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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최승호 감독 "방송 스스로 <공범자들2> 만들 수 있어야"

영화 <공범자들>의 최승호 감독이 1일 서울 중구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제작과정에 대한 얘기를 하고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영화 <공범자들>의 최승호 감독이 1일 서울 중구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제작과정에 대한 얘기를 하고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지난해 겨울, 매주 수백만명이 촛불을 들었던 광화문에서 시민들의 또다른 분노 대상은 공영방송이었다. KBS 취재차량에는 ‘박근혜 퇴진’ ‘하야하라’는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었다. “짖어봐”라는 조롱까지 듣던 MBC 기자들은 결국 마이크에서 자사 로고를 떼고 카메라 앞에 섰다. 광장에서는 “언론도 공범”이라는 외침이 울려퍼졌다.

그랬던 시민들이 이제 방송을 되살리겠다며 거리로 나선다. 지난달 25일과 지난 1일 서울 청계광장과 여의도에서 각각 열렸던 ‘돌아오라 마봉춘·고봉순(돌마고) 불금파티’에는 시민 수천명이 모여 파업을 앞둔 공영방송 구성원들을 응원했다. 세월호 유가족도 무대에 서서 공영방송 정상화를 기원하며 노래를 불렀다. 한 시민은 “지난 시간 동안 KBS와 MBC는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버릴 수가 없어서 나왔다”고 말했다.

그 여론의 중심에는 MBC에서 해직된 PD인 최승호 감독(55)의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이 있다. <공범자들>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이명박 정부가 큰 타격을 입은 뒤 정권이 어떻게 KBS와 MBC에 대한 파괴 공작을 벌였는지를 그렸다. 정연주 KBS 사장을 억지로 몰아내고, <PD수첩> PD들을 체포하고, 낙하산 사장 퇴진을 요구했던 MBC 구성원들이 하나하나 해고·전보되는 모습이 담담하게 담겼다. 최 감독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장겸·안광한·김재철 등 전현직 MBC 사장, 길환영 전 KBS 사장 등 ‘공범자들’을 찾아가 왜 낙하산 사장을 내려보내 방송을 망가뜨렸는지, 왜 ‘증거 없이’ 기자와 PD들을 해고했는지, 왜 청와대의 지시를 받고 방송 공정성을 해쳤는지 물었다.

밑도끝도 없이 도망치는 사람도 있었고, “방송의 미래를 망치지 말라”며 적반하장으로 따지는 이들도 있었다. MBC 전현직 간부들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신청까지 냈지만 법원은 “공영방송이 그동안 제역할을 못한 이유를 다뤄 공익성을 제고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라며 기각했다. 지난달 17일 개봉한 이 영화에는 3일까지 20만명의 관객이 들었다. 다음은 1일 서울 광화문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만난 최 감독과의 일문일답.

-2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공범자들>을 봤다.

“좌석점유율은 박스오피스 10위권에 있는 영화 중 2위다. 사실 경쟁력이 있는 영화인데 상영관이 너무 적다. 그래도 다큐를 본 관객들이 거리에서 만나 간혹 알아보고 인사를 청하기도 한다. ‘(전작인) <자백>을 봤습니다’고 하는 분들도 있고.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은 이전에 방송프로그램을 만들던 시절에 내 방송을 본 분들과는 또 다른 깊이가 느껴지는 반가움을 표한다.”

-왜 ‘공범자들’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나.

“재미있으니까(웃음). 그들의 어마어마한 짓을 기록해야 한다. 공범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징벌은 그들의 행위를 영상으로 기록해 놓는 것 같다. TV 프로그램은 빠르게 잊히지만 영화라는 매체는 거의 영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오래 간다. 아무리 관객이 적게 들어도 검색만 하면 금방 나오고, 100년 뒤에도 찾아서 볼 수 있다. 기록성이 강한 매체다. 공범자들의 얼굴 하나하나와 행위와 변명을 기록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작업이라고 봤다. 직접 만나면서 질문을 던지는 행위 자체가 그들의 민낯을 보여주는 효과를 낳는다.”

-‘공범자들’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정했나.

“사실 내가 만지작거렸던 제목은 ‘10년 전쟁’ ‘뉴스 워’ 이런 제목이었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영화 개봉 전 스토리펀딩을 시작하기 전날, <자백> 마케팅을 대행해준 영화 홍보대행사 올댓시네마의 김태주 실장이 ‘공범자들’이라는 제목을 제안했다. 두말 없이 선택했다.”

-주로 어떤 관객들이 보러 오나.

“다른 영화보다는 좀더 나이드신 분들이 보러 오시는 것 같다. 평점을 남긴 분들 중 30~40대가 많다. 친구들과 보러 온 10대들도 만났다. 한 학생은 ‘내가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왜 인생을 잘 살아야 하는지 느꼈다’고 했다. 고등학생이 <공범자들>을 본 감상을 페이스북에 길게 쓴 것도 봤다. 영화를 보고 그렇게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 김민식 MBC PD가 홀로 회사에서 김장겸 사장 퇴진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학급 안에서 불의한 일을 지적했을 때 ‘또라이’ 취급을 받은 경험이 생각났다고 하더라.”

-영화를 본 관객들은 주로 무슨 이야기를 하나

“진보적인 분들은 ‘나도 촛불집회 가서 KBS, MBC를 질타하고 미워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앞으로 KBS와 MBC 싸움을 도와주고 싶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무슨 영화인지 모른 채 주변에서 가자고 해 보러왔다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은 ‘나는 진보적인 사람은 아닌데, 그동안 정부가 이렇게까지 언론을 통제한 줄 몰랐다’며 놀란다.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 인터넷 평점도 영화 개봉 이후 7점대에서 9점 이상으로 올라갔다. ‘평점 테러’가 줄고, 영화를 직접 보고 영화평을 쓰는 사람이 늘었다.”

-<공범자들>을 본 시민들이 공영방송을 되살리겠다며 거리로 나서고 있다. 영화가 시민들을 움직인 이유가 무엇일까.

“아주 처절하게 깨진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일 거다. 시사회를 다니면서 ‘우리가 공영방송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공범자들>을 많이 알려달라, ‘돌마고 불금파티’에 많이 나와달라는 이야기를 꼭 한다.”

영화 <공범자들>의 포스터.

영화 <공범자들>의 포스터.

-영화 속 인터뷰 대상자들은 정말 수준 이하의 반응을 보인다. 가장 참담했던 순간은 언제였나.

“안광한 전 사장을 인터뷰했을 때였다(영화에서 안 전 사장은 최 감독을 마주치자 비상계단을 통해 도망친다). 그렇게 도망칠 것이라고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따라가면서도 ‘방송을 한 사람이고 MBC 사장을 3년씩이나 한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라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 ‘악의 누추함’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물론 악한이지만, 악한으로서라도 최소한의 자기 존재에 대한 자존감을 가지길 원했는데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마지막 자존심까지도 다 버린 느낌이었다. 밉다는 수준을 넘어서 나 스스로가 창피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또 다른 ‘공범자들’도 있지 않나. “문재인 대통령은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한다”고 법정에서 다시 주장한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같은.

“안 전 사장은 그나마 자기가 부끄러운 걸 아는 사람인데 그 사람은 정말 큰일날 사람이다. 현직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이 정상인가. 그런 사람에게 MBC라는 사회적 공기를 맡겨두는 것은 위험하다. 그는 자기 확신이 있고, 도덕적으로도 자기는 잘못되지 않았으며 나라를 위해서 그런 일을 한다고 말한다.”

-안광한 전 사장,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과는 다른 유형의 ‘공범자’도 있었나.

“길환영 전 KBS 사장은 질문에 대답은 했지만 거짓말이었다(그는 영화 속에서 청와대의 지시를 받고 보도국장에게 사표를 종용했냐는 질문에 ‘그런 적 없다’고 답했다). 청와대에서 전화해서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사표를 내라고 한 건 다 아는 일이다. 그걸 부인하려고 세월호 유가족까지 끌어들여 ‘유족이 시키는대로 했다’고 하는데 참 웃기는 일이다.”

-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포스터의 주인공이 됐나.

“이명박이 이 모든 일을 저질렀으니까. 박근혜는 이명박의 유산을 물려받은 상속자다. 이명박이 ‘끝판왕’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스스로 꼽은 영화의 명장면은.

“(MBC에서 해직된 뒤 암에 걸린) 이용마의 인터뷰부터 시작해서 맨 마지막, 이용마와 김민식이 2012년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으러 법원에 가는 모습으로 이어지는 장면이 좋은 시퀀스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이용마가 이야기하는 내용, 이용마의 얼굴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깊은 느낌을 자아내는 장면이다. 바로 앞까지는 이명박이 나온다.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다. 병색이 짙은 모습의 이용마가 나오면서 감정선이 급전직하한다. 그리고 과거의 건강한 모습이 등장하고, 지난 9년간 징계를 받은 언론인들의 이름이 화면에 올라간다. 무대인사를 하러 가면 불이 켜진 뒤 눈물을 닦고 계시는 분들이 많다.”

-영화에 쓰지 못한 아까운 영상이 있다면.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인터뷰했는데 쓰지 못했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쫓겨난 뒤에 넣어야 하는데 사건의 흐름을 가로막는 느낌이 들어 뺐다. 2008년 정 전 사장이 KBS에서 쫓겨난 직후, 유재천 당시 KBS 이사장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목소리 높여 항의하던 KBS 구성원들이 멍하게 서서 숨소리만 내는 장면이 있었다. 해일이 몰려오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방송인들이 가졌을 느낌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면인데 영화 앞부분에 너무 성찰적인 장면이 들어가는 것 같아서 잘라냈다. 앞으로 감독판 등으로 공개할 기회가 있길 바라고 있다.”

-KBS와 MBC가 5년 만에 파업을 시작한다. 2012년과 다른 점은 ‘공범자들’의 이탈이다. 양 방송사의 보직간부 상당수가 이탈했다.

“지금이라도 이탈하면 공범자가 아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지금도 나오지 않고 그 안에서 계속 김장겸과 있겠다는 것은 MBC를 완전히 망치겠다는 얘기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자들이 진짜 공범자다. 그들은 용서받지 못할 거다.”

-일부 MBC 간부들은 끝까지 퇴진하지 않겠다고 버티는데.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해보려는 부질없는 시도다. 그들도 영화를 봐야 한다. 법원에서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기각한 것은 영화 내용을 법원에서도 인정했다는 것이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주장하며 자기합리화를 하려 하는데 부질없는 짓이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고백하고, 욕심에 눈이 멀어 MBC와 구성원들에게 못할 짓을 했다고 석고대죄해야 한다.”


“언론의 실패는 정치에서부터 왔다. 이 모든 것은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뒤 권력을 가지고 자기에게 유리한 보도를 하게 하려고 KBS와 MBC를 장악한 것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다. 언론을 장악하려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 영화를 통해 직시해야 한다. 언론을 장악해서 견제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비리, 국정원 댓글 사건 같은 일이 생겼다. KBS와 MBC가 제대로 견제했으면 박근혜가 그렇게까지 국정농단을 방치하고, 자기 스스로 게이트의 일부가 됐을까. 그러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본다. 언론이 사회를 안전하게 지키는 버팀목이 돼야 하는데 실패한 거다. 사실 자유한국당이 봐야 하는데, 자유한국당은 아직 보자는 소리를 안한다. (웃음) 바른정당, 국민의당도 좀 봐야 하고.”

-앞으로 어떤 분들이 <공범자들>을 보길 바라는가.

“‘공범자들’도 참회의 뜻으로 봐야 한다. 자신들이 한 짓을 객관적으로 보라. 개인적으로 좀 보수적인 분들도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이미 법원에서 훑어본, 사실관계가 정확한 내용이다. 언론은 사회의 근본이고 미래 세대를 위해서는 언론을 잘 보호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수 있는 분들이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MBC 해고무효 소송에서 2심까지 승소하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돌아가면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가.

“‘PD수첩’을 해야지. ‘PD수첩’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 나를 필요로 하는 역할을 고민해서 결정해야 할 것 같다.”

-<공범자들 2>를 만들 계획은.

“KBS와 MBC가 정상화되면 자신들의 뉴스로, 프로그램으로 <공범자들 2>를 만들어야 한다. ‘PD수첩’으로, ‘MBC 스페셜’로, ‘추적 60분’으로도 만들고 자성을 해야 한다. 공영방송이 그동안 어떤 과정을 거쳐왔고 어떤 짓을 했는지, 어떻게 정상화됐는지 제대로 밝히는 프로그램을 스스로 방송해야 한다. 지금까지 공해 수준의 방송을 해놓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바른 방송을 해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