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청소년들이 4월 안에 국회에서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춘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라고 촉구하며 삭발식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선거권은 인권이다’라는 붉은 글자가 쓰인 천을 몸에 두른 세 청소년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 나란히 앉았다. 기계음과 함께 어깨까지 닿던 머리칼이 순식간에 잘려나갔다. 꽃이 달린 밀짚모자를 쓴 세 청소년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지만 표정만은 단단했다.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요구해 온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등 청소년단체들은 22일 오전 국회 앞에서 삭발식을 열고 “4월 안에 국회에서 선거연령을 만 18세로 낮추는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라”고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만 18세 청소년들이 첫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늦어도 4월까지는 선거법 개정을 완료해달라는 것이다. ‘강성노조’의 전형적 투쟁 방법으로 여겨졌던 삭발식과 천막농성을 청소년들이 정치적 요구를 내걸고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날 삭발을 한 김윤송 농성단장(16)은 “우리가 정말 진지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성인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꿈나무다운 밝고 발랄한 투쟁을 하기에 청소년 참정권 요구는 정말로 절박하고 간절하다”며 “청소년들은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폭력과 부당한 대우에 노출된다”고 말했다. 함께 삭발을 한 김정민양(17)은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키기 위해 수많은 청소년들이 촛불을 들었다. 촛불로 탄생한 정부가 선거연령 하향을 1순위 과제로 삼아달라”고 말했다. 권리모양(16)은 “청소년 참정권 보장은 ‘무시해도 되는’ 것으로 여겨져온 청소년들의 외침이 더 이상 무시당하지 않게 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원내정당들은 선거연령 하향을 이른 시일 내에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바른미래당 김동철 원내대표,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직접 나와 선거법 개정안 처리를 약속했다.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도 서면으로 지지 입장을 보냈다.
농성장에는 청소년 참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는 유경근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농성 천막을 찾아 청소년 20여명과 대화를 나눴다. 유 위원장은 “지금까지는 여러분이 이 사회를 책임질 필요가 없었지만 선거권을 갖게 되면 책임도 지게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청소년들은 4월 임시국회가 폐회하는 날까지 농성장을 지킬 계획이다.
한국은 선거권을 갖는 연령이 만 19세다. 19세가 돼야 선거권을 주는 나라는 세계에 5개국뿐이다. 18세에서 16세로 낮추는 나라들도 나오고 있다. 선거연령을 하향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간 꾸준히 나왔지만 “학교가 정치 갈등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소리에 번번이 꺾였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지난해 1월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무산됐다.
청소년단체들이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청와대는 선거연령을 만 18세로 낮추는 내용이 담긴 개헌안을 공개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현행법상 18세는 자신의 의사대로 취업과 결혼을 할 수 있고, 8급 이하 공무원이 될 수 있으며 병역과 납세 의무도 진다”며 “청소년들이 그들의 삶과 직결된 교육·노동 등의 영역에서 자신의 의사를 공적으로 표현하고 반영할 수 있도록 헌법으로 선거연령을 낮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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