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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삶을 위한 임금](1) 갈 길 먼 공정사회…‘갑’은 비켜서 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내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0.9% 오른 시간당 8350원으로 결정되면서 노동계와 경영계가 동시에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는 아직도 최저임금이 노동자 생계비보다 크게 부족하므로 더 올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경영계는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도산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프랜차이즈 업체의 갑질과 카드수수료, 여전히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문제 등 구조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을들의 싸움’을 넘어설 해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14일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간당 8350원, 월급 기준 174만5150원으로 결정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이 이어졌다. 그전까지 한국 최저임금 액수는 주요국과 비교해 턱없이 낮았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달러를 넘은 1999년에도 최저임금은 시간당 1525원이었고, 2만달러를 넘게 된 2010년에도 4110원에 불과했다. 노동자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2000년까지 30%에도 미치지 못했다가 2016년에야 50.3%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아직도 최저임금액과 실제 생계비 간의 격차는 크다. 내년 최저임금은 전체 노동자의 평균 가구생계비인 282만원은커녕 ‘비혼 단신 노동자’ 평균 생계비 193만원보다도 적다. 인상률이 당초 기대보다 낮은 10% 초반에서 결정되며 ‘2020년 1만원’ 공약 달성도 어려워졌다.

문 정부,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대선 공약 실현 어려울 듯

턱없이 낮았던 최저임금이 정상궤도를 찾는 과정에서 정부가 최저임금 수준 노동자들을 고용해온 영세 자영업자 대책을 내놓지 못한 까닭에 올해 최저임금 심의를 둘러싸고 극한 갈등이 벌어졌다. 과도한 임대료 인상이나 원·하청 간 불공정 거래, 대기업 프랜차이즈 본사의 가맹수수료·납품단가 폭리 같은 요인을 제어할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인건비가 올랐기 때문이다. 생존 자체를 위협받게 된 영세 자영업자들은 “절박한 현실을 무시하고 고율 인상을 지속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을과 을의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빨리 정교한 후속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양대 노총은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 임대료 상한제와 카드수수료·가맹수수료 인하 등 자영업자 보호대책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류장수 최저임금위원장은 15일 “최저임금만으로는 자영업자 문제도, 임금노동자 문제도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며 “정부가 자영업자의 특수성을 반영한 대책을 빨리 내놓고 분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왜곡된 원·하청 구조를 개선하는 데도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b>격론 끝 ‘공익위원안’으로 결정</b> 14일 새벽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공익위원과 한국노총 추천 노동자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8350원으로 확정됐다. 투표를 마친 위원들이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격론 끝 ‘공익위원안’으로 결정 14일 새벽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공익위원과 한국노총 추천 노동자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8350원으로 확정됐다. 투표를 마친 위원들이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8350원으로 최종 결정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이었던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 기조는 유지됐지만,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늘어난 탓에 일부 저임금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인상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속도조절’ 손 들어준 최임위

최저임금위원회는 14일 새벽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을 10.9%로 결정했다. 시간당 8350원, 월급 기준(월 209시간, 주휴수당 포함)으로는 174만5150원이다. 이날 회의에는 민주노총 추천 노동자위원 4명과 사용자위원 9명 전원이 불참, 공익위원 9명이 제시한 안과 한국노총 추천 노동자위원 5명이 제시한 안을 두고 표결해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노동계는 1차 수정안이자 최종안으로 전년 대비 15.3% 오른 8680원을 제시했다. 반면 공익위원들은 10.2% 오른 8298원을 제시했다. 노동자위원들은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까지 최저임금에 포함된 까닭에 인상효과가 떨어졌다고 거듭 이의를 제기했다. 공익위원들은 최종 제시안에 인상폭 0.7%포인트를 더했고 표결 결과 8 대 6으로 이 최종안이 채택됐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10%가 넘게 인상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2020년 1만원’ 공약을 달성하기는 힘들게 됐다. 공약을 지키려면 올해와 내년 인상률이 평균 15.3% 이상이어야 했다. 노동자위원들이 ‘15.3% 인상’을 내세운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저임금위는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경영계의 반발과 정부 내의 속도조절론을 받아들였다. 최근 고용지표가 악화되자 정부 일각에서 최저임금 인상폭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1만원 공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내년에 2020년 최저임금을 19.7% 이상 올려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만약 앞으로 2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이 올해와 비슷한 10% 내외를 유지하면 공약보다 한 해 늦은 2021년에 최저임금이 1만원에 도달한다. 문재인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2022년까지 1만원을 달성하려면 3년간 연평균 6.3% 이상씩 올려야 한다.

[삶을 위한 임금](1) 갈 길 먼 공정사회…‘갑’은 비켜서 있다

실질 인상률은 2~3%대 될 수도

내년에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늘어난 ‘산입범위’의 영향력을 따져야 한다. 지난 5월 최저임금법이 개정되면서 내년부터는 최저임금 기준 기본급의 25%를 초과하는 상여금, 7%를 초과하는 복리후생비가 최저임금을 계산할 때 포함된다. 내년 최저시급을 심의하면서 한국노동연구원이 최저임금위에 낸 자료를 보면, 최저임금이 10% 올라도 산입범위가 늘어나면서 1%포인트 정도가 깎이는 꼴이 된다. 내년 인상률이 10.9%로 결정됐지만 산입범위 확대를 고려하면 실제로는 1%포인트가량 낮은 9.9% 정도가 오른 셈이다.

물론 이는 ‘평균’일 뿐이다. 정기상여금이나 복리후생비를 전혀 받지 않는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10.9% 인상효과를 그대로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기본급이 낮은 대신 상여금이나 식대를 받아온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는 영향이 평균보다 훨씬 크다. 노동연구원은 법이 바뀌면서 기대했던 인상효과만큼의 이득을 누리지 못하는 저임금 노동자가 19만7000명이 될 것으로 봤다. 최저임금이 10% 인상됐을 때 산입범위 확대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의 실질 인상률은 7.8%포인트 깎이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들의 경우엔 최저임금이 실질적으로 2~3% 올라가는 것에 그칠 수 있다는 뜻이다.

양대 노총도 비슷하게 추정했다. 한국노총은 산입범위가 늘면서 상쇄되는 최저임금 인상폭이 7.7% 수준일 것으로 보고, 올해 최저임금액보다 7.7% 많은 8110원을 기준으로 내년 최저임금을 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은 산입범위가 늘어나 내년에 최저임금이 오르는 노동자가 이전 예상치보다 31만4000명 줄어들 것이라고 추산했다. 앞서 최저임금법을 개정하면서 여당은 “3년 안에 최저임금 1만원을 이루려면 산입범위를 늘리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폈다. 그런데 산입범위 ‘개악’에 이어 인상폭마저 줄어들자 노동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15일 “박근혜 정권 집권 4년간 평균 인상률이 7.4%였다”면서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내건 노동존중 정부의 슬로건이 낯부끄럽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3년 내 1만원 실현 공약 폐기 선언에 조의를 보낸다”고 했다.

한국노총 노동자위원들은 “최저임금 1만원 시대의 조속한 실현과 산입범위 개악에 대한 보완을 애타게 기대해온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희망적 결과를 안겨주지 못해 무척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위, 노동자·소상공인 현실 반영 못해" 독립성·대표성 올해도 논란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최저임금위, 노동자·소상공인 현실 반영 못해"…독립성·대표성 올해도 논란

올해도 최저임금위원회를 둘러싼 잡음은 이어졌다. 명목상 노사정이 참여하는 독립기구지만, 노사가 타협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열쇠’를 쥔 공익위원들은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노동계와 사용자 ‘대표’들 역시 양대 노총과 대기업 단체들이 추천한 인물들이어서, 노동자들과 소상공인들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불만도 쏟아졌다.

지난 14일 최저임금위에선 공익위원 9명이 제시한 안과 한국노총 추천 노동자위원 5명이 제시안 안을 두고 표결해 8대 6으로 공익위원들이 내놓은 최종안이 채택됐다. 최저임금위는 노동자위원·사용자위원·공익위원 9명씩으로 구성되는데, 공익위원은 고용노동부 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위촉한다. 노사의 극한 대립 속에 공익위원들이 캐스팅보트를 쥐는 상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정권에선 공익위원들이 사용자에 치우치면서 노와 사가 9대 18이라는 평까지 있었다. 올해에는 민주노총 추천 노동자위원들과 사용자위원들이 ‘정해진 판에 들러리가 되지 않겠다’며 불참했고, 공익위원들 손에서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내년도 최저임금액을 정하기 앞서서 정부는 ‘속도조절론’을 흘렸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최저임금 결정시한을 코앞에 둔 지난 12일 “2020년까지 1만원을 목표로 가기보다는 신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종학 중기벤처부 장관은 지난 11일 “부작용이 먼저 드러났지만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고 했다. 정부가 10% 내외로 인상 억제 ‘가이드라인’을 줬다는 말까지 나온다. 류장수 최저임금위원장이 ‘독립성을 침해하지 말라’며 거듭 경고하기까지 했다.

최저임금위의 대표성도 논란거리다. 노동자와 사용자를 대표하는 단체들이 위원을 추천하는데 대기업들로 구성된 경총이나 전경련, 대한상의 같은 경제단체, 대기업 노조의 발언권이 센 양대 노총이 최저임금을 협상하는게 옳으냐는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는다. 최저임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비정규직, 청년, 여성들이 소외됐다는 지적이 일자 올해에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청년유니온이 양대노총 추천을 받아 참여하긴 했지만, 여전히 발언권은 적다. 소상공인연합회의 경우는 추천권이 없어서 다른 경제단체들의 양보를 받아 2명이 들어갔다. 소상공인들이 회의 보이콧을 선언한 데에는 “직접 당사자의 의견이 무시”되는 상황에 대한 불만도 들어있다.

1987년 만들어진 최저임금위의 구조를 개편할 때가 됐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류장수 최저임금위원장은 지난달 28일 브리핑에서 “최저임금 대상자들의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지적과 관련해 여러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논의할) 자리를 마련해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