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과학적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평가절하했던 시민단체의 생리대 휘발성유기화합물(VOC) 방출시험 원본자료를 4일 공개했다. 그러나 생리대 위해성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오히려 깨끗한나라의 릴리안 제품에서 시작된 우려는 생리대 제품 전반으로 퍼졌고, 식약처의 공신력은 더 떨어졌다.
식약처는 화학물질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에 눈감은 채 하나의 시험 결과만 가지고 신뢰성을 거론하면서 회피하기 급급했고, 안전성 논란은 업계 싸움 양상으로 변질돼버렸다.
식약처는 4일 서울 양천구 서울지방식약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여성환경연대의 ‘생리대 방출물질 검출시험’에 쓰인 생리대 제품명을 공개했다. 식약처가 외부 전문가로 구성한 생리대 안전검증위원회는 이날 2차 회의를 열고 “(여성환경연대가 제출한) 강원대 김만구 교수의 시험은 구체적인 내용이 없고 연구자 간 검증을 거치지 않은 한계가 있으나 제품명과 VOC 검출량, 유해성 논란이 지속돼 제조업체들의 동의를 얻어 제품명을 공개한다”고 설명했다.
‘이름만 공개’, 책임은 연구팀에
시험 대상이 된 중형 생리대는 릴리안 순수한면 울트라 슈퍼가드(깨끗한나라), 좋은느낌2 울트라 중형 날개형에이(유한킴벌리), 바디피트 볼록맞춤 울트라슬림 날개형과 바디피트 귀애랑 울트라슬림 날개형(이상 엘지유니참), 위스퍼 보송보송케어 울트라 날개형(P&G), 그나랜 시크릿 면생리대(트리플라이프) 6종이었다. 팬티라이너는 릴리안 베이비파우더향, 릴리안 로즈향(이상 깨끗한나라), 좋은느낌 좋은순면라이너, 화이트 애니데이 로즈마리향, 화이트 애니데이 순면커버 일반(이상 유한킴벌리) 등 5종이 시험에 사용됐다. 여성환경연대는 지난 3월 처음 검출시험 결과를 공개하면서 중형 생리대 5종과 팬티라이너 5종 모두에서 VOC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식약처는 자료의 책임은 모두 여성환경연대와 김만구 교수에게 돌렸지만 브리핑에는 여성환경연대 관계자나 김 교수를 참석시키지 않았다. 식약처 검증위는 “VOC가 검출됐다는 것만으로는 유해성 여부를 판단할 수 없으므로 소비자가 지나치게 우려하기보다는 위해평가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식약처 뒷짐 속 ‘업계 싸움’으로
식약처가 주도적으로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면서 소비자와 시장의 혼란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김 교수팀의 시험 때 유한킴벌리 제품에서 1·2군 발암물질이 가장 많이 검출됐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면서 생리대 전반으로 우려가 퍼졌는데, 식약처는 위해 정도나 시험 결과에 대한 해석 모두 “연구팀이 설명할 일”이라며 등 떼밀리듯 제품 이름만 공개했다.
식약처의 이런 행태 속에 소비자들은 안전성을 파악하기가 오히려 더 힘들어졌고, 업계 싸움처럼 돼가고 있다. 유한킴벌리는 4일 보도자료를 내 “유한킴벌리 생리대에서 발암물질이 최다 검출됐다는 주장은 왜곡된 내용”이라며 “자사 생리대는 식약처의 사전 허가를 받아 생산·공급되고, 국내외 안전기준에도 모두 부합한다”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현재로선 유해성 여부를 판단하기 힘든 게 사실이지만 장기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지 ‘인체에 해롭다는 증거가 없으니 안심하라’는 뜻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앞서 대한의사협회는 1일 “생리대 VOC의 인체 유해성을 판단할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며 “여성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연구조사가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회피 말고 ‘안전망’ 만들어야
학술단체인 대한직업환경의학회는 “생리대에 포함됐을 것으로 의심되는 화학물질의 건강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생활 속 화학물질 통합관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환경보건학회와 환경독성보건학회도 공동 입장을 내놓고 “생리대는 사용자들 범위가 넓고 노출기간이 길기 때문에 그 피해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상회할 수 있다”며 “화학물질에 노출돼 건강 피해가 생겼다면 이를 신고하고 조사한 뒤 그 결과를 관리제도로 연계하는 촘촘한 위해관리 그물망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식약처는 VOC 10종에 대한 1차 전수조사 결과를 이달 안에 발표한다. 다른 VOC 76종에 대한 2차 전수조사도 올해 안에 마무리할 예정이다. 하지만 역학조사는 ‘전수조사 결과를 본 뒤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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