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한테 폭언을 들었다고? 내가 너에게 폭언을 했단 말이야?”
전남대학교병원 간호사 ㄱ씨는 지난 1일 병원 측의 설문조사 답변지를 제출하다가 부서장에게 면박을 당했다. 부당한 업무를 강요받았는지, 폭언이나 폭행은 없었는지 등을 묻는 설문지를 줄 때 상사는 ‘자유롭게 작성하라’고 했다. 그러나 간호사들이 낸 답변지를 훑어보다가 병원 측에 불리한 답변이 나오면 서너명 뿐인 부서원들의 글씨체를 따져가며 ‘이건 네 글씨 아니냐’고 추궁했다. 설문지 작성을 관리자가 지켜보기도 했다. 전남대병원 노조가 4일 공개한 ‘강압적인 설문조사’ 사례들이다.
지난달 29일 이 병원 노조는 ‘병원내 인권유린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노조가 조사를 했더니 간호사 246명 중 64%가 본인 업무와 관련없는 청소, 짐 나르기, 풀 뽑기, 주차관리 등을 해야 했다고 답했다. 19%는 회식에서 술을 따르라는 강요을 받았다고 했고 64%는 욕설, 반말, 폭언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병원 측이 조사에 나섰다. 그래서 벌어진 일이 ㄱ씨가 겪은 것과 같은 ‘압박성 설문조사’였다. 병원 ‘갑질’을 폭로하니 ‘2차 갑질’로 되돌아온 셈이다.
노조는 병원 측이 ‘노조항의 동의 서명’도 시켰다고 주장한다. 간호사들에게는 부당업무 강요에 관한 기사 출력물과 함께 한 장의 동의서가 배포됐다. “편향적 보도를 제공한 노조에 이의를 제기하고 강력 항의한다”는 문구 밑에 서명란이 있었다. 관리자들은 간호사들을 따로 불러 서명하게 하거나,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돌아가며 이름을 적으라고 했다. “종이를 내밀며 그냥 이름을 적으라고 했다” “따로 불러 서명하라고 했다.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는 호소가 이어졌다고 노조는 설명했다.
노조에 따르면 이 병원은 2006년 직원 4명이 잇따라 자살해 특별근로감독을 받았다. 2016년 6월에도 한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노조는 “직무 스트레스 탓”이라고 주장했으나 병원 측은 부인했다. 이번 설문조사와 동의서 제출에 대해 노조는 “또 다른 인권유린이자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라면서 “병원 내 갑질과 인권유린을 근절하기 위한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해 근본 해결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병원 측은 “노조의 설문조사엔 전국 보건의료노조의 답변이 포함돼 있다고 판단해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자체 설문을 진행했고 동의서 역시 동의하는 간호사들만 서명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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