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속이 메슥거렸는데 오늘은 먹은 걸 다 토했어요. 20년 일한 언니들도 이런 더위는 처음이래요.”
3년차 도시가스 점검검침원인 김효영씨(40)는 2일 오후 일하다 말고 병원에 수액을 맞으러왔다. 그는 “어제부터 계속 어지럼증이 느껴지고 몸에 이상신호가 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서울지역 최고기온이 39.6도였던 지난 1일 그는 오전 9시에 나와서 오후 6시20분까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쉬지 않고 서울 광진구 자양동 일대를 돌아다녔다. 점검검침원은 가스검지기, PDA 단말기 등을 넣어 5㎏ 정도 무게가 나가는 가방을 메고 다닌다. 김씨는 “어제는 가스 점검을 하는 날이라서 150~200집 정도를 방문한 것 같다”며 “정해진 기한 안에 점검을 맞춰야하기 때문에 날이 더워도 쉴 수가 없다”고 했다.
실내에서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더위 먹는’ 이 날씨에 하루종일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건설 현장 노동자 뿐만이 아니다. 도시가스 점검검침원, 택배기사, 배달노동자 등은 땡볕 아래서 하루종일 움직인다. 대부분의 야외노동자들은 폭염에서 보호받을 안전지침이나 장비도 없이 ‘폭염 사각지대’에서 일하고 있다.
경북 경주에서 일하는 8년차 택배기사 김광석씨(42)는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거의 탈진 상태가 된다”고 했다. 매일 오전 7시에 집을 나와 기본 12시간을 일하는 김씨는 하루 평균 250개의 택배를 배달한다. 김씨는 “배달상품 중에 ‘물’은 출렁거려서 균형을 잡기도 힘들고 무거운데, 여름에는 배송량이 다른 계절에 비해 거의 두 배 늘어난다”고 말했다. 땀이 비오듯 쏟아지지만 소변을 해결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물도 맘껏 마시지 못한다. 김씨는 “업체에서 서비스의 일환으로 당일배송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고, 퇴근시간 전에 배달이 안 되면 고객들이 언제 배달되는지 묻는 전화를 많이 해서 낮시간에 어떻게든 배달을 마쳐야 한다”고 말했다.
패스트푸드점인 맥도날드에서 배달일을 하는 라이더 박정훈씨(33)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머리가 어지럽고 아지랑이가 올라가는 게 보인다”고 말했다. 도로는 뜨겁고, 대형차량은 열기를 내뿜는다. 유니폼으로 규정된 긴 청바지가 땀을 계속 머금고 있어 불쾌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박씨는 “하루에 총 배달이 20건 정도인데 여름엔 평균 5~6건이 더 늘어난다”며 “가장 더운 오전 11시에서 오후 2시 사이에 배달량은 폭증한다”고 말했다.
요즘같이 폭염이 계속되는 여름에는 작업량을 줄이고 적절한 휴게장소 제공, 안전장비 지급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는 2일 낮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는 가스검침원 등과 같이 폭염 속에서도 일해야 하는 옥외 노동자에게 맞는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가스검침 업무의 특성상 적절한 휴게 장소를 찾을 수 없고, 수분 보충도 쉽지 않다”며 “서울시는 옥외 노동자에 대한 안전 지침을 마련하고 실제 지침이 잘 적용되는지 지속해서 관리 감독해야 한다”고 했다.
김윤수 공공운수노조 조직부장은 “점검검침원이 정해진 기한 내에 검침을 다 마치지 못하더라도 우선 그 달에는 전월샤용량 대비로 고객들에게 요금을 고지하고 그 다음달에 검침을 완료하는 식으로 조정을 할 수도 있다”며 “서울시는 이제라도 점검검침원의 작업량을 조절해서 충분한 휴게시간을 주는 등 폭염시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맥도날드 ‘배달 알바’로 일하는 박정훈 전 알바노조 위원장은 지난달 25일부터 서울의 한 맥도날드 매장 앞에서 ‘폭염수당 100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박씨는 “사업주는 쿨조끼나 여름용 유니폼, 우천 시·폭염 시에 쓰기 적합한 헬멧·신발처럼 기후변화에 따른 안전장비를 지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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