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벗어난 반달가슴곰들이 잇따라 사고를 당하면서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환경단체 녹색연합은 15일 “환경부가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을 ‘개체 수 증가’에서 ‘서식지 관리’로 전환한다고 발표하고 얼마 되지 않아 지리산권을 벗어난 반달가슴곰 2마리가 사고를 당했다”면서 “반달가슴곰 서식지 안정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이나 실행 계획이 없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고 밝혔다.
지난 14일 올무에 걸려 숨진 채 발견된 KM-55의 모습. _ 환경부 제공
최근 한 달 사이 지리산 반달가슴곰 관련 뉴스가 이어졌다. 전남 광양 백운산에서 활동하던 반달가슴곰 KM-55는 지난 14일 올무에 걸려 바위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불법적으로 설치된 사냥용구에 희생된 것이다. 2014년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KM-55는 2016년 7월 지리산을 처음 벗어났으며, 섬진강을 건너 20㎞ 정도 떨어진 광양 백운산에서 지냈다. 이 곰은 지난달 11일 밤 광양시 다압면의 한 양봉농가에서 벌통 1개와 시설물을 부순 뒤 벌꿀과 유충을 먹고 달아나기도 했다. 피해 양봉장 주변에 전기울타리를 설치하고 보험회사를 통해 피해 보상을 하기로 했지만, 인근 주민들의 우려가 나왔다.
지난달 5일에는 ‘콜럼버스 곰’으로 유명한 KM-53이 지리산에서 100㎞ 떨어진 경북 김천 수도산까지 세 번째 탈출을 시도하다가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은 KM-53을 포획해 왼쪽 앞다리가 부러진 사실을 확인하고 골절 수술을 시행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지만, 회복되는 동안 야생성을 잃을 가능성이 있어 재방사 여부도 불확실한 상태다.
KM-55의 사망사고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세계 최초로 반달가슴곰을 인공수정으로 출산하는데 성공했다고 홍보한지 3일만에 벌어졌다. 종복원사업의 명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난 셈이다. 환경부는 지난달 2일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 방향을 ‘번식’에서 ‘서식지 관리’로 전환한다고 밝힌 바 있다. 숫자가 늘어난 반달가슴곰이 지리산 바깥으로 가도 더이상 막지 않겠다는 의미다.
반달가슴곰을 지리산에 풀어주기 시작한 것은 2004년이다. 지난 겨울 8마리가 태어나면서, 올해 지리산에 사는 반달가슴곰이 56마리로 늘었다. 2020년까지 야생에서 반달가슴곰이 생존할 수 있는 규모인 50마리까지 늘린다는 당초 목표가 2년 빨리 달성됐다. 숫자가 늘어난 것은 좋은데 지리산이 비좁아졌다. 지리산의 수용한계가 78마리 정도로 추정되는데 반달가슴곰의 생태를 고려하면 2027년에는 100마리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결국 다른 서식지를 찾는 곰들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현재로선 지리산을 벗어나면 곧바로 죽음으로 내몰리는 상황에 처한다는 점이다. 녹색연합에서는 종복원사업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종복원사업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환경부 산하에는 종복원기술원을 비롯해 국립생물자원관, 국립생태원 등 종복원 관련 기관이 여럿 있다. 환경부는 종복원사업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경북 영양에 900억원을 들여 국립멸종위기종복원센터를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반달가슴곰복원 등 종복원사업은 여전히 국립공원관리공단 산하 종복원기술원에 맡겨져 있다.
임태영 녹색연합 활동가는 “산하기관들끼리 영역 다툼을 하느라 협조가 이뤄지기 쉽지 않은 구조이며, 통합적인 종복원 계획이 나오기 어렵다”고 밝혔다. 반달가슴곰의 경우 관할기관의 한계 때문에 국립공원을 벗어난 대책이 나오기 어렵다고도 했다. “종복원기술원의 경우 국립공원인 지리산권을 벗어난 지역에선 서식지 구축이나 모니터링을 하는데 인력이나 권한 등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면서 “이전에 반달가슴곰이 지리산을 벗어날 때마다 회수에 나선 것도 결국 관리할 수 있는 영역으로 잡아들인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이번 사태는 정책 전환 과정에서 과도기적 상황으로 봐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환경부의 발표에도 앞으로 제기될 우려와 관련한 대책이 포함은 됐다. 환경부는 반달가슴곰이 활동하거나 활동이 예상되는 17개 시·군이 참여하는 ‘반달가슴곰 공존협의체’를 통해 서식지 개선에 나서겠다고 했다. 곰들이 이동하는 생태축을 다시 잇고, 고속도로 폐도를 복원하거나 생태통로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주요 서식 가능지에선 덫이나 올무 따위를 없애고, 곰의 출산이나 이동시기에 맞춰 국립공원 탐방로를 일시 통제하는 방안도 포함했다. 하지만 대책이 실제 효과를 나타내기 전 곰들이 사고를 당했다. 임태영 활동가는 “종복원사업이 시작된 2004년부터 서식지 대책이 함께 가야한다고 주장했는데 개체수를 늘리는데 집중하다가 늦은감이 있다”면서 “이번 사고가 복원사업에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잇따르는 사고로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에 대해 소셜미디어나 포털뉴스 댓글에는 회의적인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멸종위기종 복원은 단순히 동물을 복원하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반달가슴곰의 경우 지리산을 대표하는 ‘깃대종’이다. 깃대종은 특정 지역의 생태계를 대표할 수 있는 중요 동·식물로, 생태계를 회복하는 개척자라는 이미지를 깃발로 형상화하여 깃대로 표현한 것이다. 반달가슴곰 복원사업도 단순히 곰 한 종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리산 전체 생태계를 복원하는 사업인 셈이다.
환경부와 종복원기술원은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공존협의체를 통해 불법 엽구 수거 등 서식지 보호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불법 엽구 설치자에 대해서도 경찰 수사를 의뢰하고, 반달가슴곰 서식지역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홍보·협력 활동을 늘린다.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변상윤 사무관은 “올 하반기에 문을 여는 국립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서 종복원 관련 기관들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좀 더 체계적적으로 멸종위기종 복원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변 사무관은 “동물의 이동권을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판단에서 지리산 바깥으로 반달가슴곰의 이동을 막지 않았는데 사고가 발생해 안타깝다”면서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인간과 곰의 공존 활동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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