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 분야 ‘적폐청산’을 담당하는 장관 직속 자문기구인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현대·기아차에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라고 명령하라”고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가장 오래된 비정규직 문제 중 하나인 현대·기아차 불법파견이 2004년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단 후 14년만에 출구를 찾게 됐다.
개혁위는 지난달 31일 전체회의를 열어 현대·기아차 불법파견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단결권 제한 등의 과제에 대한 조사결과와 권고안을 의결하고 9개월간의 활동을 마쳤다고 1일 밝혔다. 개혁위는 “노동부가 지금까지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실태를 방치하고 대법원 확정판결 이후에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며 “불법파견 당사자 확정을 위한 조사를 한 뒤 직접고용 명령을 내리라”고 권고했다. 노동부는 “개혁위 권고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현대차 등의 비정규직 문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자동차공장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생산라인 일부를 맡기는 ‘사내하청’ 방식을 도입하면서 싹이 텄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에서 수주한 일감을 자체적으로 처리해 결과물만 납품해야 합법적인 도급이지만,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원청 지시를 받으며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슷한 일을 했다.
2004년 노동부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 전원이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했지만 2년 뒤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2010년에는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하다 해고된 최병승씨가 낸 행정소송에서 불법파견 판결을 내렸다. 2015년에는 현대차 내 모든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했다. 기아차도 마찬가지다.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652명은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1심과 2심 모두 승소했다.
개혁위는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노동부가 이들을 직접고용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리지 않고 불법파견 범위를 줄이거나 사건 처리를 미뤘다고 비판했다. 수사가 늦어진 것은 노동부와 검찰의 합작품이었다. 개혁위 조사 결과 노동부는 2010년 8월 불법파견 고발을 접수했지만, 5년이 지난 2015년 10월에야 수사를 마치고 검찰에 송치했다. 근로감독관이 일부 공정에 대해 파견법 위반이라고 판단했지만 검사가 불법파견 대상을 훨씬 좁게 해석하라고 수사지휘를 한 사실도 확인했다. 개혁위 관계자는 “당시 수사보고서를 모두 검토해보니 노동부가 법원 판결 취지를 좁게 해석했고, 검찰이 이보다 대상을 훨씬 좁혀 송치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2015년 7월 접수한 기아차 불법파견은 당시 사측과 정규직 노조의 협의가 진행중이었다는 이유로 장기간 사건을 방치해 3년 넘게 수사중이다. 지난해 노동부가 수사를 재개하면서 근로감독관이 두 차례 수사지휘 건의를 올렸지만 검찰이 이를 묵살했다. 최근 노동부는 한국지엠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개혁위는 이와 비교해 ‘형평성 문제’도 지적했다.
개혁위는 사측에 직접고용 명령을 내리는 조치와 함께 “당사자 간 협의·중재 테이블을 만들라”고도 권고했다. 노조는 현재 현대차에서 6000명, 기아차에서 3500명이 불법파견 형태로 일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개혁위 권고에는 불법파견 사건을 부당하게 처리한 데 유감을 표명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또 법원 판례를 반영해 노동자 파견의 판단 기준에 대한 지침, 사내하도급 파견 관련 사업장 점검 요령 등도 개정하라고 요구했다. 파견법 위반 근로감독과 수사를 질질 끌지 못하도록 ‘신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지침 및 기준’도 마련하라고 했다.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조는 개혁위 권고안이 발표된 뒤 기자회견을 열고 “김 장관은 즉각 권고안을 받아들여 불법파견 비정규직들의 직접고용을 명령하고 원청과 비정규직 노조 간 교섭 개최를 중재하라”고 요구했다.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은 “2004년 노동부가 불법파견 판정을 내린 뒤 14년간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었다”며 “하루빨리 비정규직 당사자들과 회사가 대화할 수 있도록 노동부가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말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조치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는 대신 2014~2016년 정규직·비정규직 노조 등과 합의한 대로 ‘정규직 특별채용’ 방식으로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라, 정규직화 방식에 대한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이와 별도로 당사자간 협의·중재를 통해 지난해까지 6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데 이어 2021년까지 9500명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기아차도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1049명을 채용하는 것으로 사내하도급 채용문제를 사실상 마무리 지었다고 밝혔다.
개혁위는 관심을 모았던 전교조 문제에 대해서는 “법외노조 통보의 근거가 된 법규를 폐기하라”고 권고했다. 개혁위는 전교조 문제를 조속히 해결할 것을 권고하며 ‘노조 아님’ 통보를 즉시 노동부가 직권취소하는 방안과, 법외노조로 만든 근거가 된 노동조합법 시행령 조항을 삭제해 해결하는 방안 등 2가지를 제시했다.
하지만 노동부가 즉각 “직권취소는 하지 않겠다”고 못박았기 때문에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둘 수 없게 한 현행 노조법 시행령이 고쳐지지 않는 한 전교조 문제는 조기해결이 어렵게 됐다. 노동부는 “현재 노사관계법제도 전문가위원회가 제도 전반을 논의중인 만큼 충분히 검토하겠다”며 노동부는 “행정 조치를 취소하는 것보다는 법령상 문제가 되는 조항을 개정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밝혔다. 전교조는 “노동부가 개혁위의 즉시 취소 권고를 회피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은 법외노조 철회를 요구하며 7월 16일부터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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