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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공영방송 버릴 수 없어” 청계광장에 다시 켜진 촛불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2017.08.25

25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돌아오라 마봉춘·고봉순(돌마고) 불금파티’ 행사가 열리고 있다.

25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돌아오라 마봉춘·고봉순(돌마고) 불금파티’ 행사가 열리고 있다.

“지난 시간 동안 공영방송을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도저히 KBS와 MBC를 버릴 수가 없어서 나왔다”

더위가 가신 25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 ‘공영방송 정상화’를 촉구하는 촛불이 켜졌다. 지난달부터 KBS와 MBC 앞에서 번갈아 열리다 이날 청계광장으로 장소를 옮긴 ‘돌아와요 마봉춘·고봉순(돌마고) 불금파티’에는 시민과 언론인 등 3500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해 코앞으로 다가온 KBS와 MBC 파업을 지지하며 고대영 KBS 사장, 김장겸 MBC 사장 퇴진을 요구했다. 청계광장 옆 도로와 동아일보 앞 보도까지 시민들이 운집했고, 퇴근길 시민들도 걸음을 멈추고 행사를 들여다봤다. 참가자들은 “김장겸은 물러나라” 구호를 외치다 출근정지 20일 징계를 받은 김민식 MBC PD와 함께 “고대영은 물러나라” “김장겸은 물러나라”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시민들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공영방송을 더이상 두고볼 수 없어 나왔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구로구에서 온 시민 주연식씨(52)는 “최근 몇 년 동안 공영방송을 쳐다도 안 봤지만 그래도 공영방송을 버릴 수 없다는 마음에서 힘을 보태주려고 나왔다”며 “사장 하나가 바뀌는 게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언론을 망가뜨리는지 2008년 YTN사태 이후로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MBC에서 해직된 최승호 PD가 만든 영화 <공범자들>을 보고 왔다는 시민들도 여럿이었다. 6살 아들의 손을 잡고 나온 홍정희씨(38)는 “<공범자들>을 보고 화가 났다”며 “이명박 정권이 내리꽂은 낙하산 인사들이 양질의 언론인들을 제자리에서 밀어내며 사익을 추구해오다가 언론 공공성을 훼손하고 방송을 망쳤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PD가 무대에 올랐을 때는 그의 얼굴을 알아본 수많은 시민들이 환호성을 보냈다.

많은 시민들이 기자·PD·아나운서 등 제작인력이 해고 등 징계를 받거나 비제작부서로 밀려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청와대의 KBS 보도개입 의혹에 침묵하는 자사 간부들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했다가 돌연 제주도로 전보됐던 정연욱 KBS 기자, 2012년 파업 이후 비제작부서를 떠돌며 스케이트장 관리 등 방송과 전혀 관련없는 일을 해야 했던 김범도 MBC 아나운서가 무대에 올랐을 때는 응원의 박수와 환호성이 쏟아졌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소속인 남웅씨(33)는 “MBC에서 수많은 아나운서와 기자, PD등이 부당전보됐다는 소식이 가장 안타까웠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성소수자 인권, 나중은 없다’ 편을 만든) 〈PD수첩〉이영백 PD의 대기발령에도 분노했다”고 말했다.

공영방송이 앞으로는 제 역할을 하길 바란다는 요구도 빗발쳤다. 남씨는 “공영방송이 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단원고 2학년 8반 희찬 아버지 박요섭씨는 이날 무대에 오른 416가족합창단을 대표해 “이번에 KBS와 MBC를 바로세우지 못하면 국민의 방송, 만나면 좋은 친구는 영영 없어질 거라고 생각한다”며 “공영방송이 앞으로 세월호의 진실을 알려주는 역할을 해 달라”고 말했다.

복막암으로 투병 중인 이용마 MBC 해직기자는 이날 영상통화를 통해 시민들에게 “2012년 서울광장에서 열렸던 파업콘서트 이후 오늘 가장 많은 인파가 모인 것 같다”며 “정치권력이 아니라 우리들의 힘으로 공영방송 KBS와 MBC를 되찾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노조 MBC본부와 언론노조 KBS본부는 다음달 초 총파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MBC ‘체제이탈’ 가속... 법무실장 사표, 노무부장 휴직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 노조원들이 지난 23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김장겸 사장 등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기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언론노조 MBC 본부는 이날 “기자, 카메라기자, PD, 아나운서 등 노조원 108명의 이름으로 고 이사장과 김 사장 등 전ㆍ현직 간부 5명을 방송언론법 위반 및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강윤중 기자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 노조원들이 지난 23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김장겸 사장 등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기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언론노조 MBC 본부는 이날 “기자, 카메라기자, PD, 아나운서 등 노조원 108명의 이름으로 고 이사장과 김 사장 등 전ㆍ현직 간부 5명을 방송언론법 위반 및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강윤중 기자

파업을 앞둔 MBC에서 간부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센터장·부장급 간부들이 줄줄이 보직을 사퇴하고 노조에 가입한 데 이어 ‘김재철-안광한-김장겸 체제’ 핵심 인사로 평가받아온 법무실장까지 사표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25일 MBC 관계자 등에 따르면 MBC 기획본부 정재욱 법무실장은 최근 사표를 제출했다. 정 실장은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됐던 김재철 전 MBC 사장의 변호를 담당한 뒤 2014년 MBC에 입사했다.

MBC는 2012년 파업이후 노조 집행부 등을 업무방해로 고소했다. 이후 노조원들이 무죄판결을 받거나 부당징계·전보를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승소하면 바로 항소·상고를 했다. 정 실장은 이런 MBC의 ‘소송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1월 공개된 이른바 ‘백종문 녹취록’에서 정 실장은 MBC를 비판한 온라인매체를 두고 “정정보도 갖고 그러는 게 구차하다. 민사소송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정 실장이 부당노동행위 등에 대한 수사를 피하기 위해 사표를 낸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언론노조 MBC본부 관계자는 “노조탄압과 부당노동행위의 핵심 인물인 정 실장이 도피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MBC 홍보국은 정 실장의 사직 이유를 묻는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에 응답하지 않았다.

MBC에서 노무업무를 총괄하는 양모 노무부장도 최근 육아휴직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파업을 앞두고 노무부장이 휴직을 한 것은 사실상 보직을 떠나겠다는 의사를 표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MBC 간부급 직원들 이탈은 지난달 〈PD수첩〉 제작진들의 제작중단 선언 이후 이어지고 있다. 언론노조 MBC본부에 따르면 〈PD수첩〉팀장이었던 장형원 당시 시사제작3부장이 “PD로서의 양심을 지키겠다”며 보직사퇴를 선언한 뒤 김형윤 시사제작4부장, 민운기 콘텐츠제작2부장, 최혁재 취재센터장, 황외진 뉴미디어뉴스 편집부장 등 보도·제작을 총괄하는 주요 간부들이 줄줄이 보직을 던지고 파업을 앞둔 노조에 가입했다. 논설위원실 소속 논설위원 6명을 포함해 보도부문 국장·부국장급 최고참 9명도 지난 18일 노조에 가입했다. 임정환 보도NPS준비센터장은 공개적으로 보직사퇴, 제작거부 의사를 밝혔다. 보도국 경력기자들도 노조에 줄줄이 가입하고 파업에 동참하면서, 2015년 800명대까지 떨어졌던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 수는 최근 1000명대를 회복했다.

김장겸 사장은 지난 23일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저와 경영진은 절대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 ‘전면전’을 선언했다. 간부들도 이 자리에서 “회사 정상화 이후 이를 위해 노력한 모든 직원들에 대해 잊지 않고 걸맞은 조치를 취하겠다”고 결정하는 등 직원들 설득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