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직원이 우리 차를 타고 다니는 게 당연한 거지. 만든 사람도 안 타는 차를 누가 타려고 하겠나.”
지난 26일 오후 3시30분 한국지엠 창원공장 정문 앞. 아침 7시부터 일한 오전조가 퇴근하는 시각이다. ‘비정규직도 함께 살자’고 쓴 현수막을 들고 선전전을 하는 김영수씨(49·가명) 앞으로 쉐보레 마크를 단 차량이 줄줄이 빠져나왔다. 공장 안 주차장에는 한국지엠에서 만든 차가 아니면 주차를 할 수 없다. 실제로 노동자들 대부분이 쉐보레를 탄다. 김씨도 한국지엠 차를 타지만 “좋은 차가 아니라 창피하다”며 차종은 끝내 밝히지 않았다.
김씨는 이 공장에서 20여년을 일했다. 차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자재를 대는 게 그의 일이었다. 1991년 가동을 시작한 창원공장은 경차와 경상용차를 전문적으로 생산한다. 티코, 마티즈, 다마스, 스파크가 김씨 손을 거쳐 나왔다. 그렇지만 그는 한국지엠 직원이 아니다. 20여년간 줄곧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한국지엠 창원공장 정문 앞에서 지난 26일 오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안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남지원 기자
창원 토박이인 그는 20대 초반 ‘대우’ 시절의 한국지엠에 들어왔다. 비정규직이라는 개념도 없을 때였다. 석 달 수습을 거치면 협력업체 소속이든, 본사 소속이든 똑같이 일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차이는 크지 않았다. 복지도, 성과급도, 명절 선물도 같았다. 비정규직도 해가 지나면 꼬박꼬박 호봉을 올려 받았다.
외환위기 이후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정규직 임금이 10만원 오를 때 우리는 7만원 올랐어요. 그 차이가 계속 쌓였으니 지금은 어떻겠습니까.” 현수막의 한쪽 끝을 잡고 선 김씨에게 퇴근하던 이들이 눈인사를 해왔다. 처우가 같았을 때는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함께 어울리고 술도 마셨지만 지금은 그러기 어렵다.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는 조선업계에 이어 자동차업계 ‘구조조정’에 신호탄이 됐다. 하지만 그전부터 자동차산업은 위기였고, 일하는 사람은 큰 폭으로 줄어왔다. 정규직은 쉽게 해고할 수 없으니 늘 타깃이 되는 것은 비정규직이었다. 창원공장에 배정된 물량도 계속 줄었다. 올 초에만 한국지엠은 창원공장 비정규직 142명을 해고했다. 비정규직을 내보내기는 쉽다. 회사가 협력업체와 계약을 해지하거나 협력업체가 폐업하면 비정규직은 일자리를 잃는다.
완성차 제조라인에서 일했던 비정규직 이진성씨(41·가명)는 지난 1월 하루아침에 해고된 이들 중 한 사람이다. 이틀 전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아침 5시면 일어나 출근하던 아버지가 대낮까지 집에 머물자 아홉 살 난 아들이 물었다. “아빠, 해고가 뭐야? 아빠 해고당했어?”
이씨는 “아빠 해고 안 당했어”라고 대답하고 다음날부터 아이들이 깨기 전에 집을 나와 공장 정문 앞 컨테이너 농성장을 지킨다. 이날도 그와 조합원 서너 명이 농성장을 지켰다. 농성장은 사흘 전부터 전기가 끊겼다. 가로등 전기를 끌어다 쓴다고 구청에 신고가 들어갔는데, 그 신고를 한 사람이 회사 관리자라는 소문이 돌았다.
■ 같은 일 하는데 ‘소속 회사’ 7곳째
이씨는 한국지엠 사내협력업체에서 16년을 일했다. 출근하는 곳도, 하는 일도 한 번도 바뀐 적 없지만 서류상 그가 소속된 회사는 16년 새 6번이나 바뀌었다. 협력업체들이 한국지엠과의 계약해지와 폐업 등으로 계속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가 해고당하면서 손에 쥔 퇴직금은 1년치인 300만원에 불과했다. 협력업체가 폐업하면 ‘퇴사 후 재입사’ 형식으로 다시 회사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해고되면서 석 달짜리 단기계약직으로 재입사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3개월, 6개월씩 일하고 다시 해고되라는 뜻이니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그냥 목숨을 연장하라는 것 정도밖에 안되잖아요. 그때 할 수 없이 제안을 받아들인 동료들은 내일 계약이 끝나는데 재계약이 될지 안될지 알 수 없다고 해요.”
그가 입사할 때만 해도 협력업체들은 비정규직이지만 계약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무기계약직 형태로 사람을 뽑았다. 2003년부터 3개월짜리, 6개월짜리 단기계약직이 생겼다. 일한 지 10년 안팎인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단기계약직을 몇 년씩 전전하다가 공장에 자리를 잡았다. 이씨 옆에 앉아 있던 김희근 창원비정규직지회장도 “단기계약직으로 5년 반 동안 공장을 들락날락한 끝에야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이들의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밖에 안된다. 하루 8시간 일하면 월 150만원을 받는다. 매달 쪼개져 나오는 상여금을 합쳐야 수입이 200만원을 겨우 넘는다. 지금은 실업급여를 받으며 농성장을 지키는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계를 유지한다. 이씨는 “완전히 가정이 파괴됐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한국지엠 노사는 지난 23일 법정관리 문턱에서 극적으로 임단협을 타결했다. GM 본사와 정부가 자금 투입을 결정하고 신차 투입을 준비하기로 하는 등 군산공장 폐쇄 이후 계속됐던 한국지엠 사태가 일단락됐다.
하지만 잠정합의안에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폐쇄된 군산공장 직원들은 추가로 희망퇴직을 받고, 잔류하겠다는 이들은 다른 공장에 전환배치를 고려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군산공장에 남은 노동자 680명 중 2차 희망퇴직을 신청한 이들은 스무 명 남짓이다. 그 나머지 사람들이 부평과 창원 공장으로 전환배치되면 한정된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것은 비정규직이다.
■ 노사 합의에는 빠진 ‘비정규직’
창원공장에서 이전에 벌어진 비정규직 해고도 정규직들에게 비정규직들의 일감을 다시 가져다 맡기는 ‘인소싱’ 과정에서 생긴 일이었다. 사측은 비정규직지회를 교섭대상 노조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잠정합의안 찬반투표를 할 수도 없었다.
이씨는 군산공장이 문을 닫은 후 매주 전국을 돌아다녔다. 서울 미국대사관과 산업은행, 정부서울청사 앞 농성장, 부평공장 앞에서 집회를 했다. 정규직 조합원들과 같이 유인물을 나눠주고 구호를 외쳤다. 집회장에서는 “총고용 보장”을 함께 외쳤지만 비정규직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내용은 단 한 줄도 들어가지 않은 합의안을 받아든 그와 동료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설마 하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들러리가 된 것 같아요. 한국지엠이 사업을 접고 창원공장까지 폐쇄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한 건 다행이죠. 그렇지만 우리 처지는 달라진 게 없잖아요. 차라리 법정관리에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어요.”
오후 4시, ‘함께 살자’라고 적힌 조끼를 입은 비정규직 조합원 60명이 창원 성산구청 앞에 모였다. ‘한국지엠이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있습니다. 창원시민 여러분 동의하십니까?’라는 현수막을 들었다. 진환 창원비정규직지회 사무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군산공장에서도 폐쇄 이전에 대량해고 사태가 있었습니다. 3년 전 비정규직을 대량으로 해고했을 때 정부가 먼저 대응했으면 군산공장 폐쇄 같은 사태가 있었을까요? 창원공장은 제2의 군산공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군산공장이 창원공장의 미래가 될까 두렵다. 군산공장은 2015년 근무 형태를 1교대로 전환하고 2년간 비정규직 1000여명을 내보냈다. ‘불 꺼진 공장’이 된 군산공장은 “가동률이 20%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폐쇄됐다. 군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200여명은 모조리 실직자가 됐다. 창원공장 안팎에서도 물량이 더 줄어 내년 말부터 2교대에서 1교대로 바뀔 거라는 얘기가 돈다. 구조조정 강도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정규직들은 희망퇴직을 하면 퇴직금과 위로금 등을 받지만 비정규직 해고자들에겐 고용보험에서 나오는 실업급여뿐이다.
공장을 돌릴 때나 없앨 때나, 늘 가장 큰 희생을 치르는 것은 비정규직들이다. 창원공장에는 무기계약직과 단기계약직을 합쳐 60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근무한다. 이제 시작 단계인 자동차업체 구조조정 속에서 이들의 일자리는 어떻게 될까. 앞서 구조조정이 휩쓸고 지나간 조선업계에서도 비정규직들이 가장 많이 내몰렸다. 대우조선해양이 구조조정을 본격화한 2015년 9월부터 2년간 정규직 3343명, 협력업체 비정규직 1만4058명이 일터를 떠났다는 통계가 있다.
■ ‘불법파견’ 발표 않는 노동부
‘사내하청’은 자동차업계에서 노무비용을 줄이기 위해 흔히 쓰는 방법이다. 일감을 협력업체에 통째로 맡기면 협력업체 비정규직들이 공장 안에서 일을 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득이 크다. 임금이 절반이고 복지는 거의 없는 데다 해고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문제는 회사가 정규직을 써야 할 자리에도 사내협력업체 비정규직을 쓴다는 점이다.
이들은 정규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을 하고, 사실상 원청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원청이 업무를 지휘하거나 원청 소속 노동자들과 같은 업무를 시키면서 사내하청을 쓰는 것은 불법이다. 한국지엠 창원공장은 대법원에서 이미 2013년과 2016년 두 차례 불법파견 판결을 받았다. 한국지엠 소속 정규직과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직이 뒤섞여 똑같은 작업을 하고, 필요할 때에는 원청업체가 직접 교육을 하거나 업무를 지시하고 근태관리도 했다는 이유에서다.
판결 후 한국지엠은 자동차 조립공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분리하고, 작업지시도 협력업체 관리자가 내리게 하는 방식으로 불법파견 시비를 피해갔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고 했다. 이씨는 “정규직이 오른쪽 바퀴 달면 비정규직이 왼쪽 바퀴 단다는 표현이 딱 맞다”고 했다.
고용노동부 창원고용노동지청은 지난해 12월11일부터 올해 1월19일까지 한국지엠 창원공장의 불법파견 문제를 가리기 위해 근로감독을 했다.
노동부는 법원 판례 등을 검토해 불법파견이 맞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지만, 석 달 이상 지난 지금까지도 “결론을 내지 못한 채 검토 중”이라며 입을 다물고 있다. 노동자들은 ‘노동부가 한국지엠의 눈치를 보며 발표를 미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불법파견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라는 명령을 내릴 경우 한국지엠과 정부의 협상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지엠은 일단 한국에 남기로 결정했지만, 그 협상을 위해 정부가 눈감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앞으로 계속될 구조조정 태풍 속에서 살아남을지 알 수 없다.
아직 공장에 남은 김씨와 해고된 이씨, 그리고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농성장에서 5월1일 노동절을 맞는다. 매일 출근해 자동차 부품을 만지던 이들이 이제는 조를 짜서 불 꺼진 농성장을 지키고, 공장 앞에 모여 집회와 선전전을 연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우리가 일할 자리가 진짜 없을까.” 퇴근하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장을 담장 밖에서 바라보던 김씨가 혼잣말처럼 탄식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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