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중한 업무로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악성 민원인에게 시달리다가 뇌출혈로 숨진 근로감독관에게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ㄱ씨는 2016년 2월부터 고용노동부 진주지청 근로감독관으로 근무하며 가족들과 떨어져 관사에서 지냈다. 업무시간은 주5일 근무가 원칙이지만 진주지청의 관할 범위가 넓은 데다 맡은 사건이 유독 많아 ㄱ씨는 평일엔 거의 자정이 다 돼야 퇴근했다.
그해 5월 중순 ㄱ씨는 해고된 노동자 ㄴ씨의 진정사건을 맡았다. ㄴ씨는 해고예고수당을 받게 해 달라며 ㄱ씨에게 정도를 넘어서는 민원을 넣었다. 처음 일주일간은 5차례, 다음 한 달간은 65차례, 그다음 한 달엔 무려 98차례나 사무실과 휴대전화, 고객지원실 등으로 전화해 욕설과 협박을 했다.
ㄴ씨는 ㄱ씨의 카카오톡으로 ‘가만두지 않겠다, 죽고 싶어 환장했느냐, 검찰에 고소하겠다, 노동청에서 잘라버리겠다’는 등의 협박성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근무시간뿐만 아니라 새벽이나 밤, 휴일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ㄱ씨에게 전화해 자기 주장을 반복했고, 2∼5분 간격으로 전화하거나 전화를 끊지 않고 1시간 이상 같은 말만 되풀이하기도 했다.
두 달 정도 민원에 시달리단 ㄱ씨는 그해 7월20일 아침 관사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뇌동맥류 파열에 의한 뇌출혈이었다. 유족은 공무원연금공단에 유족보상금을 청구했지만 공단은 뇌출혈이 직무 수행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보상금 지급을 거절했다.
법원은 그러나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가 기존의 뇌동맥류와 겹쳐서 뇌출혈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는 ㄱ씨 유족이 공단을 상대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라며 낸 소송에서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망인은 과중한 업무로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특정 민원인의 반복된 악성 민원을 감내하면서 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근로감독관 업무에 따른 통상적인 스트레스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와 같은 스트레스 상황은 망인의 사망 직전까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해왔다”며 “결국 공무상 과로와 스트레스가 기존 뇌동맥류와 겹쳐 뇌출혈을 유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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