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환노위, 노동시간 주 52시간 단축법 의결…2021년까지 단계 시행
ㆍ휴일노동 중복할증 결국 제외…노동계 “법원 판결과 배치” 반발
현재 1주일에 68시간까지 허용되는 법정 최대노동시간이 주 52시간으로 줄어든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7일 새벽까지 회의를 연 끝에 이 같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문재인 정부 ‘노동시간 단축’ 정책의 첫 단추를 끼웠다. 휴일근로 중복할증은 인정하지 않되, 삼일절·광복절·명절연휴 등 15일 안팎의 관공서 휴일을 유급휴일로 만들어 민간부문 노동자들도 ‘빨간 날’에 돈을 받고 쉴 수 있도록 했다.
환노위 여야 의원들은 26일 오전부터 법안소위와 전체회의를 연달아 열어 27일 오전 3시50분까지 이어진 마라톤협상 끝에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전격 합의했다. 아직 법제사법위원회와 28일 본회의 통과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여야 지도부도 이번 합의안에 이견이 없어 무난하게 통과할 것으로 관측된다.
개정안의 핵심은 근로시간 단축이다. 68시간에 이르는 주 최대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것이 골자다. 다만 국회는 갑작스러운 법 개정으로 시장이 받을 충격을 고려해 기업 크기에 따라 적용 시점을 달리하기로 했다. 종업원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은 오는 7월1일부터, 50~299인 사업장은 2020년 1월1일부터, 5~49인 사업장은 2021년 7월1일부터 법을 적용한다. 다만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은 ‘특별연장근로시간’을 한시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주 52시간제 유예기간이 끝나는 2021년 7월부터 2022년 12월31일까지는 노사 간 합의에 의해 주 8시간 특별연장근로가 가능하다.
핵심 쟁점이었던 휴일근로 중복할증은 인정하지 않는다. 휴일에 일해도 지금처럼 통상임금 50% 수준의 수당만 더 얹어서 준다. 대신 여야는 법정공휴일을 유급휴일로 지정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공무원·공공기관뿐만 아니라 민간기업 노동자들도 삼일절·광복절 등 공휴일을 유급으로 쉴 수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유급휴일을 주휴일(일요일)과 노동절만 규정하고 있다. 또 ‘무제한 노동 이용권’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근로시간 특례업종은 현행 26개에서 운송업과 보건업 등 5개 업종만 남기고 대폭 줄였다.
노동시간 단축은 한국 사회의 해묵은 과제였다. 문재인 대통령도 ‘과로사회’ 해결을 위한 첫걸음으로 근로기준법 개정을 강조해왔다. 여야가 2월 국회가 문을 닫기 전 개정안에 극적으로 합의하면서 19대 국회부터 내려온 논쟁이 5년 만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그러나 휴일근로 중복할증을 요구해온 노동계는 “지금까지 법원 판결에 정면 배치되는 내용”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회 논의과정에서 당사자인 양대 노총이 배제되다시피 했다는 불만도 나온다.
휴일근무도 연장근로로 인정…‘저녁이 있는 삶’ 첫발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문턱을 넘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핵심 취지는 그동안 정부의 잘못된 해석으로 최대 68시간까지 늘어나 버린 법정 노동시간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상 1주일은 근로의무가 있는 5일”이라는 해석을 고수해왔다. 평일 연장근로와 주말 휴일근로를 별개의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그래서 1주일의 노동시간은 평일 40시간과 연장근로 12시간, 여기에다 주말 이틀의 휴일근로 16시간까지 합쳐 최대 68시간까지 용인돼 왔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장시간 노동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퍼지면서 행정해석도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 법안에 ‘1주일은 7일’ 명시
이번 개정안은 ‘1주일은 휴일을 포함한 7일’이라는 문구를 조문에 명시했다. 이렇게 되면 휴일에 일한 것도 ‘연장근로’로 인정된다. 1주 노동시간이 평일의 40시간과 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한 52시간으로 제한되는 셈이다. 따라서 앞으로 주 52시간 이상 일을 시키는 사업장은 불법으로 간주돼 징역 2년 이하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다만 주 52시간제가 곧바로 시행되면 수많은 사업장이 ‘범법자’가 된다. 당장 새로운 인력을 구하거나 설비를 늘릴 여력이 안되는 중소 영세기업의 타격이 예상된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노동부 행정해석을 즉각 폐기하지 않고 법 개정이라는 우회로를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여야는 기업 규모별로 시행 시기를 다르게 적용하기로 했다. 300명 이상 사업장은 주 52시간제를 오는 7월1일부터 시행해야 한다. 50~299인 사업장은 2020년 1월1일부터, 5~49인 미만 사업장은 2021년 7월1일부터 각각 적용된다. 소규모 사업장은 8시간의 ‘특별연장근로시간’을 당분간 허용하기로 했다. 주 52시간제가 전면 시행되는 2021년 7월부터 1년6개월간 30인 미만 사업장은 노사 합의를 통해 주 최대 60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 ‘휴일근로 중복할증’ 불인정
근로기준법 개정 심사에서 핵심 쟁점이었던 ‘휴일근로 중복할증’은 인정하지 않는다. 지금은 휴일에 일하면 시간외 수당을 50%만 지급하는데, 중복할증은 연장근로수당과 휴일근로수당을 함께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경영계는 중복할증이 허용되면 “수당 부담이 급격히 늘어난다”고 우려해 왔다.
환노위는 휴일에 일한 수당은 현행대로 통상임금의 50%만 더 주는 것으로 유지했다. 대신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만들기로 했다. 삼일절·광복절·명절연휴 등 달력에 표시된 ‘빨간 날’을 모든 노동자들이 ‘돈 받고 쉴 수 있도록’ 바꾼 것이다. 유급휴일 숫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기로 했으나 연 15일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유급휴일을 주휴일(일요일)과 노동절로만 규정하고 있다.
대기업·공공기관이나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관공서 휴일을 단체협약·취업규칙으로 유급처리하고 있지만, 중소 영세기업은 그렇지 못해 설·추석 연휴에도 개인 연차를 쓰고 쉬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공휴일 유급휴일 규정 또한 기업 규모에 따라 적용 기간을 다르게 한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2020년 1월1일부터 적용된다. 30~299인 사업장은 2021년 1월1일, 5~29인 사업장은 2022년 1월1일부터 시행해야 한다.
■ 근로시간 특례업종 축소
‘무제한 노동’을 가능케 했던 근로시간 특례업종은 대폭 줄였다. 근로기준법 59조는 노사 합의를 하면 법에 정해진 연장근로시간을 넘겨 일할 수 있도록 방송업·운송업·금융업 등 26개 업종을 ‘특례업종’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고속버스 졸음운전 사고와 집배원 과로사 등 연이어 비극이 발생하면서 특례업종을 대폭 줄이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모아졌다. 여야는 특례업종을 육상운송업·수상운송업·항공운송업·기타운송서비스업·보건업 5개만 남기고 모두 빼기로 했다. 운송업은 산업 특성상 운행시간이 법정근로시간을 넘나드는 점을, 보건업은 병원의 24시간 응급 대기상황 등이 잦은 점을 고려했다.
5개 업종은 대신 노동자들의 연속 휴식시간을 최소 11시간 보장하기로 했다. 이 규정은 오는 9월1일부터 적용된다. 환노위 관계자는 “특례업종을 적용받는 인원이 현재 453만명에서 102만명 정도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번 법 개정을 통해 문재인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에 한발 더 다가가게 됐다. 다만 법 개정은 ‘선결조건’이고, 장시간 노동을 실효성 있게 개선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정책이 따라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 52시간제가 정착돼도 정부 공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의 연간 1800시간’에는 못 미치기 때문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주 52시간을 넘어서서 주 최대 48시간 논의를 조금씩 던져봐야 할 때”라며 “제대로 쓰지 못하는 연차휴가 소진율을 높이고 법정 연차휴가도 20일 이상으로 늘리는 등 실질적인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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