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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열전

때리고 추행하고 바다에 빠뜨리고…‘베트남 선원 잔혹사’

베트남 국적의 선원 ㄱ씨(22)가 지난 3월 배에서 떨어져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다.|이주노동자차별철폐와인권노동권실현을위한공동행동 제공 영상 갈무리

베트남 국적의 선원 ㄱ씨(22)가 지난 3월 배에서 떨어져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다.|이주노동자차별철폐와인권노동권실현을위한공동행동 제공 영상 갈무리

“뭐? 바까 주세요? 바까 달라면 베트남 가세요! 오케이? 바까줄 수 있어. 돈, 가져와, 나한테. 조금있으면 니 경찰에 (수갑이 채워진 손 모양을 하며) 이거 돼. 알어?”

한 중년 남성이 짧은 영어 단어를 섞어가며 누군가를 윽박지른다. 상대는 베트남 국적의 ㄱ씨(22)다. 선장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사업장을 바꿔 달라’고 요구하니 선주가 오히려 그를 협박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다.

베트남에서도 선원 일을 했던 ㄱ씨는 지난해 6월 고용허가제를 통해 어업이주노동자 비자를 받고 한국에 들어와 갈치잡이 배에 올랐다. 석달 뒤 동갑내기 ㄴ씨도 한국에 와 같은 배를 탔다. 선장은 수시로 두 사람을 때리고, 도마든 칼이든 보이는대로 집어들고 던질듯이 위협하곤 했다. 11월쯤부터 ㄴ씨에겐 성추행을 시작했다. 선장이 숙소에 불쑥 들어와 성기를 움켜쥐는 일이 서너 차례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선주의 가족인 한국인 선원에게까지 폭행당한 ㄱ씨는 서귀포해양경찰서에 신고했다. 병원과 제주이주민지원센터도 다녀왔다. 선주는 그를 달래어 다시 배에 타게 했으나, 약속과 다르게 폭언과 폭행은 계속됐다. 지난 3월, 선장은 ㄱ씨를 배에서 밀어 바다에 빠뜨린 채 몇 분이나 떠다니게 뒀다.

ㄴ씨가 이 모습을 영상으로 찍었다. ㄱ씨는 물에 빠진 채 허우적거리며 배를 따라잡으려 애쓴다. 이를 아랑곳 않고 배는 계속 움직인다. 어둠 속 배 위에선 누군가 흐느끼듯 울부짖는다. 죽다 살아난 ㄱ씨는 이날 선주에게 직장을 바꾸게 해 달라고 했다. 돌아온 반응은 ‘직장을 바꾸려면 돈을 가져오라’는 협박이었다.

다음날 ㄱ씨와 ㄴ씨는 경찰서에 가서 선장을 고소했다. 그러자 선주는 두 사람을 숙소에서 쫓아냈다. 고용노동부 고용지원센터에 가서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하니 ‘선주의 확인이 있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성추행을 당한데다 동영상까지 찍은 ㄴ씨는 보복이 두려워 배로 돌아가지 않았다. 선주는 ㄴ씨가 사업장을 이탈했다고 신고했다. 이탈신고가 들어가면 강제출국을 당할 수 있다. 경찰 고소사건이 진행중이던 ㄱ씨는 이탈신고를 피했다.

ㄴ씨는 선장의 성추행에 대해 노동부에 진정을 낸 이후에야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 두 사람은 지금 제주이주민센터가 운영하는 쉼터에 머무르고 있다. ㄱ씨는 물에 빠진 당시의 충격으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선장과 선주는 경찰 조사에서 폭행과 폭언, 성추행 혐의를 모두 부인하면서 ㄱ씨가 물에 “스스로 뛰어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주는 “고소를 취하하면 사업장을 바꾸는데 합의해 주겠다”고 했지만 두 피해자는 같은 사례가 나오지 않도록 선장을 꼭 처벌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은 29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 신고부터 사업장 이동, 이탈 신고 등 모든 권한이 사업주에게 달려 있는 고용허가제도가 문제”라며 “이주 선원들의 노동조건과 인권침해, 차별 실태를 전면 조사하고 이들의 노동권 보호를 위한 대안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이주노동자들이 마음대로 일터를 바꾸지 못하게 한 고용허가제는 ‘노예계약’ 식의 반인권적인 노동관행을 만드는 주범으로 오래 전부터 지목돼왔다. 백선영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조직부장은 “사업주의 잘못이 드러나면 사업장을 바꿀 수 있는 조항이 있지만 이주노동자들은 피해를 신고해도 피해사실을 스스로 증명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