업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사흘 후인 26일, 사측은 작업장을 폐쇄한다고 통보하고 포장부 소속 노동자를 전부 영업부로 발령했다. 정작 노동자들이 서울 본사로 찾아가자 아무도 업무를 주지 않았다. 영업부에서도 최근 직원들이 여럿 그만뒀는데, 그리로 배치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이들은 말한다. 금속노조법률원 박현희 노무사는 “배치전환을 할 때는 우선 지원자를 받고, 지원자가 없으면 당사자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이런 절차가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최저임금 인상을 빌미로 구조조정을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을 닫은 레이테크코리아 서울 약수동 포장부 작업장에 노동자들이 붙인 문구. 노조 제공.
정부는 직원 30명 미만인 영세기업의 저임금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최저임금 인상분을 보완할 ‘일자리안정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금속노조·민주노총·정의당 여성위원회, 여성·엄마민중당, 서울여성회 등은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 인상을 피하고 정부지원금을 받기 위한 사측의 꼼수 때문에 길거리로 내몰릴 수는 없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이들은 여성가족부가 지난달 말부터 운영하고 있는 ‘민관합동 최저임금 현장대책반’에도 이런 내용의 탄원서를 냈다.
레이테크코리아는 2013년에는 정규직들을 비정규직으로 바꾸려다가 여성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해 맞서자 계획을 철회했다. 이후 작업장을 일방적으로 옮긴 뒤 여성들이 옷을 갈아입는 휴게실에 CCTV를 설치한 사실이 알려져 인권침해라는 비난을 샀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이 회사를 2015년 ‘올해의 성평등 걸림돌’에 선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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