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가 쉬운 해고·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 등을 골자로 한 이른바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비선조직을 운영하며 보수단체를 동원해 여론전을 펼치고 예산을 무단으로 끌어다 쓰는 등 온갖 위법행위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다. 고용노동부 장관 자문기구인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28일 노동개혁 관련 외압 실태 등에 대한 조사결과를 밝히고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현숙 전 고용복지수석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수사의뢰하라고 김영주 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개혁위 조사 결과 김 전 수석은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노동부 차관 직속기구 형태로 운영된 ‘노동시장개혁 상황실’을 실질적으로 지휘하며 청와대 노동시장개혁 태스크포스(TF)의 실무기구로 활용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정부는 일반해고의 요건을 완화해 ‘쉬운 해고’를 할 수 있게 만들고 공공기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등 노동시장을 기업 위주로 재편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TF는 노조를 압박하거나 보수청년단체를 동원하고 야당에 대응하는 방안, 기획기사나 전문가 기고를 ‘조직화’하고 TV토론을 기획하는 방법 등을 결정하는 역할을 했다. 이 TF 회의자료를 작성하거나 결정사항을 집행하는 역할을 한 것이 노동부 상황실이었다.
상황실이 청와대 지시를 받는다는 사실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작성한 문서는 매일 삭제하고, 문서파일을 개인컴퓨터에 보관하는 것을 금지했다. 출력물은 사용 후 즉시 파쇄한다는 ‘비상상황 대응 계획’까지 만들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비밀TF가 폭로된 직후여서 문서 보안을 더욱 철저히 하라는 주문이 있었다고 개혁위는 밝혔다.
상황실이 저지른 위법·부당행위는 전방위에 걸쳐 있다. 노동계가 ‘노동개악’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던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상황실은 고용보험기금과 세대간 상생고용 지원사업 등에서 102억6000만원을 끌어다 썼다. 일자리를 안정시키는 데 써야 할 돈을 일자리 안정성을 무너뜨리는 정책 홍보에 몰래 가져다 쓴 것이다.
홍보비가 배정되기도 전에 신문과 TV에 광고를 선집행했고, 법에 따라 한국언론진흥재단에 광고를 맡기는 대신 수의계약을 하기도 했다. 정부가 여론몰이를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정부는 노사정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고 사회적 논란이 심한 정책을 홍보하면서 노조에 대한 반감과 사회적 고립을 유도하는 선전을 했다. 2015년 8월 회의록에는 노동비서관이 “노조를 압박하자는 취지이므로 노동단체를 자극하더라도 메시지를 창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내용이 적혀 있다. 보수청년단체도 끌어들여 활용했다. 대통령직속청년위원회 소속 공무원이 청와대 TF회의에 참석해 청년단체 동향을 보고했고, 김 전 수석은 보수청년단체의 기자회견 등을 지시했다.
2015년 4월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한 한국노총을 압박하기 이미 확정된 국고보조금 지급을 끊었고. 이듬해 초에는 지원대상 사업에서 배제했다. 상황실을 통해 야당 정책에 대한 대응논리를 만들고 여당 당원들에게 보내는 ‘야당 비판 문자메시지’를 작성하기도 했다. 노동부가 기사 주제와 구성을 정해가며 언론사들에 돈을 내고 지면에 싣게 한 ‘기획기사 유료구매’도 20건 이상 확인됐다. 국가정보원이 2008∼2013년 민간인 592명과 기업 303곳의 고용보험 정보를 요구한 사실도 확인했다.
개혁위는 상황실 운영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김현숙 전 수석과 이병기 전 실장에 대한 수사를 의뢰할 것을 김영주 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국정원이 요구한 자료만으로는 자료의 목적이나 대상자 선정기준을 파악할 수 없으니 이를 확인해줄 것도 노동부에 요청했다. 김 장관은 “지난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법을 위반한 업무를 추진한 의혹으로 국민들께 실망을 드린 데 대해 소관 부처 장관으로서 사과드린다”며 “개혁위 권고 사항을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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