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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DMZ를 그린존으로](3)비무장지대와 '그뤼네반트', 독일에서 배우는 교훈

비무장지대가 생태축으로 변신한 독일의 ‘그뤼네발트(녹색띠)’. 사진 출처 www.erlebnisgruenesband.de

비무장지대가 생태축으로 변신한 독일의 ‘그뤼네발트(녹색띠)’. 사진 출처 www.erlebnisgruenesband.de

1987년 한국사무소를 설립한 한스자이델재단은 민주시민교육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원하는 단체였으나 한국이 고속성장을 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까지 가입한 뒤로는 남북협력을 돕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젤리거 대표는 2003년 북한을 방문해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났고 현재까지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비무장지대와 독일의 ‘녹색띠’

환경분야에서 남북협력의 가장 큰 이슈는 DMZ 보전 방안이다. 세계적으로도 생태적 가치가 높은 비무장지대의 자연은 젤리거 박사에게도 소중하고 의미있는 공간이다. “처음 만난 비무장지대는 충격적으로 아름다웠어요. 2000년대 초반 속초를 거쳐 민통선 지역에 들어섰습니다. 민통선에 들어서자마자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은 자연이 펼쳐지는 겁니다. 독일에도 ‘녹색띠’가 있기 때문에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그뤼네반트’. ‘녹색띠’라는 뜻을 가진 오늘날 독일 비무장지대의 이름이다. 분단 시절 길이 1400㎞에 폭 50~200m의 철조망이 동서독을 갈랐다. 철책선 주변은 지뢰지대와 군사시설들로 막혔고, 인간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난 고유한 생태계가 지켜지면서 멸종위기 동물들의 서식공간으로 변모했다. 남북을 가르는 비무장지대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1989년 장벽이 무너진 뒤 환경보호단체 ‘분트’가 주도해 녹색공간으로 지키자는 운동이 일어났고 지금은 독일의 대표적인 생태축이 됐다.

그뤼네반트의 보전 과정은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크다. 독일은 연방국가여서 주정부들이 사업을 추진했다. 우선 경관복원을 위한 법을 만들고 주마다 생태지역을 보존했다. 시민사회와 주민들도 참여했다.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한 사업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시민들은 ‘녹색증서’라는 모금활동에 참여하고, 환경단체들은 정보와 교육을 담당했다. 생태관광프로그램이 곳곳에서 만들어지면서 그뤼네반트의 중요성이 알려졌고 공감대가 생겨났다. 보전지역 주민들에게는 인센티브를 줘서 성공적인 보전을 이끌어냈다. 이 운동의 성과는 전 유럽의 비오토프(도시 내의 생물서식공간)를 잇는 ‘유럽 그뤼네반트’로 확대되기도 했다.

베른하르트 젤리거 한스자이델재단 한국사무소 대표가 2일 서울 한남동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통일 뒤 독일의 환경문제와 북한과의 환경협력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 배문규 기자

베른하르트 젤리거 한스자이델재단 한국사무소 대표가 2일 서울 한남동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통일 뒤 독일의 환경문제와 북한과의 환경협력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 배문규 기자

“독일인들에게 그뤼네반트는 죽음의 장소에서 생명의 장소로 변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지만, 이제는 3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일상’이 됐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통일된다면 비무장지대도 한국인들에게 의미있는 공간으로 변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는 “한국은 독일보다 시간이 있다”고 했다. 갑자기 장벽이 무너진 독일의 사례를 답습하지 말고, 어디를 보전하고 어디에 인프라를 들일지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과 함께 논의해야 합니다. 군사지역이기도 하고요. 남한만 신나서 하나부터 열까지 보존계획을 세우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양묘지원 서너 해만에 숲 변화

젤리거 대표가 거듭 강조한 키워드는 ‘신뢰쌓기’였다. 환경은 덜 민감하고, 당위성이 크기 때문에 접점을 찾기 좋은 이슈다. “만남은 신뢰의 결과입니다. 현재 북한이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있지만 환경 분야는 국제사회와 함께 할 수 있는 이슈입니다.” 그는 “다자로 만나서 양자로 가는게 좋다”고 조언했다. 특히 “남한 전문가들은 국제회의에서 북한 측을 낮춰 보는 경우가 있는데, 앞서 있는 분야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충고했다. 북한의 습지를 보호하고 싶다면 람사르협약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납득시켜야지 섣불리 시스템을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젤리거 대표가 태블릿PC로 북한의 사진을 넘겨가며 설명했다. “북한 선봉에서 해마다 열리는 박람회에 2015년 8월 재단 연구원이 참여했는데 당시 폭우로 큰 홍수피해가 발생한 현장을 확인했습니다.” 홍수 뒤 마을은 처참하게 형태조차 사라졌다. “이런 일을 통해 산림의 중요성과 임농복합의 필요성 그리고 환경 문제가 사람들의 ‘삶의 질’과 연결돼 있음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이죠.” 재단은 유럽연합(EU)의 지원을 받아 2012년부터 북한 산림복원 사업을 했다. ‘황금산’이라는 산림정보 인트라넷 구축도 도왔다. 김일성대학 등 북한 학술기관과 각 도의 양묘장을 연결해 영상과 교육자료를 공유하도록 한 것이다. 2015년 구축한 황금산의 누적방문자는 75만명에 이른다.

한스자이델 재단이 지원한 평안남도 대성군 상서리 시범단지에서는 100헥타르가 넘는 지역에 조림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_ 한스자이델재단 제공

오는 4일에는 남북 산림협력 분과회의가 열린다. “2012년 평안남도 대성군 상서리에서 양묘지원 사업을 했는데 처음에는 토양도 좋지 않고 나무도 없었지만, 3~4년만에 나무가 무성해지는 변화를 확인했습니다. 경험해 보니 돈도 많이 들지 않았습니다. 북한에서 원한 것도 첨단장비가 아니라 파이프나 양수기, 해가림막 따위였습니다. 국가 차원에서는 산림자원조사같은 큰 틀의 사업을 하겠지만, 소규모로도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정부에서 민간으로, ‘협력’이 흘러가야

‘신뢰쌓기’ 다음은 ‘균형찾기’다. “북한은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소달구질, 쟁기질을 합니다. 그래서 환경파괴는 적지만 낭만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고된 삶입니다. 앞으로 북한도 개발에 나설텐데 무작정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상적인 해법은 없고, 결국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하지만 환경의 중요성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국제적인 자리에 끌어들여야 한다고 젤리거 대표는 말했다.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담론이 왜 나왔고,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야죠. 주민들의 생활환경도 함께 개선해야겠지요. 도로도 중요하지만 환경보호도 북한에 좋은 일이라는 것을 이해시켜야 합니다.”

상서리 시범단지에서 몽골의 산림전문가가 산림자원 조사 방법론을 설명하고 있다. | 한스자이델재단 제공

상서리 시범단지에서 몽골의 산림전문가가 산림자원 조사 방법론을 설명하고 있다. | 한스자이델재단 제공

협력 과정에서는 사소한 것들도 모두 협의거리다. 환경은 그나마 덜 민감한 이슈라고 볼 수 있지면 접경지역 조류조사를 위해 가져간 망원경이나 카메라의 확대기능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산림조사도 GPS 장비 때문에 진척이 어려울 수 있다. 북한은 인터넷 등 인프라가 낙후돼 소통 자체도 힘들다.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의미다.

젤리거 대표는 “독일 통일 뒤 환경문제는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고 했다. 동독의 낡은 원전들을 처리하는 것이 당장 발등의 불이었다. 옛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 뒤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때라 방사능 오염과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컸다. 대기, 수질, 토양 등 동독의 총체적 환경오염도 문제였다. 동독 공업지역의 산성비는 심각했고, 엘베강 주변은 화학공장들의 오폐수로 오염된 상황이었다. 젤리거 박사는 “당시 결정권자들은 화폐 통합에 앞서 환경문제부터 논의했다”고 전했다.

‘공짜 해결책’은 없었다. 통일 뒤 낙후된 동독의 산업은 경쟁력을 잃었다. 역설적이게도 공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환경문제는 나아졌지만 대량 실업이 발생했다. 사회문제는 복합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완벽한 해결책은 없습니다. 다만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뿐입니다.”

젤리거 박사는 앞으로 대북 제재가 풀린다는 전제 하에, 정부에서 민간으로 이어지는 순차적인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큰 틀에서 재정지원과 인프라 지원은 중앙정부가 할 일입니다. 이후에는 민간에서 자유롭게 북한의 파트너를 찾도록 해야합니다.” 그는 “통일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고 말을 맺었다. “우선은 정상적인 관계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소통과 교류가 많아지면 통일은 저절로 옵니다. 독일도 그랬습니다.”

<경향신문·녹색연합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