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넘어서도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밤이 되면 좀 선선해질까 싶었지만 기온은 떨어질 줄 몰랐다. 밖으로 나갔다. 마침 동네 형님도 더위에 못이겨 나와 있었다. 하염없이 쪼그려 앉아 있는데 형님이 한마디 건넸다. “딱 한 병씩만 할까?” 소주 두 병을 해치우니 새벽 5시. “잠을 자야 먹고 살텐데 너무 더워서 자기가 힘들어요. 괴로우니까 정신 잊고 술을 마시는 거지. 새벽에 겨우 몇 시간 자고 일어났어요.”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김정호씨(58)가 말했다.
동자동 쪽방촌. 노도현 기자
지난 24일 오전 11시, 900여명이 모여 사는 동자동 쪽방촌. 주민자치조직인 ‘동자동 사랑방’에 걸린 온도계는 35도를 가리켰다. 체감온도는 38도. 폭염에 지친 주민들은 건물 앞 문턱에 걸터앉아 있었다. 다들 찬물에 적신 수건을 목에 두르고 있거나 부채질을 했다. 열린 쪽방 문 너머로 런닝셔츠만 입고 멍하니 누워있는 노인이 보였다.
골목을 돌고 돌아 도착한 3층짜리 건물. 가파른 시멘트 계단을 올라 맨 꼭대기에 2평 남짓한 김씨의 방이 있다. 월세 22만원짜리 방 한칸에는 조그만 TV, 싱크대, 냉장고가 들어가있다. 쪽방촌에 산지 7년만에 얼마전 45000원짜리 선풍기를 장만했다. 방이 워낙 좁아 벽걸이 선풍기로 골랐다. 남은 건 사람 하나 간신히 누울 공간 뿐. 화장실과 세탁기는 같은 층 사람들이 공동으로 쓴다. “선풍기 날개가 3개인데 아주 부드러워요. 여태 선풍기 바람도 못 쐬면서 지냈으니,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고 그래요.”
하지만 선풍기에게 이 폭염을 물리칠 힘은 없다. 쪽방에서 음식을 해먹는 건 상상도 하기 힘들다. “기초생활수급자 신세지만 가끔 냉면 한그릇 사먹을 때도 있죠. 삽겹살은 1인분에 만원이 훌쩍 넘더라고요. 냉동 대패삼겹살을 사서 집에서 구워봤는데, 어휴…. 못할 짓이에요.”
지난 토요일엔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공항에 다녀왔다. 도저히 더위를 견딜 수 없어서다. 좀처럼 집밖에 나오지 않던 80대 이웃주민도 김씨를 따랐다. 김씨는 “공항은 오히려 추울 정도였다. 함께 갔던 노인은 자기 죽으면 장례 부탁한다고 유언장도 맡겨놓은 분인데, 같이 공항까지 간 걸 보면 진짜 덥긴 더웠나보다”라고 했다.
15년째 쪽방촌에 살고있는 곽관순씨(49)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 안에서 가만히 있는 게 낫다고 했다. 시각장애 1급에다 관절까지 좋지 않은 곽씨는 하루 종일 선풍기 한대를 틀어놓고 TV 앞에 누워있다. “그래야 하루가 가니까 억지로 잠을 청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거죠.”
창문이 있지만 바람이 들지 않는다. 폭염소식을 전하는 앵커의 목소리와 매미소리, 담배연기만 방안을 맴돌았다. “겨울 되면 올해가 최고로 춥다고 할 거고, 내년 여름이 지금보다 더 더울 거예요. 살아보니 그렇더라고요. 인간이 이기적이어서 그런지 난 내가 사는 지금이 최고로 더운 것 같아.”
쪽방촌 한가운데 있는 공원은 더위를 피해 집밖으로 나온 주민들로 북적였다. 방에 자리가 없어 이곳에 빨래를 너는 이들도 많았다. “덥다는 것밖엔 할 말이 없어.” 한 주민이 말했다. 점심시간이면 직장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주변 식당가들도 1층 점포만 빼면 위쪽은 전부 쪽방이다. 얼룩말 무늬 몸빼바지를 입은 한 할머니는 ‘식사 하셨냐’는 인사에 “어디서 짜장도 주고 한 총각이 와서 비빔국수도 줬다”며 그릇을 내보였다. 동네 곳곳에 생수와 얼음을 나눠준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쪽방촌에서 유일하게 에어컨이 있는 곳은 KT와 서울시가 함께 운영하는 ‘동자동희망나눔센터’다. 1층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시원한 공기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쪽방촌 주민들이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든다. 모든 주민들은 어떤 음료든 1000원에 마실 수 있다. 카페에서 만난 전도영씨(37)는 “여기서 땀을 식히는 사람도 많지만 커피를 안 사먹으면 눈치 보인다고 잘 오지 않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전씨는 얼마 전까지 쪽방촌에 살다 최근 고시원으로 이사했다. “고시원은 밥, 김치는 나오는 것 빼곤 쪽방이랑 다를 게 없어요. 우리 같은 젊은 사람들은 그나마 참고 사는데 어르신들이 걱정이죠.”
지난 5월 20일부터 이달 24일까지 전국에서 폭염으로 열사병, 열탈진, 열경련, 열실신과 같은 온열질환에 걸린 이들이 1300명이 넘고, 14명은 목숨을 잃었다. 전씨는 “더위 때문에 서울역, 영등포 쪽방촌에서 몇 명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정호씨는 “더워서 입맛 없으면 술로 지탱하고, 약도 거른 채 살다가 세상 마감하는 분도 많다. 이상한 냄새가 나서 방에 가보면 돌아가신지 사나흘 지났을 때도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동자동 사랑방 활동가 박승민씨는 “쪽방마저 없으면 노숙으로 갈 수밖에 없다. 쪽방이 재기의 공간이 돼야 한다”면서 “하지만 대다수 쪽방은 나라가 아니라 민간에서 운영하고, 민간은 재개발 호재만 엿볼 뿐 하자보수조차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서울시가 기존 쪽방 건물을 임차해 시세보다 싸게 내놓는 ‘저렴쪽방’을 운영하고 있지만 열악하긴 마찬가지다. 건물 외벽을 새로 칠하고 도배를 했을 뿐이다. 주민들이 함께 먹을 믹스커피, 식기류를 넣어놓은 저렴쪽방 건물의 창고를 열자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다. 박씨는 “언론의 문제제기도,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도 모두 ‘보여주기’에 그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주거복지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쪽방 거주민 같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임대주택을 알선하는 사업을 한다고 했다. 생활이 어려운 이들에게 임차료를 현금으로 주는 주거급여 제도도 운영 중이다. 하지만 예산 문제로 쪽방 주민들에게 충분한 혜택이 돌아가긴 힘들다. 임대주택 물량도 한정돼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부도 제도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며 “주거빈곤층 현황을 좀 더 파악한 뒤 조만간 지원 대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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