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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MBC 아나운서들이 말하는 “우리가 TV에서 사라진 이유”

MBC 이재은 아나운서가 22일 오전 서울 상암동 사옥 앞에서 황선숙 아나운서 등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자회견을 하면서 부당한 출연배제를 비롯한 회사 측의 탄압 사례를 공개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MBC 이재은 아나운서가 22일 오전 서울 상암동 사옥 앞에서 황선숙 아나운서 등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자회견을 하면서 부당한 출연배제를 비롯한 회사 측의 탄압 사례를 공개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방송·업무를 중단한 MBC 아나운서들이 그간 겪어온 부당전보·방송 출연 배제 사례를 폭로했다. MBC 아나운서 27명은 이날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상기자들의 블랙리스트 문건이나 고영주 이사장의 녹취록 같은 문건이 확보되지 않았을 뿐 가장 심각한 수준의 ‘블랙리스트’가 자행된 곳이 바로 아나운서국”이라며 부당전보 사례를 밝혔다. 이들은 지난 18일부터 방송 출연과 업무 중단에 돌입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손정은 아나운서는 “2012년 파업 뒤 방송에서 배제됐고 2015년 이후에는 라디오뉴스만 진행했으며 그나마 하던 저녁종합뉴스마저 하차 통보를 받았다”며 “임원회의에서 한 간부가 ‘손정은이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손 아나운서는 드라마 <몬스터>, <경찰청 사람들> 등 주요 프로그램과 라디오 DJ 등으로 숱한 섭외요청을 받았지만 방송을 하지 못했다고도 밝혔다. 그는 “휴가 간 DJ를 대신해 라디오 프로그램 대타가 들어왔을 때도 신동호 국장이 ‘다른 사람 시키라’며 화를 냈다고 들었다. 다큐멘터리 내레이션까지 막아서 목소리가 나올 수 없는 아나운서가 됐다”고 했다. 손 아나운서는 지난해 3월부터 사회공헌실로 전보돼 일하고 있다. 

그처럼 아나운서국 밖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들이 10명이다. 11명이 부당전보를 당했는데 그 중 김범도 아나운서가 지난달 소송을 통해 복귀했다. 역시 부당전보된 신동진 아나운서는 “2014년 속칭 ‘1급 정치범수용소’로 불리는 주조정실 MD로 발령이 났다”며 “회사는 부당전보자들의 발령지가 그 사람이 가장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아나운서인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주조정실 MD 일이냐”고 반문했다. 

허일후 아나운서는 “2012년 미래전략실로 발령난 뒤 모교에서 특강 요청을 받았는데 당시 부서장이 ‘너는 지금 아나운서가 아니다. 아나운서를 보내라’며 불허했다. 얼마 뒤 그 부서장이 나를 불러 ‘지인의 딸이 아나운서 준비를 하고 있으니 한번 만나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섭외 요청이 들어왔는데 ‘까이기’를 50번까지 세고나서 세는 걸 그만뒀다”며 “한 제작진은 나를 섭외하려 했더니 윗선으로부터 ‘알면서 왜 그러느냐’는 이야기까지 들었다고 하더라”고 했다. 

방송을 진행하는 아나운서들도 고통스럽게 5년을 보낸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재은 아나운서는 “뉴스를 진행하는 동료들은 ‘오늘 큐시트에 어떤 뉴스가 있을까’하며 두려워했다”고 말했다. 그는 “뉴스를 전하는 사람으로서 확신을 가져야 하는데, 이미 방향이 정해진 뉴스와 수정하고 싶어도 수정할 수 없는 앵커멘트를 읽어야 했다”며 “아나운서들에게 언론인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게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주말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던 이정민 아나운서는 촛불집회 축소 보도 등에 항의하며 동료 앵커와 함께 하차해 휴직 중이다. 이번 제작중단 결의 때도 현재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인 박연경 아나운서가 출연중단 돌입 여부와 관계없이 앵커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아나운서들은 밝혔다.

현재 MBC 아나운서국에는 노조원이 아닌 보직 간부, 출연 중단에 동참하지 않은 아나운서들, 계약직 아나운서 11명이 남아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아나운서들은 “현 경영진과 신동호 국장은 비정규직 신분인 11명의 계약직 후배들의 약점을 이용해 가장 비열하고 치사한 언론탄압을 또다시 저지르고 있다”며 “회사와 아나운서국을 이렇게 망쳐놓고도 끝까지 동료들의 갈등과 분열을 끝까지 조장하는 김장겸 사장 등 경영진과 신동호 국장은 지금 당장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관련 기사: '최다 부서이동' 김범도 아나운서가 말하는 '아나운서 잔혹사' 


방통위 "지상파 재허가 때 중립성 중점 심사...부당해직·전보도 살피겠다"

남지원·임아영 기자 somnia@kyunghyang.com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2017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2017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방송통신위원회가 오는 11월로 예정된 지상파 방송사 재허가에서 보도·제작의 중립성과 자율성, 인력운용 등을 중점 심사한다. 최근 ‘카메라기자 블랙리스트’ 파문 등으로 부당전보·부당징계 실태가 드러난 MBC의 재허가 심사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는 22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함께 문재인 대통령에게 하반기 핵심정책을 보고하며 “부당해직과 징계가 재발되는 것을 막고 방송의 공적 책임을 제고하기 위해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때 보도·제작의 중립성과 자율성, 인력운용 등을 중점 심사하겠다”고 밝혔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국민 요구를 수렴해 공정하고 올바른 여론 형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국민이 주인되는 공영방송을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방통위 안에 방송·법률·언론계 전문가와 제작 종사자대표, 시민단체 등을 포함한 ‘방송미래발전위원회’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도 이 자리에서 “공영방송은 독립성과 공공성이 무너져 신뢰가 땅에 떨어진 지 오래”라며 방송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방송의 경우 언론자유 지수가 민주정부 때보다 크게 떨어졌고 인터넷상의 언론의 자유도 많이 위축됐다는 평가”라며 언론자유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MBC ‘현미경 재허가 심사’ 예고.. 공영방송 여론수렴 위원회도 신설

방통위는 3년마다 한번 방송사에 대한 재허가·재승인 여부를 심사한다. 지상파 3사인 KBS·MBC·SBS와 종합편성채널 MBN 등 11개 방송사는 허가유효기간이 오는 12월31일 만료될 예정이라 11월 재허가 심사를 통과해야 방송을 계속 내보낼 수 있다. 그간 지상파 재허가심사는 큰 무리 없이 이뤄져 왔지만 올해는 문 대통령이 공영방송의 공정성 회복을 방송정책 최우선과제로 내걸어왔던 만큼 엄격한 심사가 예고됐다.

특히 이번 업무보고에서 방통위가 “부당 해직·징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방송사 인력운용 상황을 집중 점검하겠다”고 밝힌 만큼 부당전보와 징계가 이뤄졌던 MBC에 대해 ‘현미경 심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2012년 파업 이후 MBC에서 해고·정직 등 중징계를 받거나 비제작부서로 전보된 직원 중 대부분이 법원에서 부당징계라는 판결을 받은 상태다. 최근 불거진 ‘카메라기자 블랙리스트’ 사태, 기자·PD·아나운서들의 잇따른 업무배제 폭로도 재허가 심사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MBC 아나운서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파업에 참가했던 아나운서들의 부당전보 및 방송출연 금지 사례를 폭로했다.

이와 관련해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2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MBC 특별근로감독 결과 PD와 기자들을 자기 분야가 아닌 곳으로 배치해 상식 밖의 관리를 한 일이 확인됐다”며 “이런 부분은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돼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이날 회의에서 MBC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당국이 형사적 검토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의 자유와 독립 관련 여론을 수렴해 공영방송 문제를 해결해나갈 ‘방송미래발전위원회’도 방통위 안에 새로 설치된다. 방송미래발전위원회는 방송·법률·언론계 인사, 제작·편성 종사자, 시민단체 등 각계 전문가 20여명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이해관계자 간담회 등으로 여론을 적극 수렴해 국회에 계류중인 공영방송 정상화 관련 법률, 해직언론인 특별법 등의 제·개정 논의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효성 위원장은 “방송이 본연의 사회적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계 불공정거래 관행 끊는다.. 인터넷 표현의 자유도 확대 

방통위는 또 최근 독립PD 사망 사건을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오른 방송 외주제작시장의 불공정거래 문제 개선에도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달 해외 촬영을 하면서 야간에 소형차를 직접 운전하다 사고로 사망한 박환성·김광일 PD 사건이 일어나자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 이효성 위원장에게 “방송계 불공정 거래 시정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고삼석 방통위원은 “표준계약서 제도가 본격 도입되기를 대통령도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간 고질적인 불공정거래 관행을 조사해 올해 말까지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납품업체에 제작비를 떠넘기는 홈쇼핑사의 관행 등 고질적인 ‘갑질’도 개선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방송시장 전반의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익명 신고센터도 운영하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도 개선한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매년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2006년 31위까지 올랐다가 2016년 70위, 올해 63위로 30계단 넘게 추락했다. 방통위는 우선 포털의 인터넷 게시물 ‘임시조치’가 남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보 게재자의 이의제기 절차를 만들기로 했다. 정치적 표현물에 대해서는 2022년까지 완전 자율규제를 목표로 공적 규제를 줄여나가기로 했다. 몰카 동영상 등 선정적·폭력적 불법유해정보로 인한 인권침해 단속과 차단을 강화하고, 불법스팸 실시간 차단을 문자에서 음성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