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전으로 다가온 KBS와 MBC의 공동 총파업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확산되고 있다. 1일 열린 방송의 날 기념 축하연에는 여야 정치인들과 정부 인사들이 줄줄이 불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정한 방송을 향한 방송인들의 열망을 소중히 지키겠다”는 축사로 파업에 힘을 실었다. 공영방송 적폐이사 퇴출을 요구하는 서명에 8만명 가까운 시민이 참여했고, 같은날 대규모 파업지지 문화제도 열렸다.
총리실에 따르면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방송 90주년’ 제54회 방송의 날 축하연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전날 이를 공지한 지 1시간 만에 일정을 철회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당초 청와대에서 총리가 방송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축사를 대독해 달라고 요청해 일정을 잡았다가 이후 방송통신위원장이 대독하는 것이 좋겠다고 다시 요청이 와서 일정을 변경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는 방송의 날 10년 주기마다 방송진흥유공자 포상을 하고 기념 축하연에 대통령이 참석했다. 방송 80주년이었던 2007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70주년이었던 1997년에는 김영삼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했다. 하지만 90주년을 맞이한 이날 행사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 총리는 물론 정세균 국회의장,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등 주요 정부 인사들이 대부분 불참했다. KBS와 MBC의 파업을 앞두고 방송사 사장들이 모이는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자유한국당 홍준표,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이혜훈 등 여야 교섭단체 대표도 전원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행사에는 구성원들로부터 퇴진 요구를 받고 있는 고대영 KBS 사장, 김장겸 MBC 사장 등이 참석했다. MBC 김장겸 사장은 행사 도중 자신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소식을 듣고 자리를 떴다.
문 대통령은 이효성 방통위원장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이제 방송인 스스로 방송 본연의 사회적 역할과 공적 책임에 대해 성찰하고 되돌아보아야 할 때”라며 “국민만을 위해 방송을 만들 자유, 공정한 방송을 향한 방송인들의 열망을 소중히 지키겠다”고 말했다. 허욱 방통위 부위원장은 “많은 방송인들이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지키기 위해 카메라와 마이크를 내려놓고 방송 현장을 떠나있다”며 “하루빨리 법과 원칙에 따라 방송이 정상화돼 이들이 본연의 자리로 되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KBS와 MBC 파업에 힘을 싣기 위해 파업이 벌어지는 동안 출연을 거부하겠다는 움직임도 이어졌다.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파업 기간 동안 KBS와 MBC에 일체 출연하지 않기로 했다. 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이보다 앞선 지난달 30일 “KBS 정상화를 위한 구성원들의 의지와 희생, 노력에 공감한다”며 출연 예정이었던 예능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도 출연을 취소했고,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도 “KBS가 하루빨리 정상화되길 바라는 뜻에 함께 하겠다”며 사실상 파업 지지를 선언하고 출연을 취소했다. 언론노조 KBS본부에 따르면 오는 3일 방송되는 KBS <일요진단>에 출연할 예정이었던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도 ‘정상화 이후 다시 고려하겠다’며 이를 취소했다.
공정방송 회복을 내건 양대 방송사의 총파업을 지지하는 시민 목소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자율성을 훼손한 KBS와 MBC 이사들을 파면해달라는 시민청원에는 이날까지 7만8000명이 넘는 시민이 참여했다. 지난주 청계광장에 시민 3500여명이 모여 공정방송 회복과 KBS·MBC 경영진 퇴출을 요구한 데 이어, 이날 방송의 날 행사가 열리는 63빌딩 앞에서도 대규모 문화행사 ‘돌아오라 마봉춘·고봉순(돌마고) 불금파티’가 열렸다.
언론노조 KBS본부와 MBC본부는 4일 0시부터 파업에 들어간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이날 “총파업 이전에 김장겸 사장을 포함한 현 경영진이 조건 없이 사퇴한다면 총파업 돌입을 유보하고 방송 정상화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사측에 최후통첩을 했다.
4일 KBS·MBC 노조 총파업…“‘국민의 언론’ 되찾을 것”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전국언론노조 MBC·KBS 본부가 4일 자정부터 총파업에 들어간다. 두 공영방송 노조가 함께 일손을 놓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 시도에 맞서 2012년 동시 파업을 벌인 지 5년 만이다.
언론노조는 3일 성명을 내 “MBC·KBS의 총파업 돌입으로 국민 여러분의 방송에 불편을 끼쳐드리게 돼 송구하다”라며 “반드시 언론 정상화를 위한 싸움에서 승리해 ‘국민의 언론‘, ’언론다운 언론’을 품에 안겨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4일 오후 2시 서울 상암동 MBC광장에서, KBS본부는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KBS 사옥 앞에서 각각 파업 출정식을 연다. 총파업 참가인원은 MBC 2000여명, KBS 1800여명이다. KBS 1노조도 오는 7일 파업에 들어가기 때문에 파업 인원은 더 늘어날 예정이다. MBC본부는 지난달 24~29일 파업 찬반투표를 벌여 93.2%가 넘는 찬성률로 가결한 바 있다.
제작거부로 이미 ‘방송차질’ 시작
이미 지난 7월 MBC <PD수첩> 제작진을 시작으로 양대 방송 기자·PD협회 차원의 제작거부가 이어져 오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기본 근무자를 제외한 모든 노조원이 예외 없이 파업에 참가하기로 했다. KBS본부는 4일 오후 9시 ‘KBS뉴스9’ 방송 시간이 1시간에서 40분으로 20분 줄어들고, 오는 9일부터는 주말 ‘KBS뉴스9’ 방송 시간도 40분에서 20분으로 줄어들 것이라 보고 있다. MBC는 라디오PD의 제작거부로 이미 지난주부터 FM4U의 정규프로그램이 대부분 결방됐고 음악만 송출하고 있다.
이번 총파업의 목적은 김장겸 MBC 사장, 고대영 KBS 사장 등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경영진의 사퇴와 ‘공영방송 정상화’이다. 2012년 파업 이후 KBS는 세월호 참사 보도지침 등 청와대와 경영진의 제작 개입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대선 직전에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황교익 칼럼니스트의 <아침마당> 하차, 지난 7월에는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의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출연거부 등 ‘블랙리스트’ 논란도 불거졌다. MBC는 보도 개입 문제뿐만 아니라 2012년 ‘170일 파업’ 참가자에 대한 부당해고·징계·전보 문제가 심각한 상태다. 노조에 따르면 2012년 이후 부당해고·징계는 71건에 이르고, 주차장·스케이트장 관리요원 등 ‘유배지’로 쫓겨난 기자·PD가 91명에 달한다. 지난달 7일에는 MBC 경영진이 기자들을 정치성향·회사 충성도에 따라 등급을 매긴 ‘카메라 기자 블랙리스트’까지 폭로됐다.
법원조차 인정했는데...방송사들 또 ‘불법파업’ 주장
양대 방송 경영진은 ‘불법 파업 프레임’을 꺼내들었다. MBC 사측은 1일 보도자료를 내 “경영진 퇴진을 목적으로 하는 파업은 명백한 불법”이라 주장했다. KBS도 지난달 28일 “근로조건과 관련한 파업이 아니라서 불법”이라고 밝혔다. 이에 언론노조는 “공정보도를 위한 파업의 정당성은 법원에서도 이미 인정했다”고 맞받았다. 2014~2015년 MBC노조 조합원들의 해고·징계무효소송에서 1·2심 법원은 “방송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이에 대한 시정요구는 쟁의행위의 정당한 목적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3일 북한이 6차 핵실험을 벌이자 두 방송사는 “급박한 국가적 위기”라며 제작거부 중인 기자들에게 업무 복귀를 종용했다. 하지만 KBS 기자협회는 “안보 비상상황에서 공영방송 KBS가 국민에게 정확하고 심층적인 뉴스를 전달할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고대영 사장이 퇴진하면 곧바로 24시간 방송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MBC 기자협회도 “사장 퇴진시까지 방송 정상화를 위한 쟁의행위를 지속할 것이다. 국민들께서도 양해해주실 것”이라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김장겸 사장은 어디에?
파문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지난 1일 법원이 김장겸 사장 체포영장을 발부하자 자유한국당은 2일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단순히 MBC 사장의 체포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의 근본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이라며 9월 정기국회를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다. 정작 김 사장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김 사장은 지난 1일 방송의날 행사에 참석했다가 체포영장 발부 소식을 듣고 행사장을 빠져나간 뒤 상암동 사옥은 물론 여의도 자택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 6월부터 MBC 부당노동행위를 수사중인 고용노동부는 김장겸 사장에게 4차례 이상 소환통보를 했으나 응하지 않자 결국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는 두 노조의 파업을 지지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KBS·MBC 정상화 시민행동’이 공정성과 자율성을 훼손한 양대방송 이사들을 파면해달라고 추진 중인 청원에는 3일까지 8만3000명이 넘는 시민이 참여했다. 정치권에는 ‘출연 거부’ 선언이 잇따랐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은 파업 기간 KBS와 MBC에 출연하지 않기로 했다. KBS <불후의 명곡>에 출연할 예정이었던 민주당 표창원 의원,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출연을 취소했고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까지 “KBS가 하루빨리 정상화되길 바라는 뜻에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파업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다만 경영진 퇴진 등 핵심 요구를 달성하지 못한 2012년 파업과 달리, 이번에는 정부·여당이 공영방송 정상화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등 안팎의 조건이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공영방송 개혁에 단호한 입장을 밝혀 왔다. 방송통신위원회도 오는 11월 예정된 지상파 3사의 재허가심사 때 “보도와 제작의 중립성과 자율성을 집중적으로 심사하겠다”고 나섰다.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경영진 퇴진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 까지 파업을 이어갈 것”이라며 “9년간의 적폐를 모두 정리한 뒤 파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라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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