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라디오 PD들이 28일 오전 5시부로 “잃어버린 청취자의 신뢰와 사랑을 회복하겠다”며 제작을 전면 중단했다. PD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MBC 라디오가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추락을 거듭한 이면에는 추악한 검열과 간섭이 있었다”며 “세월호와 위안부, 국정농단 같은 이슈들이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고 밝혔다. 표준FM의 <별이 빛나는 밤에> 등 다수 프로그램들이 진행자 없이 음악만 나가게 됐고, FM4U 채널에서는 오전 5시 이후 정규방송들이 모두 편성에서 빠지고 음악방송들만 편성됐다.
PD들은 부당한 검열을 참을 수 없어서 일터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PD들이 이날 공개한 ‘MBC 라디오 부당검열 사례’에 따르면 보직간부들은 세월호 1주기를 맞은 2015년 4월16일 라디오의 각종 세월호 관련 아이템을 검열하고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20여명을 구조한 어민을 만나 참사 당시의 상황과 심정 등을 상세히 취재했을 때는 당시 라디오국장이 3차에 걸친 사시를 통해 ‘정부’, ‘해경’등의 단어를 삭제하도록 지시했고 ‘세월호 기름 유출로 미역 양식에 어려움을 겪는 사연을 강조하라’는 지시도 내려왔다. 세월호기록단 활동을 한 박민규 다큐멘터리 감독을 인터뷰하려 했으나 국장이 “위험한 사람이다”라며 인터뷰를 취소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고 PD들은 말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당일 <양희은 강석우의 여성시대>에서는 세월호 관련 청취자 사연을 소개하며 진행자가 “빨리 수습이 되어야 할 텐데... 그런데 대통령은 어디 밖에 나가신다고 그러고, 국무총리는 이상한 일에 연루되어서 공백상태가 될 거 같고... 그럼 이거 해결이 되겠습니까? 결정권자가 없는데” 라는 멘트를 하자 라디오국장이 생방송 중인 PD를 국장실로 호출해 발언 경위를 추궁하고 방송 원고를 제출하라고 하기도 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도 대표적 금기 아이템이었다. <세계는 우리는>에서 일본 교과서의 독도영유권 주장 증가에 대해 다루려 하자 당시 라디오국장이 “한일 역사문제를 다루다 보면 위안부 문제와 엮이게 되어 민감해지니 자제하자”며 아이템 변경을 지시한 적도 있었다고 PD들은 밝혔다.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도 폭로 당사자들이 라디오에 연결되는 것은 금기였다.
지난 1월4일 <시선집중>은 덴마크 현지에서 정유라를 추적해 인터뷰한 박훈규 독립PD와 인터뷰를 하려 했지만 갑자기 취소돼 전날 인터뷰한 AI 농장주를 이틀 연속 인터뷰했다. 방송인 김어준씨를 비판하는 방송을 PD에게 주문하거나 한국GM 노동조합 채용비리를 다루라고 지시하면서 ‘귀족노조’라는 말이 들어가야 한다고 지시하기도 했다고 PD들은 말했다.
“2012년 파업이 끝난 뒤 오상진, 박혜진, 문지애 등 간판급 아나운서의 라디오 출연이 사실상 제한됐다”는 폭로도 나왔다. 출연자 관련 부당 지시는 최근까지도 계속됐다. 최근 퇴사한 김소영 아나운서는 지난해 <두시의 데이트 지석진입니다>의 한 코너 진행자로 섭외됐지만 출연 불가 결정이 나왔고, 손정은 아나운서는 지난해 3월부터 <세계는 우리는>의 코너 타이틀 등을 녹음해왔지만 4월 중순 손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모두 빼라는 지시가 내려오기도 했다.
반면 ‘백종문 녹취록’에서 “제가 요즘 우리 OOO기자를 좀 청탁을 하려고 그러는데요. 어디 뭐 라디오 같은 데, 시사프로그램 같은 데서 뉴스 브리핑을 한다든지”라며 출연 청탁을 한 것으로 나타난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은 2014년 12월26일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했다.
라디오PD들은 그간 제작자율성 침해의 책임을 지고 김장겸 사장과 백종문 사장,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이 퇴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 본부장은 제작중단에 앞선 지난 25일 “제가 추악한 간섭을 많이 해서 청취율이 추락하고 신뢰도가 추락한 것처럼 보이게 글을 써놓았다”며 “자신이 라디오국장으로 발령받은 2013년 5월22일부터 2015년 2월말까지 라디오 청취율조사 12번 가운데 4번을 제외하고는 표준FM이 청취율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공영방송 되찾겠다” 제작거부에 총파업 시작 전부터 KBS·MBC 방송 파행
양대 공영방송 노조가 ‘9월 공영방송 총파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방송이 멈추고 있다. MBC에 이어 KBS 기자와 PD들도 “지난 정권 하에서 신뢰를 잃은 공영방송 저널리즘을 다시 세우겠다”며 제작거부에 돌입했다. KBS와 MBC에서 일부 뉴스 프로그램이 결방되고 라디오 프로그램도 파행을 빚었다. 양대 공영방송에서 제작중단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2012년 이후 5년만이다. ‘공영방송 정상화’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도 유례없이 뜨겁다.
KBS 기자협회 소속 기자들은 28일 고대영 사장과 이인호 이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무기한 제작거부에 돌입했다. 서울지역 기자 295명이 이날 오전 0시를 기해 업무에서 손을 뗐다. 29일부터는 서울 외 지역 기자들도 제작거부에 동참할 예정이며, 제작 일정 등으로 인해 30일부터 합류하는 기자들까지 포함하면 전체 참여자는 470여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종훈 KBS 기자협회장은 “우리의 1차적 목표는 고 사장 퇴진이지만 최종 목표는 시청자들이 신뢰하는 KBS 뉴스를 복원하는 것”이라며 “잠시 일터를 떠났다가 승리한 뒤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
일요진단> 김진석 앵커가 제작 거부에 동참하기 위해 27일 방송을 끝으로 하차했고, 김종명 KBS 순천방송국장도 지난 25일 보직을 내려놓는 등 ‘간부급 이탈’도 확산되고 있다. KBS PD협회도 30일부터 제작거부에 합류한다. 지난달 말 MBC 시사제작국 PD들이 제작자율성 침해 사례를 폭로하며 일손을 놓은 지 한 달 만에 KBS까지 제작거부 사태가 확산됐다.
이날 KBS TV 및 라디오 뉴스는 줄줄이 결방되거나 축소됐다. KBS 2TV의 <경제타임> 결방은 확정됐다. 사측은 “시사프로그램 중 결방이 결정된 프로그램은 없다”고 밝혔지만 기자협회에 따르면 <취재파일 K>, <시사기획 창>등이 앞으로 결방될 예정이다. 라디오 편성표에서는 KBS 2FM의 아침·정오·저녁 종합뉴스가 빠졌다. 한국기자협회는 “KBS 기자협회의 전면 제작거부를 강력히 지지한다”며 “이번 투쟁이 KBS 뉴스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회복하고 공영방송을 바로세우기 위한 마지막 싸움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MBC에서도 라디오 PD 40명이 세월호 방송 등에서 부당한 검열을 받았다고 폭로하며 이날 제작 중단에 나섰고, 편성국 PD들도 가세해 MBC 내 제작 중단 참여 인원은 400명을 넘어섰다. 두 공영방송 노조가 예정대로 다음달 초 총파업을 시작하면 프로그램 파행은 예능·드라마 등 방송 전 부문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가 29일까지 진행 중인 총파업 투표율은 이미 90%에 육박해 가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다음달 4일 총파업을 개시한다는 투쟁지침을 이날 확정했다. KBS노동조합(1노조)도 31일부터 집행부와 기자·PD직종 지명파업을 개시하고 다음달 7일 총파업에 들어간다.
KBS 사측은 이날 “제작거부 주체인 KBS 기자협회는 쟁의행위를 결정할 수 없는 직능단체라 이번 제작거부는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밝혔다. MBC 사측은 ‘문재인 대통령께 묻습니다’라는 입장자료에서 “MBC 파업은 정권의 방송 장악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MBC 사측의 주장에 대해 “법과 제도에 따라 공영방송 제작거부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요 프로그램이 줄줄이 결방되는데도 공영방송 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는 유례없이 뜨겁다. 지난 2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는 시민 3500명이 참여해 공영방송 파업을 응원했다. 지난 9년간 공영방송이 권력의 홍보기지로 전락해간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은 개봉 12일 만에 15만 관객을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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