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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미혼모와 아이를 구하라]“가족이 돕고 회사가 안 자르면 왜 기초수급자 되겠나”

미국으로 연수를 가는 10대 딸아이를 두고 부모가 고민에 빠진다. “혹시 남자친구를 사귀어서 임신이라도 하면 어떡하지?” “하는 수 없지, 뭐. 50살이 다 된 내가 임신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엄마의 말이다. 독일에 사는 작가 임혜지씨가 <고등어를 금하노라>라는 에세이집에 쓴 글이다. 한국에서라면 이렇게 ‘쿨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부모가 있을까.

끊이지 않는 영아 유기를 막기 위해 정부는 한부모와 청소년부모 가정을 지원할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 당연히 예산도 늘려야 한다. 2006년부터 10년 이상 미혼모 지원 활동을 해온 박영미 전 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57)는 정부가 이런 가정에 지원하는 세금을 ‘차별에 따른 비용’으로 본다. “비혼 양육 가정에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닙니다. 혼인 여부에 따라 차별하지 말고 원래 가진 권리를 보장하라는 겁니다. 애초에 차별이 없었다면 공적 자원을 따로 쏟아붓지 않아도 아이를 키우며 잘 살아갈 수 있거든요.”

서울시와 서대문구, 구세군두리홈이 2014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의 미혼모 공동육아방에서 엄마들이 아이를 돌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아이를 가진 학생은 학습권을 빼앗기고 학교를 떠나도록 강요받는다. 결혼제도 바깥에서 임신한 여성은 퇴사를 종용받든 수군거림에 스스로 사표를 내든 직장에서 밀려난다. 생계가 막막하니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한다. 떨어지면 절망하고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진다. 혼자서라도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한 이들에게 가혹하게 되풀이되는 레퍼토리다. 법에서는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임신한 노동자는 누구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받도록 하고 있는데, 사업주와 동료 노동자는 물론 임신부 본인도 자신의 권리를 잘 모른다. 박 전 대표는 “이런 상황을 방치해온 정부 책임이 크다”고 말한다.

편견은 비혼 부모를 가족과도 멀어지게 만든다. 자식이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으면 얼굴을 들 수 없다는 인식 탓이다. “상담하러 온 부모님들에게 ‘당신 딸을 자랑스러워하셔도 됩니다’라고 말씀드리면 정말 태도가 달라져요. 부모님이 도와주고 회사에서 자르지 않으면 미혼모가 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겠습니까.”

아기는 엄마 혼자서 만드는 게 아니다.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양육 책임은 아이를 만든 두 사람이 함께 져야 맞다. 박 전 대표는 “혼인관계만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양육 책임을 쌍방이 공동부담해야 한다는 인식이 오히려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부모 가운데 한쪽이 양육을 맡을 경우 국가가 대신 나서서 상대방에게 양육비를 받아주는 양육비이행제도가 2015년 도입됐지만 지키지 않아도 벌칙이 약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양육비를 제대로 주지 않으면 출국금지나 운전면허 정지 등 실질적인 징벌을 가하는 미국 같은 나라와는 다르다. 박 전 대표는 “미혼모 혼자 아이 키우는 부담을 떠안도록 내버려둘 것이 아니라 정부가 책임지고 아빠로 하여금 의무를 다하도록 해야 한다”며 “부모가 책임을 진다는 인식이 굳어지면 성관계에서 남성이 느끼는 책임감도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짜인 복지제도에 필요한 이들이 접근할 수 없게 만드는 것도 차별이다. 지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혼외 가정이 냉대 속에서 좌절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상담을 요청하거나 지원책을 문의했다가 ‘무책임하다’ ‘부도덕하다’는 반응을 접하면 아이를 포기하는 편을 상상하기 쉽다는 것이다. 김은지 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부모·청소년한부모를 위한 정책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복지 서비스를 당사자에게 전달하는 체계를 시급히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는 한부모상담전화(1644-6621), 미혼부자거점기관(전국 17개소) 등을 설치해 비혼 부모들을 상담하고 있지만 이를 모르는 경우가 많고, 여가부와 보건복지부로 흩어져 있는 지원정책들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김 연구위원은 “임신한 여성이 초기부터 어떤 결정을 할지 주체적으로 판단하려면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쉽게 안내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정부가 제공하는 임신·출산 관련 서비스를 잘 알고 비혼 임신을 깊이 이해하는 전문성 있는 공무원을 양성해 주민센터처럼 접근이 쉬운 곳에서 업무를 전담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 부모’에게 닿기 힘든 부모 교육

홍진수·최미랑 기자 soo43@kyunghyang.com

화재로 숨진 ‘광주 삼남매’의 부모는 어린 나이에 아기들을 낳았고, 기본적인 생활도 지켜내지 못한 채 위기로 치달았다. 영아 유기나 잔혹한 아동학대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부모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준비되지 않은 부모들’에게 정부가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비극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교육이 가장 필요한 부모들, 특히 어린 나이에 아기를 낳아 법적·제도적으로 지원을 받을 방법을 모르는 부모들은 그런 교육이나 도움받을 통로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립된 섬이나 다름없는 이들에게 국가와 지역·시민사회, 가족의 손길이 닿아야만 ‘위기의 아기들’을 구할 수 있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부모교육을 시작한 것은 아동학대가 불거진 2016년이다. 보건복지부 육아종합지원센터와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이 이를 담당한다. 0~7세 미취학 아동의 보육을 지원하는 육아종합지원센터는 중앙 1곳, 전국 시·도 18곳, 시·군·구 81곳으로 총 100곳에 설립돼 있다. 서울은 25개 자치구 모두에 지역센터가 있다. 이 센터들은 2016년 부모들을 상대로 ‘클로버 교육’을 시작해 그해에만 12만여명이 교육을 들었다. 지난해에는 4가지 프로그램을 더 추가했고 수강 인원도 14만여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곳 교육은 ‘일반적인 부모’를 대상으로 한 것이며 ‘취약가족’을 위한 별도 프로그램은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자녀와의 소통 등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신청해 15~20명 정도 함께 교육을 듣는다”며 “취약가족에게는 직접 상담 등이 필요할 텐데 그런 맞춤형 프로그램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건강가정진흥원의 상담 프로그램은 좀 더 다양하다. 전국 151곳 건강가정지원센터의 전문상담사가 문제를 겪는 가정에 직접 찾아가 20~25회에 걸쳐 상담과 교육을 해주는 가족행복드림 사업을 한다. 영·유아기나 학령기 자녀가 있는 3~5개 가정이 함께 신청하면 10회에 걸쳐 전문가에게서 부모 역할과 자녀양육 기술을 제공받고, 심리검사·상담 등을 받을 수 있는 ‘어깨동무 부모교실’도 있다.

하지만 어린 부모들이나 미혼모는 찾아가는 교육의 수혜자가 되기 쉽지 않다. 건강가정지원센터의 가족교육 프로그램들도 주로 예비부부나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하거나 아동·청소년기 가족교육, 중년기 가족교육 등 결혼제도를 전제로 둔 것들이기 때문이다. 

미혼모자 보호시설에 머무는 엄마는 교육 대상이 아니며, 시설 밖에서 사는 미혼모(재가미혼모)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스스로 연락하거나 주변에서 교육을 의뢰하면 좋지만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미혼 부모가 10대 청소년이라면 파악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이범수 서울 구로건강가정지원센터 팀장(사회복지사)은 “찾아가는 부모교육 사업을 하면서 다양한 가정을 만났지만 청소년 한부모를 대상으로 해본 적은 거의 없다”며 “일단 지역사회에 존재 자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계기관이 찾아내 도우려 해도 본인이 거부하면 개입할 수 없다. 이귀란 경기 안산건강가정지원센터 팀장은 “어머니보다는 아버지들이 많이 거부한다”며 “스스로 상담을 약속하고 노력할 의지가 있을 때에는 상황을 개선할 수 있지만 부모들이 거부하면 어려워진다”고 전했다. 이범수 팀장은 “교육이나 상담 서비스는 필요 없으니 돈만 주면 좋겠다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교육을 통해 세상과 손잡기 위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려준다 해도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부모와 아이들을 당당하게 세상 속으로 나오게 할 정책과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도 정답은 알고 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김상희 부위원장은 지난 7일 ‘가족 다양성 태스크포스(TF)’ 출범을 발표하면서 “혼자 아이를 낳더라도 아이를 키우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획기적인 지원과 함께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일단 첫발을 뗄 여건은 갖춰진 셈이다. 가족, 여성, 미혼모, 입양 등 분야별 전문가, 활동가와 여가부, 복지부 등 관계부처가 참여한 TF는 올 상반기 내에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