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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이 된 폭염](1)겨울에만 초점 맞춘 ‘에너지빈곤층’ 대책, 여름에는?

한국에너지공단 관계자들이 수급 가구를 방문해 에너지바우처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 한국에너지공단 제공

한국에너지공단 관계자들이 수급 가구를 방문해 에너지바우처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 한국에너지공단 제공

뇌병변 1급 장애를 지닌 11살 아들을 키우는 ㄱ씨 가족은 여름이 오면 더위보다 전기료 걱정에 맘을 놓지 못한다. 아이는 매일 누워 지내는데 무더위에 그냥 두면 몸이 금세 욕창으로 덮인다. 그러니 가족들은 여름마다 땀이 차지 않도록 아이 몸을 돌려주는 것이 일이다. 하지만 월수입 100만원의 빠듯한 형편에 에어콘은 마음대로 켤 수 없다. 요사이는 워낙 더워 어쩔 수 없이 틀어놨지만, 요금이 얼마나 나올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폭염이 심해지면 ㄱ씨 같은 ‘에너지빈곤층’의 고통은 더욱 커진다. ‘연료 빈곤층’이라고도 불리는 에너지빈곤층은 연료나 에너지의 절대적 소비량이 일정치에 미치지 못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돈이 없어 폭염이나 한파가 닥칠 때 냉·난방 시설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버는 돈이 적기 때문에, 냉난방을 남보다 덜 해도 냉난방에 드는 에너지 비용이 가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학계에서는 통상 에너지에 쓰는 비용이 소득의 10%를 넘으면 에너지빈곤층으로 본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전체 가구의 8.%에 달하는 130만 가구가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

사회복지기관들은 폭염 때 에너지빈곤층이 겪는 어려움이 겨울철만큼이나 심하다고 지적한다. 밀알복지재단 관계자는 “장애인 가정의 경우 냉방시설 뿐 아니라 의료장비도 돌려야 하기 때문에, 전기세 부담이 일반 가정보다 클 수 있다”며 “재활 치료와 병원비, 약값까지 감안하면 그 부담은 말로 못할 것”이라고 했다. 저소득층 가구들이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기부받아도 틀지 못해서 애물단지가 되는 일이 많은 것도 에너지비용 때문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은 에너지빈곤층에게 여러 지원을 해주지만 대부분 겨울철에 몰려 있다. 겨울철에는 등유바우처, 연탄쿠폰, 가스요금 할인, 열요금 감면 등 각종 지원이 따라붙지만, 여름철에는 생계급여에 연료비가 일부 포함된 것과 한전이 전기요금을 1~2만원 할인해주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냉방비를 지원해주기도 하지만 대개 독거 노인들만 대상으로 한다.

[재난이 된 폭염](1)겨울에만 초점 맞춘 '에너지빈곤층' 대책, 여름에는?

정책이 주로 겨울에 집중된 이유는 냉방보다 난방연료비 부담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너지경제연구원 자료를 보면 소득 하위 10% 이하 가구들에는 여름 부담도 적지 않다. 이들은 여름에도 소득 대비 14~15%를 에너지비용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이 에너지비용 부담을 더 극심하게 느끼는 것은 여름이든 겨울이든 마찬가지다. 폭염이 해가 갈수록 심해지니 저소득층의 비용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은 “겨울철 난방 지원에만 머무른 정책에서 벗어나, 여름철 냉방 지원에도 사업과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올 여름 무더위 속 온열질환 사망자는 29명에 이르고 있다.

[단독]폭염 재난에...정부, “에너지바우처 여름에도 지급”

정부는 “폭염을 재난 수준으로 인식하라”는 대통령과 총리의 지시가 나오자, 에너지바우처 확대 등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정책이 수동적이고, 변화에 늦다는 비판은 여전하다. 폭염경보가 내려져 안전사고 위험이 높은 낮시간에 야외노동자들의 작업을 중지시켜야 한다는 얘기가 늘 나왔고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에도 그런 내용이 들어갔지만 현장에선 잘 지켜지지 않는다. 결국 최고기온 역대 기록이 모두 경신된 1일 이낙연 총리가 공공부문 작업장 낮시간 작업중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노동현장에서 가이드라인이 지켜지도록 감시하고, 에너지바우처같은 것으로 저소득층 부담을 줄여주는 것은 당장 효과적인 폭염 재난대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에너지빈곤층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주거환경 개선’을 포함한 다각적인 복지정책이다. 야당 등 정치권은 서민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입을 모으지만 ‘전기료 인하’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가 냉방 효율을 높이는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하고는 있으나 혜택을 보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은 “에너지 복지 프로그램의 유형별로 효과를 검토한 뒤 정책을 패키지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현재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주거환경 개선과 태양광 등 에너지 전환 프로그램에 대한 정책적 투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폭염 재난에...정부, “에너지바우처 여름에도 지급”

박용하 기자

정부가 취약계층의 전기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겨울에만 지급하던 ‘에너지바우처’를 여름철에도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폭염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으나, 전기료 부담에 냉방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빈곤층의 어려움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다.

산업부 관계자는 1일 “최근 폭염 문제가 심각해진 것을 감안해, 에너지바우처 지급을 여름까지 확대되는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며 “내년 예산안에 반영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에너지바우처는 연료비 부담이 큰 저소득층에게 12월~2월에 8만~12만원의 연료비를 지원하는 제도다. 하지만 냉방비 부담이 큰 여름철에는 지원하지 않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정부는 폭염이 심했던 2016년 바우처 확대를 검토했으나, 비슷한 시기 한전이 전기요금을 할인했다는 이유로 시행하지 않았다.

여름철 에너지바우처를 어떤 이들에게 얼마나 지급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산업부 관계자는 “겨울철 바우처를 지급하는 54만 가구 중 어떤 이들에게 지원이 필요한지 살펴보고 있다”며 “냉난방을 필요한 만큼 하지 못하는 ‘에너지빈곤층’이면서도 기존 제도의 혜택에서 제외된 이들이 있는지 면밀히 파악해 지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