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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돈 벌기

‘민간기업 첫 정규직 전환’ 1년만에… SK브로드밴드 설치기사들 파업

지난해 7월 서울 중구 메트로타워에서 열린 SK브로드밴드 고객서비스총괄 자회사 홈앤서비스 현판식 모습. SK브로드밴드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민간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협력업체 노동자 4600여명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SK브로드밴드 제공

지난해 7월 서울 중구 메트로타워에서 열린 SK브로드밴드 고객서비스총괄 자회사 홈앤서비스 현판식 모습. SK브로드밴드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민간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협력업체 노동자 4600여명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SK브로드밴드 제공

SK브로드밴드 홈앤서비스 설치·수리기사 ㄱ씨(45)는 4개월째 200만원 남짓 되는 월급을 받고 있다. 초등학생인 두 자녀를 키우면서 살기엔 부족한 금액이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초과근무와 휴일근무를 자청해가며 300만원에 가까이 받았지만 최근 일감이 없었던데다 건강이 걱정돼 초과근무를 하지 않았다. 휴일근무도 줄이고 격주로 토요일에만 일했더니 월급봉투가 얇아졌다. ㄱ씨는 “남들처럼 살려면 실적급을 많이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일하면 회사일 말고는 개인 생활이 전혀 안 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자회사에 고용되는 방식으로 정규직이 된 SK브로드밴드 설치·수리기사들이 “휴일도 없이 밤낮으로 실적에 매달려야 하는 임금체계를 바꿔달라”며 오는 29일부터 이틀간 파업에 들어간다.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는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홈앤서비스 소속 조합원 1402명 중 90.8%인 1273명이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파업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2노조를 포함하면 전체 조합원 2163명 중 1474명(68.2%)이 파업에 찬성했다.

SK브로드밴드는 지난해 7월 고객서비스를 총괄하는 자회사 홈앤서비스를 공식 출범시키고 이전까지 협력업체였던 98개 센터 직원 4600여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회사 측은 “고객 상대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구성원들 처우 개선과 역량 강화에 집중할 것”이라며 정규직 전환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간접고용된 비정규직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한다는 문재인 정부 정책에 발맞춘, ‘민간부문 정규직화 모범사례’로 언론을 탔다.

그 뒤 1년이 지났지만 노동자들은 입을 모아 “협력업체 비정규직 시절보다 처우가 나아지지 않았다”고 호소한다. 회사와 노조의 설명을 종합하면 SK브로드밴드 인터넷과 IPTV 설치·수리기사들은 기본급 158만원과 식대 13만원을 받는다. 기본급은 올해 최저임금인 월 157만3770원을 간신히 넘긴 액수다. 나머지 급여는 ‘포인트’라 불리는 실적에 따라 받는다. 직무별로 정해진 포인트를 넘기지 못하면 실적급을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하는 구조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정규직 전환 후 임금과 처우, 복리후생 향상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대부분 실적이 있기 때문에 평균임금은 318만원이고 최대 600만원을 받는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노동자들이 휴일도 없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포인트에 매달려 일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노조는 올해 임금교섭에서 기본급으로 시급 1만원에 해당하는 임금을 주고, 포인트제를 없애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사측이 기본급을 10만원 올려주는 대신 포인트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아 교섭이 결렬됐다. 노조는 파업 선언문에서 “SK는 처우 개선 약속을 내팽개치고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체계를 주장한다”며 “제대로 된 직접고용이 아니라 덩치만 큰 하청회사를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임금과 복리후생 향상을 위해 노사 간에 원만한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SK브로드밴드의 노동자들 사정은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에도 시사점이 크다. 공공부문 여러곳에서 자회사를 세워 비정규직으로 흡수하는 방식의 정규직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 관계자는 “자회사를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한들 실제 노동자들의 처우가 나아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