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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생태

[인터뷰]“후쿠시마엔 수영장 6만개 부피 핵폐기물 더미” 일본그린피스 스즈키 카즈에

2018.3.22 송윤경 기자

“거대한 핵폐기물이 쌓여 있는 모습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후쿠시마에 있는 핵폐기물 부피는 1500만㎥, 올림픽 규격 수영장 6만개에 달했다.”

2011년 3월11일 오후 2시 무렵, 대지진에 따른 쓰나미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을 삼켰다. 핵분열 열기를 식혀주는 냉각수 공급이 멈췄고 핵연료봉이 녹았다. 발전소 지붕이 날아가고 방사능 물질이 퍼져나갔다. 원전 30㎞주변 주민들은 서둘러 고향을 떠났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에 이은 사상 두번째 최악등급(7등급) 원전사고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정부는 방사능에 오염된 핵폐기물을에 검은 비닐포대에 담아 이 지역 곳곳에 쌓아놨다. _그린피스 제공


충격이 휩쓸고 지나간 뒤 7년, 후쿠시마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적막하고 스산해 보일 뿐이다. “맛도, 냄새도, 색깔도 없는 방사능 공포”는 밖에서는 체감하기 어렵다. 사고 이후 줄곧 후쿠시마의 피해실태를 모니터링해 온 그린피스 일본사무소의 스즈키 카즈에(53)를 그린피스 한국사무소의 도움을 받아 e메일로 인터뷰했다. 그린피스는 지난 1일 후쿠시마 원전에서 20~30㎞ 거리에 있는 지역조차 22세기가 될 때까지도 사람이 살 수 없는 수준의 방사능 오염상태가 지속될 것이라는 모니터링 보고서를 냈다.

스즈키는 핵폐기물이 쌓여 있는 모습이 가장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7년간 방사능에 오염된 지표면 흙을 거둬 검은색 비닐포대에 담아 쌓아올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포대 앞에 서면 “도대체 왜 우리는 원전을 운영했을까, 원전을 다시 가동해서 얻는 이익은 대체 뭘까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 스친다”고 말했다.


후쿠시마의 드넓은 산림은 이젠 주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방사능 오염을 지우는 제염작업은 민가와 도로 안팎 20m 지역에서만 실시됐다. 그는 후쿠시마 면적의 70%에 이르는 숲은 “방사성 물질 저장소”라고 했다. 스즈키는 “원전에서 방출된 방사성 물질이 삼림에 떨어져 축적됐다. 바람이 불거나 눈비가 오면 숲에 쌓인 물질, 특히 방사성 세슘이 지역을 오염시킬 것이며 이 물질들이 강을 따라 바다로 방출될 때까지 재오염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타테 마을의 산림. 스즈키 카즈에씨는 후쿠시마 면적의 70%에 달하는 산림은 “방사능 물질 저장소가 돼 버렸다”면서 산림에 쌓인 방사성 물질에 의한 재오염을 우려했다. |그린피스 제공

이타테 마을의 산림. 스즈키 카즈에씨는 후쿠시마 면적의 70%에 달하는 산림은 “방사능 물질 저장소가 돼 버렸다”면서 산림에 쌓인 방사성 물질에 의한 재오염을 우려했다. |그린피스 제공


후쿠시마현 이타테 마을은 피난지시가 풀려 일부 주민들이 귀환해 살고 있다. 하지만 그린피스 조사 때 한 가옥에서는 2016년부터 방사선량이 오히려 늘고 있었다. 주변 산비탈에서 내려온 방사성 물질에 재오염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 단체가 조사한 6가구 중 4가구에서 정부 목표치의 3배에 달하는 방사선 수치가 측정됐다. 피난지시가 풀린 또다른 지역의 학교 주변 숲에서는 연간 10mSv(밀리시버트)까지 피폭될 수 있는 방사선이 측정됐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성인 연간 피폭한도가 1mSv다. 아이들이 방사능에 더 취약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폭력’에 가깝다.

일본 정부는 피난지시가 해제된 지역에 살았던 이재민들에게는 주거보조금을 끊었다. 그러니 돈 떨어진 이들은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스즈키는 “원전사고 피해가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되고 있다”면서 “절대로 발생해선 안 될 일이지만, 만의 하나 한국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났을 때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피난민 뿐 아니라 제염작업에 투입된 저임금 노동자들도 일본 정부가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근 일본 법원은 후쿠시마 사고 수습에 투입된 노동자들에게 생긴 암과 방사능간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피난지시가 일부 해제된 나미에 마을의 한 학교. | 그린피스 제공

피난지시가 일부 해제된 나미에 마을의 한 학교. | 그린피스 제공

일본 정부는 피난구역 중심지 등에도 2023년까지 주민들을 돌아오게 할 계획이다. 또 전력 생산에서 원전 비중을 2030년까지 15%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스즈키는 “정부가 국민들의 안전과 건강보다 원전업계의 이익을 우선시한다”고 비판하면서 “정부의 계획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구폐쇄된 원전을 뺀 42기 가운데 4기만 재가동됐고 나머지는 소송에 걸려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린피스는 일본이 원전 비중을 끌어올린다 해도 전력생산의 6~8%에 그칠 것으로 본다.

지난해 한국에선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을 계속할지를 놓고 ‘공론화위원회’가 토론을 했고, 건설재개를 택했다. 당시 건설재개를 주장한 전문가들은 “일본의 원전과 한국의 원전은 구조와 환경이 다르다”고 했다. 그러나 원전 전문가인 스즈키는 “한국의 원전들도 노심이 녹고 방사성 물질을 대량 배출하는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선 일본 원전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잘라말했다. “후쿠시마 사고는 일본 원전만의 특수성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전 기술 자체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세계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로부터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단 한번의 사고로 재난이 발생할 수 있고, 사고가 나면 수습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