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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돈 벌기

주 52시간제 시행 한 달, 대기업 사무직들 ‘방긋’

이혜인·남지원 기자 hyein@kyunghyang.com
<b>정시 퇴근 행렬</b> 30일 오후 6시를 조금 넘긴 시간, 서울 세종대로 인근에서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나서고 있다.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정시 퇴근자가 부쩍 늘어난 모습이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정시 퇴근 행렬 30일 오후 6시를 조금 넘긴 시간, 서울 세종대로 인근에서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나서고 있다.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정시 퇴근자가 부쩍 늘어난 모습이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회사를 한 20년 다니면 일찍 퇴근하는 것이 어색해서 괜히 술 마시러 가는 상사들처럼 되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조금 희망이 생겼습니다.”

다음달 1일은 주 52시간 근무제(주 52시간제)가 시행된 지 한 달이 되는 날이다. 주 52시간제가 적용되는 300인 이상 사업장 중에서 근무시간 계량이 쉽고 인력이 중소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충분한 대기업 사무직종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보인다.

주 1회 하던 운동 주 4회 하고 유연근무제·연차 사용 활발

서울 강남의 한 대기업에 근무하는 이모씨(34)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확실히 근무시간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출근시간은 주 52시간제 시행 전인 9시로 똑같지만, 퇴근시간이 앞당겨졌다. 공식적인 퇴근시간은 오후 6시지만 이전에는 눈치를 보느라 6시30분~7시에 퇴근하고, 일이 있을 때면 종종 9시나 10시까지 일했다. 하지만 7월 한 달 동안 이씨는 출장을 제외하고는 6시~6시20분 사이에 정시퇴근했다. 이씨는 “주 1회 하던 운동을 4회로 늘렸고, 운동하고 와서도 시간이 남아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다 잔다”고 말했다.

은행원 심모씨(32)는 “저녁이 생겼다”고 했다. 심씨의 은행은 출퇴근 시간이 모두 바뀌었다. 출근시간은 오전 8시에서 8시20분으로, 퇴근시간은 오후 7시에서 6시로 변경됐다. 이달부터 영어학원을 다닌다는 심씨는 “유연근무제나 연차 사용이 더 활발하게 이뤄지는 분위기”라며 “아이가 있는 직원의 경우 남녀 구분 없이 유연근무제를 활용해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 근무하는 김모씨(40)는 이전보다 1~2시간 빠른 오후 6시 정시퇴근을 한다. 김씨는 “요새는 다들 평일 술 약속도 꺼리는 분위기라서 곧장 집으로 가 아이들을 돌본다”고 말했다.

주 52시간제의 취지에 대해 알리는 반복적인 사내 공지, PC·사무실 전등을 강제로 꺼버리는 ‘PC오프제’ 및 ‘퇴근시간 소등’은 장시간 근로가 ‘문제’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이씨는 “지난달부터 오후 5시55분이면 주 52시간제에 대해 설명하면서 어서 퇴근하라는 내용의 사내방송이 매일 나왔고, 6시면 컴퓨터가 꺼졌다”며 “그 덕에 눈치를 덜 보고 집에 갈 수 있었다”고 했다. 은행원 심씨는 “인사부에서 지속적으로 부점장급을 통해 근무시간 정상화 확산과 인식 제고에 대한 공문을 발송하면서 위에서부터 주 52시간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기업 사무직 “저녁 생겨”…변화의 희망

근무시간을 정확하게 계량할 수 있는 직무이면서 제도 시행 전에 인력 충원을 제대로 한 기업일수록 근무시간 단축이 획기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강원대병원에서 환자이송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간호조무사 김덕중씨(40)의 근무 패턴은 2교대 15시간 근무에서 3교대 8시간 근무로 바뀌었다. 병원 측은 제도 시행에 맞춰 이 업무에 대한 직원을 8명에서 총 13명으로 늘렸다. 김씨는 “근무시간이 줄어드니 확실히 업무 집중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업무량 감소·체계 개선 없인 장기적으로 한계 있을 듯

물론 아직 개선해야 할 점들도 남아 있다. 회사원 이씨는 “절대적인 업무량의 감소나 보고 체계의 개선 없이 근무시간 내에 업무를 다 마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한계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간호조무사 김씨는 “쉬는 시간은 늘었어도 수면 패턴이 일정치 않아 피로도가 생각만큼 크게 줄진 않았다”고 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은 “정부의 노동시간 단축 목표가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려는 것이고, 그만큼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도 따라야 하는데 노동 강도가 강해지는 것은 문제”라며 “정부의 지속적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