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고비사막에서 황사가 발원하면 한국까지 오는데 얼마나 걸릴까. 오래 걸려도 사흘이다. 황사가 어디서 얼마만에 왔다는 사실은 어떻게 아는 것일까. 몽골의 초원과 사막까지 뻗어있는 기상관측소 덕분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람이 직접 살펴보던 몽골의 관측소가 최근 첨단 자동장비로 변했다. 한국 기상청의 국제개발협력(ODA)를 통해 자동기상관측시스템이 구축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몽골의 기상관측은 한국의 기상관측과 같은 영역”이라고 말한다. 한국 날씨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8~22일 몽골을 방문해, 한국에 황사를 불어보내고 그곳 사람들의 삶을 흔드는 기후변화의 위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몽골 테를지의 초원 풍경. 올 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6월 중순을 지나서도 초원이 누런빛이다. 현지인들은 벌써부터 겨울철에 가축을 먹일 풀이 걱정이라고 했다. 테를지 _ 배문규 기자
| 고비사막의 모래폭풍
몽골은 드넓은 초원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로 뿌연 밤하늘이 유명하다는데 울란바토르 칭기스칸공항에서 맞은 첫날 밤에는 검은 하늘에 달만 보였다. 인구 절반인 150만명이 사는 울란바토르는 고층 빌딩과 자동차가 넘쳐나는 대도시다. 50만명이 살 수 있는 인프라인데 인구가 폭증해 온갖 문제가 생기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대기오염이다. 석탄 아니면 나무를 때니 겨울철에는 매연 때문에 마스크 없이 걷기 어려울 정도다. 여름은 가뭄, 겨울에는 폭설, 여기에 사막이 해마다 넓어지고 있다. 기후변화 탓이다. 몽골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나라로 꼽힌다.
옛 소련의 흔적이 남아있는 몽골 기상청 건물은 한국의 군 청사 정도 크기다. 1년 예산이 30억원 정도인데 직원은 무려 1900명이다. 몽골 땅이 한국의 15배가 넘으니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봄철의 대표적 기상 현상인 황사(黃砂)를 몽골어로는 ‘쇼룬 슈르가(Shoroon Shuurga)’ 모래폭풍이라 부른다. 기상청이 2002~2017년 한국에 영향을 준 143개 황사의 발원지를 분석한 결과 고비사막과 내몽골고원이 79%를 차지했다. 메마른 흙 위로 강한 돌풍이 불면 모래먼지가 하늘을 뒤덮고, 2~3일이면 편서풍을 타고 한국까지 날아온다.
황사가 모래와 바람에 의한 자연적인 현상이라면, 미세먼지는 화석연료에 의한 인위적인 입자다. 그러나 황사에 포함된 미세입자들이 대기 중에서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호흡기질환을 부를 수 있다. 황사 때 미세먼지(PM 2.5)에 중금속이 최대 8배까지 포함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더 큰 문제는 몽골 전역이 사막처럼 황폐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몽골 기상청에 따르면 국토의 77.8%가 사막화에 직면했다. 1981년부터는 황사일수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엥흐툽신 기상청장은 “황사 발원지에서는 100m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라면서 “사막화로 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겨울철 눈이 내리지 않아 흩날리는 토양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 “몽골의 관측이 한국의 관측”
한국 기상청은 코이카와 함께 2008년과 2010년 고비사막의 황사발원지를 실시간 감시할 수 있는 20m짜리 황사기상감시탑을 두 곳 설치했다. 지표에서 3m 높이에 있는 흡입기로 모래먼지를 빨아들여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고, 발원지의 기상학적 특성을 파악한다. 몽골의 관측장비 상당수는 한국과 중국·일본이 공동으로 지원하고 있다. 개도국을 위한 인도적 지원만은 아니다. 하늘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이다. 각 나라의 기상정보는 세계기상기구(WMO)를 통해 실시간 공유되는데, 한 곳의 시스템이 낙후되어 있으면 얻을 정보가 없다. 김신호 기상청 몽골자문관은 “황사의 이동을 알기 위해 제트기류의 움직임을 봐야 하는데 몽골의 정보가 부족하면 우리나라 관측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한국 기상청이 지원한 자동기상관측시스템(AWS)이 설치된 테를지 관측소로 가는 길에선 몽골 초원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울란바토르에서 차로 약 2시간 정도 떨어진 국립공원 테를지는 강과 초원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도 지정된 곳이다. 푸른 융단같은 초원이 한없이 이어졌다. 완만한 산능선에는 빽빽한 침엽수림도 있다. 몽골의 젖줄인 툴강이 흐르는 덕분이다. 남쪽 고비사막은 한 해 강수량이 50㎜ 정도지만 북쪽으로 올라오면 400㎜ 정도까지 내린다. 봄에 눈 녹은 물이 지표에 스며들어 초원에 싹을 틔우는 곳에서 유목민들이 오랜 세월 살아왔다. 한국에선 10m 정도를 파야 물이 나오지만, 몽골에선 3m 정도만 파면 된다고 한다. 척박한 땅처럼 보이지만 몽골인들이 5대 보물이라고 부르는 말·소·양·염소·낙타를 먹이는 생명력 넘치는 공간이다.
테를지 관측소에서는 5명이 교대로 근무한다. 울타리가 쳐진 관측소에선 초등학교에서나 봤던 백엽상이 낯익었다. 우량계부터 바람개비가 뱅글뱅글 돌아가는 풍향계까지 다양한 관측도구들이 눈에 띄었다. 한국 기상대에선 진작에 사라진 물건들이다. 몽골에선 여전히 여러 지역의 관측사들이 기온·풍향·풍속·습도·강수량·기압·지면온도를 일일이 체크한다. 테를지의 AWS는 흩어져있는 관측도구들을 한데 모아 실시간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전송까지 할 수 있는 장비다. 수집된 정보는 울란바토르의 기상청을 거쳐 세계로 공유된다. AWS는 1986년부터 자동화를 시작한 한국에선 흔하지만, 몽골에선 360개 관측지점 중에 140개 정도에만 설치돼 있다. 한국은 2019년까지 울란바토르 주변 32곳의 자동화를 지원하기로 했다.
관측소 한켠의 밭이 눈에 띄었다. 지역 식생을 육안으로 관찰하는 구역이다. 몽골에선 동식물 관측을 중요하게 생각한단다.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정보이기 때문이다. 몽골은 최근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오윤자갈 예보과장은 “겨울철에는 ‘조드’, 여름에는 폭우와 산사태, 봄과 가을은 강한 바람과 미세먼지가 심하다”면서 “인프라가 열악해 눈이 10~20㎝만 와도 가축이 굶어죽고, 단시간에 비가 30㎜만 내려도 산사태와 홍수 피해가 일어난다”고 했다.
| 기후변화가 낳은 ‘환경난민’
조드. 몽골인들이 피하고 싶어하는 ‘재해’를 뜻하는 단어다. 눈이 쏟아지고 혹한이 이어지면, 눈과 얼음으로 초지가 덮여 가축들이 굶주림에 떼죽음을 당한다. 최악의 조드가 온 2009~2010년에는 몽골의 80%가 눈으로 덮였고 영하 40도의 추위가 수십일 동안 이어졌다. 유엔은 그해 겨울에 전체 가축의 17%에 달하는 800만마리가 숨진 것으로 파악했다.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무서운 자연재해다.
게르에 살면서 목축을 하는 이들은 조드에 가장 취약하다. AWS가 설치될 예정지인 누흐릴럴 관측소에서 살펴본 게르에는 ‘뽀로로’ 주제가가 흘러나오는 평면TV부터 싱크대와 냉장고같은 생활집기들이 제법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나무뼈대에 천을 씌운 천막집은 30~40분이면 해체해 옮길 수 있다. 전에는 말에 실었지만 지금은 트럭에 싣고 집을 옮긴다.
기후변화의 피해자는 대개 몽골같은 저개발국가들이다. 여름은 빨리 끝나고, 가을은 짧고 건조해졌다. 그리고 긴 겨울이 온다. 10년에 한 번 정도이던 조드의 간격도 짧아졌다. 조드로 삶터를 뜬 ‘환경난민’들은 울란바토르로 몰려와 ‘도시 빈민’이 됐다. 이들은 교외에 게르를 치고 석탄과 나무를 때며 겨울철 대기오염을 더욱 악화시킨다. 조드가 발생하면 식량난에 경제적 위기까지 불러온다.
몽골 기상청은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기 위해 예보 정확도를 높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지 가이드 바히르는 “1980년대에는 기상청에서 비가 올지 안 올지 모르니 우산을 가지고 나갈지 알아서 정하라고 알렸다”는데 최근 정확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최고기온의 예보 절대오차는 2001년 3.7도에서 2017년 2.1도로, 최저기온은 2001년 3.1도에서 2017년 2.2도로 줄었다. 1~5일간 강수량 예보 정확도도 2011년 89%에서 2016년 90.4%로 향상됐다. 한국 기상청 윤기한 사무관은 “최근 예멘 난민 문제도 내전에서 비롯됐지만, 큰틀에서 보면 기후변화로 삶의 기반이 흔들린 측면도 있다”면서 “개도국에 노하우를 전해주기 위해 협력을 계속 늘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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