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이었던 지난 17일. 사흘째 폭염주의보가 내렸지만 경기 김포의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목수 이석호씨(32)의 하루는 평소와 같았다.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는 동안 휴식시간은 점심시간을 포함해 3번뿐이었다. 오전부터 내리쬐는 햇볕에 목장갑을 끼고 안전장비를 착용한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기온이 몹시 올라간 오후에는 그야말로 숨이 턱턱 막혔다. 현장 한쪽에 몽골텐트와 간이천막이 쳐진 휴식공간이 있지만 일하는 이들 전체가 들어가 쉬기엔 턱없이 좁아 늘 자리 쟁탈전이 벌어진다. 매일 아침 제공되는 물통에 넣을 얼음도 사람 수보다 모자라서 가끔 “왜 얼음을 많이 가져가느냐”며 동료끼리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씨는 “건설경기가 나빠서 현장이 줄어드는 바람에 ‘일을 주기만 해도 감사하다’ 할 판이라, 휴식시간을 요구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폭염특보가 내린 날에는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반드시 휴식시간을 주도록 제도가 손질됐다. 정부는 지난해 말 산업안전보건 규칙을 고쳐 폭염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권리를 명문화했다. 사업주는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옥외에서 작업하는 노동자가 적절히 휴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그늘진 장소를 설치하고, 땀을 많이 흘리는 경우 소금과 음료수를 비치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이를 어기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노동부가 18일 설명한 ‘옥외작업자 건강보호 가이드라인’은 조금 더 구체적이다. 기온이 33도가 넘어 폭염주의보가 발령되면 1시간당 10~15분씩 휴식시간을 줘야 한다. 35도 이상으로 올라가 경보 단계에 이르면 가장 더운 오후 2~5시에 가급적 작업을 중지하고 시원한 물을 제공해야 한다. “물을 많이 마셔 화장실을 더 자주 갈 수 있으니 소변기를 충분히 마련하라”는 구체적 지시까지 담겼다. 사업주는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줘야 하고, 햇볕이 완전이 차단되며 노동자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야 한다. 습도가 높은 경우에는 휴식시간을 더 늘려야 하고, 신규입사자나 휴가복귀자는 열에 적응할 수 있게끔 쉬는 시간을 더 줘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런 지침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건설노조가 최근 소속 노동자 59명에게 물으니 더위나 미세먼지같은 ‘악천후 대책’이 일하는 곳에서 지켜지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20명(33.9%)뿐이었다. 이런 수칙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도 많다. 수도권의 지자체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박모씨(53)는 “오후 업무시간인 1시부터 5시까지는 너무 더워서 일하기가 쉽지 않은데 ‘더울 때는 쉬라’는 지침이 내려오지 않아 요령껏 쉴 수밖에 없다. 휴식시간과 공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고 했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6500명인데, 그 중 40%인 2588명이 낮 12시부터 오후 5시 사이 논밭과 작업장 등에서 일하다 발생했다. 지난 13일에도 충남 서산의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김모(45)씨가 건축자재를 옮기다가 쓰러졌다.
노동부는 열사병을 막기 위해 일단 ‘사망사고 예방’에 집중하기로 했다. 옥외작업자가 열사병으로 숨질 경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해당 사업장 작업을 중단시키고 강도높은 감독을 할 계획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건설현장 등 옥외사업장에 근로감독관들이 나갈 때마다 온열질환 예방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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