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3.12 김상범 기자
ㄱ씨는 최근 퇴근길에 집 근처 대형마트에 들렀다. 장을 본 뒤 자가용을 몰고 귀가하던 중 다른 차량과 접촉사고가 났다. ㄱ씨는 이 사고로 목과 허리를 크게 다쳤다.
ㄴ씨는 출근길에 승용차로 아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뒤 교통 사고를 당했다. 갑자기 앞에 끼어드는 차량을 피하려다 도로 표지대와 부딪치고 말았다. 목과 어깨를 다친 ㄴ씨는 아직도 마음대로 움직이기 힘들다.
피부병을 앓고 있는 ㄷ씨는 정기적으로 퇴근길에 한의원에 들러 치료를 받는다. 최근 한의원에 들러 2시간 가까이 진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꽁꽁 언 빙판길에 미끄러져 왼쪽 발목이 부러졌다.
ㄱ씨와 ㄴ씨, ㄷ씨는 모두 출퇴근길에 사고를 당했다. 잠시 마트나 어린이집, 한의원에 들르긴 했지만 모두 일을 하러, 혹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다가 당한 사고다. ‘산업재해’로 인정받아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12일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이 같은 사례를 소개하며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
올해 1월1일부터 출퇴근 중 일어난 사고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지만 ‘통상적인 출퇴근 경로를 이탈하거나 중단’했을 때는 제외된다. 그러나 여기서도 또 예외가 있다. 위에 열거한 사례가 해당한다. 산재보상보험법은‘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 때문에 출퇴근길을 벗어났다면, 사고를 당해도 산재로 본다. 일용품 구입, 직무훈련·교육, 선거권 행사, 아동 및 장애인 위탁, 병원진료, 가족간병 등의 사유가 해당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통근버스처럼 회사가 제공한 교통편을 타다 사고가 난 게 아니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6년 9월 헌법재판소가 “같은 노동자인데 교통수단이 다르다는 이유로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결하면서 자가용·도보·자전거 등으로 출퇴근하던 중 일어난 사고도 산재로 인정하는 쪽으로 법이 개정됐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이미 1964년부터 ‘출퇴근길 사고도 산재로 봐야 한다’고 회원국들에 권고해왔다. 회사를 오고가는 경로와 방법이 근무지와 출근 시각에 따라 정해지므로 사업주의 책임 하에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과실률을 따지는 자동차보험보다 산재보험 혜택이 더 크다”며 출퇴근 재해 신청을 유도하고 있다. 예컨대 일당이 10만원인 노동자가 퇴근 중 자동차 사고로 다쳐 90일 동안 요양치료를 받을 경우, 민간보험으로는 최대 636만원까지 받는다. 본인 과실이 크다면 한푼도 받지 못할 수 있다. 반면 산재보험은 과실률과 상관없이 휴업급여 705만원을 받을 수 있다. 자동차보험으로 먼저 처리했더라도 차액이 있는 경우에는 산재를 신청해 추가보상을 받을 수 있다. 산재처리를 한 뒤에도 위자료나 대물손해는 자동차보험에서 별도로 보상받을 수 있다.
산재보험은 사업주가 보험료를 100% 부담한다. 출퇴근길 사고를 당한 노동자는 사업주 날인 없이 산재를 신청 할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 콜센터(1588-0075)로 산재신청을 문의하면 공단 직원이 전화 또는 방문해 도와준다. 근로복지공단 심경우 이사장은 “출퇴근재해 보상도입이 노동자들의 안심 출퇴근길을 보장하는데 큰 힘이 되도록 제도를 운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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