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이사회 구조를 바꿔 여야 합의 없이 공영방송 사장을 뽑을 수 없도록 한 방송관련 법률 개정안이 다시 핫이슈로 부상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이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개정안을 재검토할 뜻을 시사하자마자, 한때 법안 처리를 막았던 자유한국당은 “방송장악 음모”라며 반발하고 있다. 개정안이 여당 입맛에 맞는 인사를 앉힐 수 있는 현재의 구조를 개선할 수는 있겠지만 한계가 뚜렷한 만큼 이번 기회에 대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시민사회에서도 흘러나온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계류 중인 방송관계법(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등) 개정안은 지난해 7월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의원 162명이 발의했다. 현재 공영방송 이사회의 여야 추천 비율은 KBS 7대 4, MBC 6대 3이다. 2000년 여야 합의로 만들어진 일종의 ‘관행’이다. 이 때문에 공영방송 이사회는 그동안 정부여당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사장으로 뽑는 거수기 역할만 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개정안은 공영방송 이사회의 여야 추천 비율을 7대 6으로 조정하고 사장 선출 시에는 이사회의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언론장악방지법’이라고 불린 이 법안은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그간 언론계는 대체로 개정안에 환영했지만 “여야 합의로 공영방송 사장을 선임하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지적도 꾸준히 나왔다. 2012년 MBC에서 해직된 이용마 기자는 27일 “이 법안의 문제는 여야의 입맛에 모두 맞는 사람이 아니면 공영방송 사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격적으로 신의 경지에 이른 인물이 아니고서야 여야 양쪽의 눈치를 모두 보는 사람이 사장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다”며 “그런 기회주의적 태도를 가진 대표적 인물이 김재철 전 MBC 사장이었다”고 말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핵심과제로 요구해온 언론노조 내부에서도 개정안이 ‘최선’은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여야의 정치적 타협으로 공영방송 사장을 정하게 한 개정안에 만족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국회 논의 기간을 줄일 수 있겠다고 보고 일단 개정안이 통과된 뒤 다시 논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정치권이 재검토를 언급하기 전인 이달 초 내부회의를 통해 “좀더 나은 개정안을 제안해야 할지 검토하자는 입장을 정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언론계 안팎에서는 이미 다양한 대안이 거론된다. 정치학 박사이기도 한 이용마 기자는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단 모델에서 따온 ‘국민대리인단’이 공영방송 사장을 뽑자는 제안을 했다. 그는 “현재 공영방송 이사회는 진영 논리에 파묻혀 합리적 토론과 논쟁이 사라진 상태”라며 “여야 공방을 지켜보고 합리적으로 선택할 심판이 필요하고,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단처럼 무작위 추첨으로 구성한 국민대리인단이 심판을 맡게 되면 국민들의 평균적인 생각과 의지를 반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공영방송 이사진을 원내정당이 한 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이사들은 시민 추천인단이 추천하는 내용의 지배구조 개선 관련 법안을 조만간 발의할 예정이다.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담는 해외 모델들도 주목받는다. 독일 공영방송 ZDF 사장을 선출하는 ‘텔레비전위원회’는 60여명으로 구성됐고 연방 관료, 정치인, 종교계 대표, 유대인 대표,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이 참여한다. 영국 BBC는 이사회에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웨일스 대표들이 참여하게 돼 있다. 고삼석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은 “그 밖에도 여야가 비토하지 않는 중립지대를 만들어 대표성을 반영하는 방안 등 여러가지를 놓고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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