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2017.08.24
서울 은평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씨(35)는 생리가 다가올 때나 끝날 무렵에는 팬티라이너 생리대를 쓴다. 최근 릴리안 생리대 논란이 불거지자 이씨는 자기가 쓰던 생리대 포장지의 겉면을 들여다 봤다. 일반 생리대에는 모두 ‘의약외품’으로 쓰여있었지만 팬티라이너 생리대 중에 의약외품으로 표기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생리혈 흡수용으로 쓰지 마세요’라는 깨알같은 문구는 이번에 처음 봤다. 생리 전후에 쓰지 말라는 뜻인지 혼란스러워졌다.
이씨는 “식약처가 생리대 분류별 관리 마저 엉망으로 한 것 같은데 생리대 전반의 문제는 어떻게 밝혀낼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일회용 생리대 사용 여성들 사이에선 “이제 식약처를 못믿겠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로부터는 식약처가 아닌 환경부와 질병관리본부가 나서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식약처의 ‘관리구멍’이 드러나는 대표적 사례가 ‘팬티라이너 생리대’다.
생리량이 많지 않은 기간에 옷에 생리혈이 묻지 않도록 두꺼운 생리대 대신 팬티라이너형 제품을 쓰는 여성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제품들 일부는 안전기준이 없으며, 정부의 허가·관리 절차조차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팬티라이너에는 상품 포장용 비닐에 ‘평상시 질 분비물 처리’ ‘생리혈의 흡수처리용으로는 사용하지 마세요’라고 쓰여 있다. 생리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제품 전면에는 ‘팬티라이너’라고만 쓰여 있어 생리대 일종인 팬티라이너로 착각하기 쉽다. 대표적인 상품이 P&G의 위스퍼 ‘피부애’다.
이렇게 복잡해진 이유는, 팬티라이너에도 ‘생리혈 흡수용’이 있고 아닌 것이 있기 때문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생리혈 흡수용도의 팬티라이너는 의약외품으로 지정해 약사법에 의해서 폼알데히드, 형광증백제, 색소 등 9가지 항목의 안전성과 품질을 검사하지만 그렇지 않은 팬티라이너는 의약외품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소비자로서는 제대로 알기도 힘들고 제품을 사면서 쉽게 구분하기도 어려운 구분법에 따라 당국이 관리를 해오고 있었던 셈이다.
릴리안 브랜드의 팬티라이너는 의약외품으로 분리돼 있었는데도 부작용 논란이 불거졌다. 그런데 ‘생리혈 흡수용’이 아닌 팬티라이너에 대해서는 안전기준이나 검사 절차가 아예 없다. ‘공산품’을 관리하는 국가기술표준원의 기저귀 등 의료용품 담당자는 “팬티라이너는 공산품 관리품목에 들어있지 않다”고 했다. 즉 이런 팬티라이너는 의약외품도, 공산품도 아니다. 식약처 관계자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런 제품은 (허가가 필요없이) 그냥 업체가 만들어 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약외품으로 지정된 생리대와 팬티라이너의 안전성조차도 논란이 되는 터에, 일부 팬티라이너에 대해서는 아예 이런 관리조차 없는 것이다.
식약처는 지난해에야 ‘비관리 품목’이던 일부 팬티라이너와 식당 물티슈따위를 ‘위생용품’으로 묶어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위생용품관리법에 따른 규제는 내년 4월부터 시행된다.
앞서 21일 식약처는 다음달 생리대 정기 품질검사에 릴리안을 추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릴리안은 과거의 식약처 품질검사에서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온 터라, 소비자들은 “애당초 제품 허가를 내준 식약처가 다시 조사를 한다면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불신을 표한다. 식약처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빗발치자 등 떼밀리듯 업체 현장조사를 시작하고 전문가 회의를 열겠다며 나섰지만 식약처의 늑장대응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역학조사 검토마저 ‘우물쭈물’이다. 애초 역학조사 계획은 없다던 식약처는 23일에는 “25일 열리는 전문가 회의에서 역학조사 여부를 검토해보겠다”(식약처 관계자)고 물러섰다. “역학조사를 해야만 문제가 풀린다”는 전문가들과 환경단체의 주장을 듣지 않다가 이제야 태도를 바꾼 것이다.
이종현 박사(독성학)는 “사용자들이 문제를 제기한 이상 역학조사 말고는 해결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특정사 제품의 문제로만 볼 수 없기 때문에 호소증상, 유사제품(생리대 전반) 사용자 집단에 대한 전국 규모의 잘 설계된 역학조사가 필요하다”면서 “역학조사 역량 측면에서 보나, 식약처가 그간 관리주체였다는 면에서 보나, 가습기살균제 역학조사 경험이 있는 질병관리본부, 환경부가 나서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이미 가임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전국적 규모의 출생코호트 환경성 질환 조사를 시작했다. 이 박사는 “출생 코호트 조사를 위해 만들어진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릴리안 사용 뒤 부작용을 겪은 이들은 손해배상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법무법인 ‘법정원’은 25일 정오까지 소송을 신청한 이들을 원고로 해, 1차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다. 현재 법정원이 만든 포털사이트 카페의 회원수는 8500명에 이른다.
‘늑장대응’ 비난받은 식약처, 생리대 업체 5곳 긴급 현장조사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유해물질 논란을 빚은 릴리안 제조업체 ‘깨끗한 나라’ 등 생리대 제조업체 5곳에 대해 24일 긴급 현장조사에 들어갔다.
식약처는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어 제조업체 현장조사에 착수했다고 이날 밝혔다. 점검 대상은 국내 업체 중 시중 유통량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유한킴벌리, 엘지유니참, 깨끗한 나라, 한국피앤지(P&G), 웰크론헬스케어다. 이들 5개사가 2016년 기준 국내에서 생산되는 생리대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식약처는 현장점검에서 접착제 과다사용 여부 등 원료와 제조공정이 허가받은대로 만들어지고 있는지, 업체가 원료와 완제품 품질검사를 철저히 수행하는지, 제조·품질관리 기준을 지키고 있는지 등을 집중 조사했다고 밝혔다.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반사항이 확인되면 행정처분하고 제품을 회수하겠다고 밝혔다.
릴리안 생리대는 인터넷 여성 커뮤니티들에서 생리혈 감소, 생리불순같은 부작용 제보가 잇따르면서 최근 이슈가 됐다. 식약처는 2015·2016년 품질검사에서 이 제품에 문제가 없다며 통과시켰다. 논란이 불거지자 제조사는 제품 전성분을 공개한 데 이어 제품 회수와 환불에 들어갔고, 식약처도 다음달 품질검사에 깨끗한 나라 제품을 포함시키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안감이 갈수록 커지고 당국의 ‘늑장 대응’ 비판이 일자 긴급 현장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보인다. 25일에는 산부인과 전문의, 소비자단체 등과 전문가회의를 열고 생리대 안전관리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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