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리즈

[GM 사태, 어디로](2)4년 전부터 ‘철수’ 경고음…제조업 재편 손 놓고 있다 ‘된서리’

임지선·송윤경 기자 vision@kyunghyang.com

39억달러. 한국지엠 군산공장에서만 2011년 이만큼의 차를 해외에 팔았다. 군산 수출액의 절반, 전북 수출액의 30%가 넘었다. 부평, 창원, 군산, 보령에 공장을 둔 한국지엠은 글로벌 GM 본사가 판매하는 차량의 5분의 1을 만들고 있었다. 한국 공장들은 쉼없이 돌아갔다.

불과 3년 후인 2014년, 군산공장의 물량이 뚝 떨어져 수출액은 반토막이 났다. 오는 5월엔 아예 공장이 폐쇄된다고 한다. 몇 년 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준공식에 총리까지 다녀간 공장

1997년 4월21일 전북 군산시 소룡동에서 당시 고건 총리와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참석한 대규모 행사가 열렸다. 대우차 군산종합공장 준공식이었다. 막 지어진 공장이 처음 생산한 차는 ‘누비라’였다. 고 전 총리가 누비라의 보닛에 기념 사인을 했다.

지난 20일 전북 군산 한국지엠 공장의 문이 닫혀 있다. 한때 군산 전체 수출액의 절반에 이르는 자동차를 만들었던 이 공장은 생산물량이 점점 줄어들다가 결국 가동이 중단됐으며 5월 폐쇄가 결정됐다. 연합뉴스


그 2년 뒤 대우는 무너졌다. 구조조정은 실패로 돌아가고 2000년 최종적으로 부도 처리됐다. 1700여명이 해고됐다. 미국 GM이 대우차를 인수했고 2002년 GM대우가 탄생했다. GM이 지분의 67%를, 산업은행이 28%를 가졌다. GM대우는 2011년 한국지엠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지금은 산은 지분이 17%로 줄었지만 여전히 2대 주주다.

대우차가 GM의 손에 들어간 2002년 이후의 16년은 ‘도약’과 ‘고사’의 시기로 양분된다. GM에 인수된 이후 3년 만에 회사는 흑자로 돌아섰고 2006년엔 부도 당시 회사를 떠난 이들이 거의 모두 복직했다. 이때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대거 뽑았다. 생산물량이 많이 배정됐고 GM 안에서 한국 자회사의 위상이 높아졌다. 노동자들이 2교대로 쉼없이 일하던 시기가 대략 2012년까지 이어졌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2008년부터 먹구름이 몰려왔다. GM 본사는 미국 정부에 파산보호 신청을 했고 10조원을 지원받았다. 미국 내에서도 경영실패 구멍을 세금으로 메워주냐는 지적이 많았지만 어쨌든 GM은 2013년 구제금융을 졸업했다. 한국지엠을 보는 본사의 눈길이 차가워지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부터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한국지엠이 방만하거나 생산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본사의 글로벌 전략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직후까지만 해도 GM은 ‘온 세상에서 팔리는 차(A Brand for Every Place)’라는 전략을 갖고 있었다. “영국에선 쉐보레와 사브와 캐딜락을, 유럽 대륙에선 오펠을, 중국에선 뷰익을, 두바이에선 GMC를, 호주에선 홀덴을 파는 식”(뉴욕타임스)이었다.

GM은 자율주행차와 전기차에 초점을 맞추고 제조업이 아닌 ‘자동차 서비스업’으로의 변신을 추진했다. 기존 생산기지와 시장 중에서도 일부를 포기하고 ‘되는 시장, 되는 브랜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일부에선 한국지엠의 임금이 너무 높았다, 효율성이 낮았다 하지만 2012년까지 본사 물량의 5분의 1을 한국에서 감당하던 터였다. 이항구 한국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지엠은 본사의 전략에 따라 ‘고사’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 ‘2대 주주’ 산은 책임론

“글로벌 GM이 자동차 산업을 재편하면서 철수하는 데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철수 예고편은 4년 전부터 계속 나왔다. 우리도 제조업 재편 등 산업 구조조정을 했어야 하는데 하지 않고 있다가 쓰나미가 닥쳐서 호들갑 떨고 있다.”

15만명의 일자리가 날아가게 생긴 한국지엠 사태를 두고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한 말이다. 2대 주주인 산은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한국 정부도 손 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금융위기에 휘청거리던 GM은 2009년 산은에 한국지엠 유상증자를 제안했으나 산은은 응하지 않았다. 본사만 유상증자를 하면서 GM의 지분이 76.96%로 늘었고 산은 지분은 17.02%로 떨어졌다. 그 밖에 상하이자동차가 6.02%를 갖고 있다.

GM에 대우차를 매각할 당시의 계약상 GM은 75%의 지분을 갖게 되면 주주총회를 통해 주요 사업부문 매각 등을 할 수 있었다. 산업은행이 여기에 문제를 제기해 주주총회특별의권의 지분 조건을 75%에서 85%로 높였다. 즉 산은으로서는 15% 이상의 지분으로도 주총에서 GM을 저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물론 2002년부터 15년간 20%가 넘는 자산 매각을 거부할 수 있는 비토권이 있었지만 주총을 통해서도 매각에 준하는 결정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이다.

<b>공장 폐쇄 반대 1인</b> 시위 박정희 전북 군산시의회 의장이 21일 청와대 앞에서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군산시의원들은 청와대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군산시의회 제공

공장 폐쇄 반대 1인 시위 박정희 전북 군산시의회 의장이 21일 청와대 앞에서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군산시의원들은 청와대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군산시의회 제공

하지만 한국지엠이 홀로 설 수 있게 하는 데 산은이 제 역할을 했는지에는 의문이 남는다. 2010년 산은은 한국 자회사의 독자적 생존기반을 만들기 위해 GM 본사와 ‘GM대우 장기발전 기본합의서’를 만들었다.

당시 산은은 “GM이 GM대우를 떠나더라도 (중략)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만들어 놓자는 것”이라고 밝혔지만 개정한 비용분담협정 등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합의서를 발표할 때 본사 관계자는 나오지 않았다. GM 철수설에 나라가 들썩이는 지금도 자세한 합의 내용은 베일에 싸여 있다. 당시 산은은 GM으로부터 한국 자회사 물량 배정을 보장받으려 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GM이 이때부터 한국 자회사에 대한 책임에서 거리를 두려 했을 수 있다.

■ ‘적자 이후’ 3년간 뭐했나

한국지엠은 2014년부터 적자를 기록했다. 산은은 2016년 중점관리대상회사로 지정하고 경영진단 컨설팅을 하자고 했지만 한국지엠은 거부했다. 한국지엠은 지난해 1분기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산은은 지난해 3월 주주감사권을 행사해 매출원가 등 회계자료 116건을 요청했지만 한국지엠은 6개만 내놨다. 나머지는 기밀사항이라고 했다. 이사회 회의록도 보내지 않았다. 정부가 협상력을 가지려면 한국지엠의 경영상황, 본사가 얼마를 투입해 얼마나 벌어갔는지, 군산공장 생산성이 정말 떨어지는지 평가할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무기’가 없는 셈이다.

정부와 산은은 지난 7일에야 실사를 하기로 한국지엠과 구두 합의를 했다. 상법상 주주는 회계장부를 열람할 수 있는데도 산은이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하지만 산은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도 다 했다”는 입장이다. 산은 관계자는 “주주 간 계약서는 사적 계약이라 이를 지키지 않아도 도리가 없다”면서 “민사소송으로 가면 몇 년이 걸릴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사외이사 10명 중 3명을 산은이 추천하는데, 이들 역시 거수기 역할만 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산은 측 3명의 사외이사가 한국지엠에 여러 요구를 했지만 대주주의 일방적 결정을 뒤집지 못했다”고 밝혔다. 수적 열세를 감안하더라도 사외이사들이 한국지엠 상황을 산은에 제대로 알렸느냐 하는 문제는 남는다.

GM 본사는 2013년 말 이후 해외 공장들을 차례로 정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호주 공장을 폐쇄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한국지엠 사태에서 가장 나쁜 쪽은 정부도, GM도 아니다. 그저 자동차 산업이 좋지 않은 게 가장 문제일 뿐”이라고 했다. GM이 한국지엠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비토권이 만료되는 2017년 10월 이후 GM이 철수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정부도 알고 있었다. 한국지엠은 국내 금융권에 차입금이 없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나설 수도 없었다.

누가 나빴고 누가 막을 수 있었던가를 따지기 힘들다 해도 군산공장과 협력업체를 합해 15만5000명의 일자리가 달린 일이다. 최배근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제조업 곳곳에서 거품이 꺼졌다. 해운·조선업에서 이미 터졌고 자동차 산업도 경고음이 계속 나왔다”면서 “우리는 외부에서 충격이 와야만 그때 가서 대응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