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강하고 행복하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보건소장은 의사만 해야 할까요?

보건소장으로는 의사를 ‘우선’으로 임용하는 것이 합당한 일일까? 다른 의료인이나 공무원들의 권리를 빼앗는 차별행위는 아닐까.

해묵은 ‘보건소장 의사 우선임용’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이어 올해에는 법제처가 이 조항을 문제삼고 나섰다. 대한의사협회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내놓았다.

법제처는 지난 12일 국무회의에 ‘불합리한 차별법령 정비계획’을 보고했다. 19개 부처 소관 65개 법령 가운데 보건복지부 소관 법률 및 시행령은 4건이다. 이중에는 ‘보건소장 임용자격을 의사면허 소지자로 제한’이란 조항도 포함됐다.

서울 영등포구 보건소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현행 지역보건법 시행령 13조 1항은 ‘보건소에 보건소장(보건의료원의 경우에는 원장을 말한다. 이하 같다) 1명을 두되, 의사 면허가 있는 사람 중에서 보건소장을 임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다만, 의사 면허가 있는 사람 중에서 임용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지방공무원 임용령에 따른 보건·식품위생·의료기술·의무·약무·간호·보건진료 직렬의 공무원을 보건소장으로 임용할 수 있다’는 단서도 달았다. 쉽게 설명하면 ‘의사를 우선으로 임용하되 의사 임용이 어려우면 보건 등 직렬의 공무원도 임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제처는 이 조항을 ‘과도한 진입장벽’으로 규정하고 “의사 면허가 있는 사람을 보건소장으로 우선 임용하도록 함에 따라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등 의사면허가 없는 의료인을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사협회는 반발했다. 의협은 지난 25일 성명을 통해 “황당함을 금할 길이 없다”며 “국민건강을 위해선 의사 보건소장 임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보건소장은 감염병 예방과 관리, 예방접종, 건강증진 등 공중보건사업을 수행하는 직책으로 의학지식은 물론 감염병 역학, 만성병 역학, 환경보건 등의 지식을 두루 갖춘 전문가가 맡아야 한다”면서 “보건소장의 업무 특성상 의사를 우선적으로 임용하는 것은 특정 직종에 혜택을 주기 위한 게 아니라 국민건강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행 법령을 보더라도 의사를 임용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관련분야 직렬의 공무원을 보건소장으로 임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실제로 전국 보건소장 현황을 보더라도 비의사 보건소장이 59%에 달하고 있다”면서 “이것이 과연 차별행위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의사를 보건소장으로 ‘우선임용’하는 문제가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5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보건소장 임용 때 의사면허가 있는 사람을 우선 임용하도록 규정한 것은 차별’이라는 ㄱ씨 등의 진정을 받아들여 복지부 장관에게 ‘지역보건법 시행령’ 개정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2006년에도 보건소장의 자격을 ‘의사의 면허를 가진 자 또는 보건 관련 전문지식을 가진 인력 등’으로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두차례 모두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전국 254개 보건소 중 의사가 보건소장을 맡고 있는 곳은 108곳(42.5%)이다. 나머지는 146곳은 관련 직렬 공무원이 맡고 있다. 보건소장 지원자 중 의사 면허 소지자를 우선 임용하고, 의사 지원자가 없는 경우에만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간다. 뒤집어서 보면 이미 보건소장 중 절반 이상은 의사가 아니지만 문제없이 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의미다. 복지부 관계자는 “법제처의 보고가 있었던 만큼 관련 의사 우선임용 조항이 타당한지 다시 검토해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