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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뉴스]국민노총은 양대노총 파괴하려 MB가 만든 어용노조였을까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수정2018-06-24 07:01:01
 

지난 19일 오후 검찰이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양대 노총 중심의 노동운동을 분열시키려 공작을 벌인 정황이 포착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 대해 압수수색을 마친 뒤 물품을 가지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잘못된 인식을 가진 일부 사업주들이 노동조합을 해산시키려고 노력해도 잘 안 되니까 자기 말을 잘 듣는 노동조합을 따로 하나 만들어서 대응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래서 부당노동행위로 사업주가 처벌을 받기도 해요. 그런데 그걸 국가가, 청와대 비서실이 한 겁니다.”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벌어진 정부 차원의 노조와해 전략이었던 ‘국민노조 창립 사건’을 한 마디로 요약한 겁니다. ‘실용노선’과 ‘탈이념’을 외치며 2011년 출범했다가 3년만에 한국노총에 흡수돼 잊혀진 이름이 된 ‘제3노총’ 국민노총. 국민노총이 설립될 당시 벌어졌던 일의 전모가 이제야 검찰 수사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국가가 주도한 ‘노조파괴 공작’

노동조합을 결성해 회사와 교섭할 권리는 헌법에 보장된 우리 국민의 기본권입니다. 하지만 일부 악덕 사업주들은 임금을 올려달라, 업무환경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하는 노조를 귀찮아하고, 노조의 힘을 뺄 방법을 집요하게 찾기도 합니다. 노조원에게만 일감을 안 주거나 한직으로 보내버리기도 하고, 노조가 요구한 단체교섭을 별 이유도 없이 거부하기도 합니다.

2011년 한 사업장에 2개 이상의 노조를 만들 수 있도록 법이 바뀐 다음에는 ‘회사 말 잘 듣는 착한 노조’를 만들어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방법도 많이 쓰였습니다. 물론 이는 헌법상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 위법입니다.

이런 일이 국가 단위로 벌어졌던 게 바로 이명박 정부 시절 벌어진 국민노총 설립 사건입니다. 검찰은 지난 19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실 등을 압수수색했습니다. 당시 국가정보원과 노동부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중심의 노조운동을 와해하기 위해 국민노총 설립을 주도했고, 그 과정에서 예산을 지원하기도 했다는 정황을 포착한 겁니다. 국정원이 국민노총 설립 전후로 지원한 불법자금은 억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MB노총’이라 불렸던 국민노총

국민노총은 2011년 11월 ‘양대노총 중심의 노동운동’에 반기를 들며 출범했습니다. 초대 위원장을 맡은 정연수 위원장은 민주노총은 ‘이념과 이데올로기에 집착’하고, 한국노총은 ‘노사간의 투명하지 못한 유착관계와 관료주의에 젖었다’고 각각 비판하며 ‘제3노총’을 표방했습니다.

국민노총이 설립된 시기는 공교롭게도 이명박 정부와 끈끈했던 한국노총이 타임오프제 등 노동정책 때문에 정부에서 등을 돌리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정부에게 ‘노동계 안 우군’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졌을 때였죠. 이런 시기에 만들어진 국민노총은 무섭게 성장합니다. 국민노총은 현대중공업과 KT노조 등 양대노총에 속하지 않은 대기업 노조를 끌어오려고 노력했고,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등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조직된 사업장에 복수노조를 만들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2011년 11월 대전 엑스포컨벤션센터에서 국민노총이 전국단위연맹 간부 등 조합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출범식을 개최한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나서서 국민노총을 키워주고 있다는 의혹은 당시에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국민노총의 핵심 세력이었던 서울지하철노조는 내부 규약상 정족수를 채우지 못한 상태로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국민노총에 합류했습니다. 법원이 서울지하철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를 무효라고 판결했는데도 당시 노동부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지 않았다”며 국민노총 설립신고를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양대노총의 자리를 신생 노조인 국민노총이 빼앗기도 했습니다. 2012년에는 노사정 신년인사회에 늘 참석하던 한국노총 대신 국민노총이 참여했습니다. 정부가 최저임금위원회에 국민노총 자리를 내주려 하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위원회를 보이콧하는 사태도 벌어졌습니다.

정권 핵심 인사로부터 국민노총 설립에 정부가 관여했다는 증언이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노동부 장관을 지낸 임태희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2012년 4월 한 간담회 자리에서 이영호 당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이동걸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이 국민노총 설립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시사했습니다. 이 보좌관은 국민노총의 전신인 ‘새희망노동연대’에 참여했던 KT 노조 출신입니다. 최근까지 경남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던 그는 수사가 시작되자 지난 22일 직위해제당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노동계에서는 국민노총을 ‘MB노조’라고 불렀습니다. 국민노총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14년 3년만에 한국노총과 통합돼 사라졌습니다.

또 원세훈...전모 어디까지 밝혀질까

국민노총 설립 과정에서 생긴 일의 전모는 7년만에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실마리를 먼저 잡은 것은 국정원 적폐청산 TF였습니다. TF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억대 공작비를 국민노총에 투입한 증거를 검찰에 넘겼고, 검찰이 이를 받아 수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MB 국정원, 양대노총 분열 공작 의혹…검찰, 노동부 압수수색

원 전 원장은 처음부터 노조를 ‘정권을 위협하는 종북좌파 단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가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2009년 6월 “아직도 전교조 등 종북좌파 단체들이 시민단체·종교단체 등의 허울 뒤에 숨어 활발히 움직이므로 분발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해 9월에는 “밑으로 내려가면 하나하나 회사의 노조들 이런 것도 우리가 관여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개별 회사의 노조 활동에 국정원이 개입하라고 지시한 겁니다.

원 전 원장은 노조를 상대로 국정원이 공작을 벌였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발언도 했습니다. “현대차 노조위원장 선거는 (국정원의 노력으로) 재투표로 이어졌다. 민노총이나 전교조, 공무원노조 같은 문제도 (우리의) 중간 목표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국정원은 원 전 원장 시절 국정원의 노조파괴 공작 관여 사건을 자체 감찰한 결과 당시 국정원 제7·8국이 ‘건전 노총 설립 프로젝트’를 추진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거액의 돈을 투입해 민주노총을 와해시키려 했고, 민주노총 산하 노조의 탈퇴를 종용한 것으로도 알려졌습니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제3노총’ 혹은 ‘MB노총’으로 불렸던 국민노총의 설립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얼마나 밝혀낼 수 있을까요. 검찰은 노동부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국민노총 설립·운영 관련 문건을 토대로 국정원의 노조 분열 공작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졌는지 확인할 방침입니다. 구속 상태은 원 전 원장도 지난 18일 검찰 조사를 받았고, 이채필 전 장관과 국정원 관계자 등도 조만간 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노조파괴의 ‘피해자’였던 민주노총은 검찰이 이제라도 철저히 수사해 전모를 밝혀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국정원 개혁위원회는 노조파괴 범죄 내용이 담긴 감찰보고서를 작성하고도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국정원은 빨리 보고서를 공개하고 검찰은 뒤늦게 수사를 개시했지만 철저하게 수사해 책임자와 관련자를 처벌하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