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 ‘탈시설-자립생활, 진정한 의미와 방향은 무엇인가?’에서 문혁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거주시설수는 2006년 288개소에서 2015년 1484개소로 약 5.2배 증가했다. 이용자수 역시 2만598명에서 3만1222명으로 1.5배가량 늘어났다.
그러나 이런 추세와 반대로 장애인들은 2005년부터 지속적으로 ‘탈시설’을 요구하고 있다. ‘장애인 수용시설’을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와 함께 ‘3대 적폐’로 규정하기도 한다. 시설 안에서는 절대로 ‘자기 주도적 삶’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유엔 최초의 ‘발달장애인 위원’인 로버트 마틴 유엔 장애인권리위원은 “어딘가에 갇혀서 비틀즈도, 베트남 전쟁도, 케네디 암살 사건도, 마틴 루터 킹 목사도 모른 채로 살아가는 삶이 어떤 것인지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거예요. 저도 시설에서 나오고 나서야 처음 음악을 접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커뮤니티케어 추진 개념도. 보건복지부 제공
장애인들의 이런 바람이 이뤄질까. 장애인을 비롯해 치매노인, 정신질환자 등 취약계층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보건복지부는 12일 ‘커뮤니티케어 추진본부’를 구성하고 박능후 장관 주재로 1차 회의를 개최했다. ‘커뮤니티케어’는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기존에 살던 곳에서 계속 생활하면서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받는 서비스 체계다.
그동안 정부는 장애인, 정신질환자, 시설아동, 치매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시설에 격리한 뒤 의료, 돌봄, 주거 서비스 등을 지원해왔다. 하지만 시설 중심 서비스만으로는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없고 고령화로 늘어나는 의료·돌봄 수요에도 대응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왔다. 장애인 인권단체들은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와 더불어 “시설 거주인이 지역사회에서 일상을 충분히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복지부는 영국,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시행 중인 커뮤니티케어를 도입하기로 하고 지난 1월 ‘2018 정부업무보고’에서 ‘모두가 어울려 살기 위한 지역사회 포용 확대’를 정책 목표로 제시했다. 시설 수용 방식에서 벗어나 주거와 일자리 같은 일상생활을 지원하며 자립을 돕는 것이 주요 과제다.
복지부는 취약계층이 자택이나 소규모 그룹홈에 살며 사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재가생활 지원을 강화할 방침이다. 올해 7월까지 ‘커뮤니티 케어 로드맵’을 마련해 취약계층의 ‘탈 시설화’를 추진한다. 올해 안에 ‘재가 및 지역사회 중심 선도사업’ 모델을 개발해 내년부터 선도사업을 벌인다. 장애인들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해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병원을 벗어난 정신질환자들이 지역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단기보호시설인 ‘중간집’ 모형도 개발한다.
요양병원은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노인이 이용하도록 수가를 개편한다. 치료가 필요 없는데도 요양병원을 찾는 ‘사회적 입원’ 환자를 줄이기 위해서다. 돌봄이 필요한 노인에게는 건강·가족지원이 강화된 장기요양서비스를 이용하도록 유도한다. 또 방문요양·간호·목욕·주야간보호서비스를 하나의 기관에서 제공하는 ‘통합재가급여’를 도입한다. 시설 보호 아동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도 강화한다.
선진국 사례를 국내에도 적용할 계획이다. 미국은 모든 지역사회 주민이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이웃과 어울려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일본은 건강이 안좋은 노인도 자신이 사는 곳에서 기존 생활방식대로 지낼 수 있도록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복지부는 “취약계층의 선택권을 기존의 시설에서 재가까지 확대해 인권과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서비스를 통합 제공하는 과정에서 양질의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커뮤니티케어를 통해 저출산·고령화 가속화로 돌봄 수요가 급증하는 데 앞장서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복지부는 ‘커뮤니티케이 추진본부’ 아래 전담조직인 ‘커뮤니티케어 추진단’과 8개 팀을 뒀다. 정부 차원에서는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사회보장위원회 산하 전문위원회에 ‘커뮤니티케어 협의회’(가칭)를 구성해 부처간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사회서비스 제공의 중점을 지역사회 중심으로 개편해 돌봄을 필요로 하는 주민이 지역사회 내에서 가족, 이웃과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국민 의료비 절감을 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근로시간 단축·처우개선 등 의료·사회복지시설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책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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