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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임금](3)최저임금 노동자 78%가 집안 생계 책임지는데···생계비 현실 반영해야

최저임금은 어떻게 결정될까. 매년 ‘인상률을 정하고 산출근거를 끼워맞춘다’는 비판이 쏟아지지만,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을 심의할 때 고려하는 기준들은 있다. 최저임금위는 노동자들의 전반적 임금수준, 노동생산성과 소득분배율,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경제영향 등을 두루 살핀다. 노사 양측은 ‘결정의 기준’을 두고서도 첨예하게 맞선다. 올해는 처음으로 ‘중위임금’ 대신 ‘평균임금’이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최저임금으로 1인 가구 생계만 책임지면 되는지, 2~3인 이상 가구의 생계비도 들여다봐야 하는지가 이슈다.

‘나홀로 노동자’ 아닌 ‘가족 생계’

최저임금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거나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을 구할 때 보통 사용하는 지표는 중위임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전체 노동자의 임금을 일렬로 줄세웠을 때 정확히 중간에 있는 값인 ‘중위임금’의 3분의2 미만을 받고 일하는 사람을 ‘저임금노동자’로 정의한다. 한국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2016년 기준으로 23.5%나 된다. 집계된 21개국 중 2위다. 중위임금이 상대적으로 저임금 쪽에 위치해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중위임금 대신 5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1~4인 소규모 사업장은 통계가 부정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경영계는 “평균임금은 일부 고소득 노동자들의 임금이 반영돼 높게 나타난다”며 중위임금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최저임금위는 처음으로 중위임금 대신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삼았다. 다만 노동계 주장처럼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한정하지 않고 전체 사업장의 평균임금을 살폈다. 최저임금위는 “중위임금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채택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위는 또 심의 때 ‘비혼 단신 근로자’의 생계비를 고려하고, 가구생계비는 참고자료로만 활용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한국노동패널 조사를 보면 최저임금의 95~105%선을 받는 노동자가 가구의 ‘핵심소득원’인 비율이 78%다. 용돈벌이가 아니라 사실상 집안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비혼 단신 근로자’ 평균 생계비는 193만3957원이었고, 가구원이 2~3명인 노동자 가구의 평균 생계비는 올해 기준 296만3077원~343만8495원이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을 정할 때 가구 생계비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노총은 최저임금위에 복귀하면서 민주당과 정책협약을 맺고 가구생계비를 최저임금 인상 기준으로 삼도록 제도를 개선한다는 데 합의했다.

최저임금 범위 넓혔으면 통상임금도 손봐야

앞으로 노동계의 핵심 과제는 최저임금과 통상임금의 ‘범위’를 통일하는 것이다. 내년부터 최저임금에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의 상당부분이 산입된다. 그런데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과 퇴직금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는 이것들이 들어가지 않을 수 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통상임금은 ‘고정성’을 갖춰야 한다. 예를 들어 ‘15일 이상 일해야 상여금을 준다’는 규정이 있으면 통상임금에서 빠진다. 사업주로선 최저임금에서는 산입범위를 넓혀야 이익이고, 통상임금은 범위를 줄여야 유리하다. 노동자 입장에선 반대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지난달 최저임금 산입범위와 통상임금 적용 항목을 일치시키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중이다.

경영계는 ‘주휴수당 폐지론’을 꺼내들고 있다. 노동자는 주 1회 이상 유급휴일을 받을 권리가 있다. 주 15시간 이상 일하면 휴일에 쉬면서 하루치 주휴수당을 받는다. 기업들은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내년도 ‘실질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20원이라고 주장한다. 노동계는 주휴수당과 최저임금은 성격이 다르며, 월 최저임금을 고시할 때 주휴수당을 포함시키기 때문에 ‘주휴수당 포함 1만원’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올해 논란이 된 업종별, 규모별 차등적용 불씨도 남아 있다. 지난 14일 최저임금 결정 이후 경영계는 한목소리로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요구했고, 소상공인연합회도 17일 “5인 미만 차등화 방안을 내놓으라”며 천막농성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같은 업종 내에서도 여인숙과 호텔, 동네 카페와 번화가 대형 카페처럼 처지가 다른 경우가 많아 ‘업종별 구분’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업장 규모에 따라 차등적용하려면 아예 법을 고쳐야 한다.

외국에서도 정부가 일률적으로 특정 산업군에 낮은 임금을 정하는 일은 드물다. 업종별로 최저임금이 다른 대표적 국가인 호주의 경우 공정노동위원회라는 독립기구가 연방 최저임금을 정하고, 산업별 최저임금은 이보다 높은 수준에서 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