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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관용차 500여차례 유용한 이인호 KBS 이사장

이인호 KBS 이사장이 개인 일정을 위해 관용차에서 내리는 모습. KBS새노조 제공


이인호 KBS 이사장이 재임 기간 동안 KBS로부터 제공받은 관용차를 이사회 일정과 관련없는 음악회 참여, 호텔 식사 등의 사적 일정에 500차례 이상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노조 KBS본부(KBS새노조)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이사장이 관용차를 사적으로 유용해 KBS에 억대의 손해를 끼쳤다며 고대영 사장과 함께 업무상 배임과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새노조는 2015년 1월부터 2017년 6월까지 이 이사장의 관용차 운행 기록과 이사회 일정, 관용차 업무 관계자의 진술 등을 비교·분석했다. 이 기간 정기·임시 이사회와 비공식 간담회 등을 모두 포함한 KBS 이사회 일정은 총 130일(월평균 4일)이었으나 관용차는 총 668일(월평균 22.3일) 운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사회가 열리지 않은 날 운행한 횟수는 538일에 이르렀고 휴일 운행된 것도 67차례였다. 운행 거리는 일평균 77.57㎞였는데 KBS와 서울 서초구 이 이사장 자택은 왕복 약 22㎞에 불과하다.

이인호 이사장에게 제공된 관용차 제네시스 G80. KBS새노조 제공

이인호 이사장에게 제공된 관용차 제네시스 G80. KBS새노조 제공

이인호 이사장의 관용차 운행 기록을 담은 차량운행일지. 운행목적이 모조리 ‘업무’로만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KBS새노조 제공

이인호 이사장의 관용차 운행 기록을 담은 차량운행일지. 운행목적이 모조리 ‘업무’로만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KBS새노조 제공

새노조는 “이 이사장이 관용차를 타고 간 저녁 일정 중 상당수는 호텔 식사자리, 음악회, 개인 강연 등 개인적 취미와 약속을 위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 행사에도 관용차를 탄 것으로도 나타났다. 이 이사장은 지난 14일에도 서울대 명예교수 자격으로 초청받아 ‘건국 69주년 제10회 우남이승만애국상 특별상 수여식 및 장학금 전달식’에 갈 때에도 관용차를 났다. 이는 KBS 이사장 자격으로 참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새노조는 지적했다. 앞서 남부지법은 2016년 판결에서 KBS 이사장의 행사 참석이 공식 업무가 되려면 ‘행사 주최 측이 KBS에 정식으로 참석을 요청해야 하고, KBS가 이사장의 참석에 대해 정식으로 결재해 이사장이 공사를 대표하는 인사로서 참석해야만 한다’고 해석한 바 있다.

새노조는 또 “이사장 본인이 타지 않은 채 관용차가 운행한 기록도 있었는데, 이는 지인들에게 책을 선물하는 등 개인적인 심부름을 관용차 운전기사에게 시킨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이 해외에 있는 기간 동안에도 차량을 썼다. 이 이사장은 이에 대해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새노조에 해명했다.

이 이사장의 관용차는 제네시스 G80이고, 운전은 KBS 손자회사인 ‘KBS 방송차량서비스’ 소속 전담 기사가 맡았다. 이 차량은 업무시간 외에는 KBS 방송차량서비스의 관리하에 있어야 하지만, 수시로 이 이사장의 아파트 주차장이나 전담 기사 집에 상주하며 운행됐다. 새노조는 “사적 유용도 문제지만 이 이사장에게 관용차를 내준 것 자체가 문제”라고도 지적했다. 새노조에 따르면 KBS 사규에는 이사장에게 관용차를 지급할 수 있다는 근거 규정이 없다. KBS 이사회는 비상임 이사들로만 구성돼 있으며 정기 이사회는 매달 1회뿐이다. 새노조는 “비상임 이사장에게 전용 관용차를 제공하는 것은 다른 공공기관에 비춰봐도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은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과의 전화통화에서 “이사장 자격으로 행사에 다니기 때문에 관용차를 타고 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새노조가 공개한 이 통화에서 이 이사장은 “음악회 등에 가면 KBS 이사장으로서 사람들에게 인지가 되기 때문에 관용차를 타고 가는 것”이라며 “사장처럼 일일이 집행 업무에 관계돼서 차를 타라는 것은 아니고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서 그것이 KBS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이사장에게 차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이 이사장에게 추가 해명을 들으려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KBS는 이사장에 대한 차량 지원이 예산서 상에 근거가 있으며 이사장의 업무 범위는 공식 이사회 일정으로만 제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KBS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KBS 이사장의 경우 국내외 방송관계자와의 만남, 이사장 자격으로 각종 행사와 모임 참석 등 그 업무 범위를 공식적인 이사회 일정으로만 제한하기 어려워 1988년 이후 차량이 지원돼 왔다”며 “차량제공 근거는 총무국 예산서에 있으며 이에 따라 배정·관리해왔다”고 밝혔다. KBS는 “이사회를 대표하는 이사장으로서 외부 인사를 만나고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이사장 직무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고, 이를 위해 차량을 운행하는 것을 사적 유용이라고 말할 수 없고 김영란법 위반도 아니다”고 말했다. 이사장의 해외출장 중 차량운행 기록에 대해서는 “이사장의 차량은 이사회 사무국 업무용으로도 사용된다”며 “어떤 업무에 투입됐는지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새노조는 이 이사장이 관용차 임차료와 전담기사 인건비, 유류비 등으로 30개월간 약 1억6772만원의 편의를 얻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이사장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적용 대상이며, 교통편의 제공도 금품의 일종이라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유권해석도 있었다. 새노조는 이 이사장과 편의를 제공한 고 사장도 배임 및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함께 고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