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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뉴스]사립유치원 집단 휴업 사태…당국의 엄포 효과 있을까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수정2017-09-13 11:18:18
 

지난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연 ‘유아교육 평등권 확보와 사립유치원 생존권을 위한 유아교육자 대회’에 참가한 시립유치원 원장들이 ‘유아학비 공ㆍ사립 차별없이 지원, 사립유치원 운영의 자율성 보장’ 등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 사립유치원들의 협의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오는 18일 집단 휴업을 하기로 했다. 한유총은 정부가 국·공립 유치원 확대 정책을 접고, 사립유치원에 대한 지원금을 확대해 국·공립 유치원과의 차별 등을 없애줄 것을 요구한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18일에 이어 추석연휴 직전인 오는 25~29일도 휴업을 하겠다고 했다. 집단 휴업에 들어가면 사상 최악의 ‘보육대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부는 한유총의 휴업을 ‘불법 휴업’으로 규정하고, 엄정하게 대응할 방침이다. 앞서 사립유치원들은 2010년, 2016년에도 집단 휴업을 하겠다고 나서서 정부에 요구를 일부 관철시킨 전례가 있다. 이번엔 어떻게 될까.

국·공립은 98만원, 사립은 29만원?

집단 휴업을 예고한 한유총의 핵심 요구는 정부가 국·공립유치원과 차별 없이 사립유치원에도 지원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한유총은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의 76%가 사립 교육을 받고 있다”며 “공사립 구분 없이 모든 유아에게 학비를 똑같이 지원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국·공립유치원 정부지원금이 원아당 매달 98만원인데 사립유치원은 29만원으로 3분의1에 못 미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교육의 질이 높고 안정적이며 비용부담이 적은 국·공립 유치원을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립유치원들의 정부지원금 주장 자체가 왜곡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공시한 국·공립유치원 원아 지원금 98만원에는 누리과정 지원비 11만원과 교사 인건비, 시설비, 운영비까지 포함돼 있다.

반면 한유총이 내세운 29만원은 누리과정 지원비만 얘기한 것이다. 정부는 사립유치원에도 담임교사 53만원, 원장·원감 각 40만원 등 인건비를 지원해주며 월 10만~70만원의 학급당 운영경비도 주고 있다. 수업료를 동결한 유치원들에는 환경개선비도 정부가 지원한다.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사립유치원이 정부로부터 받는 인건비 등은 쏙 빼놓고 아전인수격 주장을 한다”며 “사립유치원들이 선택권 없는 부모들을 인질로 삼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서 유아교육·보육의 공공성을 확보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지난 7월1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경기도사립유치원연합회 회원들이 집회를 열고 사립유치원 지원금을 학부모에게 직접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교육청의 감사도 한 원인?

한유총이 집단 휴업이라는 강경 카드를 들고 나온 배경에는 경기도교육청의 감사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교육청은 2015년 10월부터 지난해까지 도내 사립유치원 1100여곳 중 70여곳을 감사했다. 그 결과 올해 초 비리·불법행위 등이 드러난 유치원 원장 등 14명을 사립학교법 위반·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경기도의 몇몇 사립유치원들은 교육청의 감사가 부적절했다고 주장했다. 사립유치원은 시·도 교육청이 감사할 수 있는 교육청 소속 공공기관이 아닌데 감사를 했다는 것이다. 사립유치원 원장 모임인 한국유아정책포럼은 이재정 경기도교육감과 경기도교육청 감사관 등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으로 고발하며 맞섰다.

사립유치원들은 지난달 경기도교육청 감사팀 관계자의 공개 강연 발언을 문제 삼았다. 사립유치원 전체를 ‘범죄집단’으로 몰아가는 듯한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것이었다. 한국유아정책포럼은 ‘법적 근거도 없이 협박을 일삼고 승진에 눈이 멀어 사립유치원을 감사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도교육청은 지난달 21일 ‘허위사실 유포’라며 명예훼손 혐의로 이 단체 임원 90여명을 고발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갈등이 극에 달한 시점에서 한유총은 긴급 이사회를 열어 전국 사립유치원 전면 휴업을 결정했다.

지난 7월1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경기도사립유치원연합회 회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김상곤 부총리 “집단 휴업은 불법…엄정 대응할 것”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2일 열린 전국 시·도교육청 부교육감 회의에서 “최근 사립유치원 단체의 불법 임시휴업 발표로 부모님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며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차원의 엄정한 대응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육청에서는 사립유치원 임시휴업이 불법임을 당사자와 학부모님들이 인지하고, 사립유치원 단체가 교육자의 본분을 지키며 교육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게 적극 설득해달라”고 말했다.

유아교육법 시행령 14조2항을 보면, 유치원 원장은 ‘비상재해’나 ‘그 밖의 급박한 사정이 발생한 경우’에 임시휴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한유총이 요구하는 ‘국·공립 유치원 확대 정책 반대’, ‘누리과정 지원금 확대’, ‘사립유치원에 대한 감사 중단’, ‘사립유치원 시설에 대한 사용료 인정’ 등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당국의 입장이다. 교육당국 관계자는 “한유총의 요구사항은 휴업을 통해 해결할 사안이 아니라 당국과 사립유치원들이 상시적인 협의를 통해 진행해야 할 것들”이라고 말했다. 각 시·도교육청은 휴업 유치원에 대해 행정제재를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 투쟁위원회 추이호 위원장과 유치원연합회 소속 원장들이 지난 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사립유치원 재정지원 확대와 국공립유치원 확대 정책 폐기를 요구하며 오는 18일과 25∼29일 두 차례에 걸쳐 휴업할 뜻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유치원들이 문을 닫으면 당장 발등의 불이 떨어지는 것은 학부모들이다. 교육당국은 사립유치원들이 휴업을 하면 인근에 있는 국·공립유치원과 지방자치단체 어린이집을 활용한다는 대책을 세우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휴업하는 유치원 원아들을 주변 공립유치원이나 병설유치원이 있는 초등학교 돌봄교실에서 우선 돌보게 할 계획이다. 휴업을 통보받은 학부모는 14일까지 소속 교육지원청에 ‘돌봄 이용 신청서’를 내야 한다. 15일쯤 당국이 어느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야 하는지 통보해줄 계획이다. 학부모는 휴업 당일에 안내받은 유치원 또는 초등학교로 아이를 보내고 본인 확인 등을 거치면 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유치원 사정을 봐서 가능하면 학부모가 원하는 곳에 배정할 것”이라며 “공립 유치원은 통합버스가 없어서 학부모께서 직접 아이들을 데리고 가 본인 확인 절차를 밟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지역 사립유치원 671곳 중 108곳은 18일 휴업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2곳은 휴업을 실시하지만 방과후과정은 운영한다. 나머지 대부분의 유치원들은 휴업에 참여할 지 아직 결정하지 않은 상태여서, 학부모들이 유치원별로 확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