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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왜 이래

[날씨가 왜 이래]삼복 더위 사이에 ‘입추’가 있는 이유…선조들의 속임수?

“우리 선조들의 속임수지. 복중에 슬쩍 입추를 끼워놓는다든가, 어감으로 혹한이나 혹서의 괴로움을 덜려는 천진한 속임수야.” - 박완서, <나목> 중에서

가을의 문턱이라는 ‘입추(立秋)’를 지났지만 폭염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입추 다음날인 8일 낮 최고기온이 36도를 오르내리고, 말복인 16일에도 35도 안팎의 더위가 예상되고 있다.

절기상 입추인 7일 부산 강서구에 있는 들녘에서 부산농업기술센터 직원들이 벼작황과 병해충 상황을 조사하고 있다. 직원들은 처서(8월 23일) 전후에 이곳에서 벼수확 작업을 한다. _ 연합뉴스


절기와 실제로 느끼는 날씨는 왜 다른 것일까. 과거 농경사회에서 사용된 24절기가 중국 춘추전국시대 중심지였던 황하강 유역의 특징에 맞춰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위도와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명칭과 실제 나타나는 날씨에 차이가 있다.

우리 속담 중에 “대한(大寒)이 소한(小寒) 집에 놀러갔다가 얼어죽었다”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기상청이 1919년부터 2008년까지 24절기의 기온 변화를 분석한 ‘기후변화 이해하기-입춘에서 대한까지’를 보면, 소한의 최저기온이 대한보다 낮은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여름철의 경우에도 더위가 가장 심하다는 대서(大暑)가 7월23일쯤인데 최고기온이 가장 높았던 날은 8월10~11일(30.8도)이었다. 실제 가장 더운 시기는 입추 즈음인 것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절기와 실제 날씨의 차이가 벌어지는 경향도 있다. 한반도 24절기별 평균기온은 과거(1919~1948년)에 비해 최근(1999~2008년) -0.3~3.3도까지 변화했다. 기온이 오르는 추세가 뚜렷했고, 평균기온을 기준으로 과거보다 각 절기별 시점이 2~19일 앞당겨졌다. 여름철을 보면, 더위가 시작되는 소서(小暑·7월7일경)에는 장마전선이 정체되면서 비가 많이 내려야 하는데 1970년대 이후에는 비가 내리지 않은 날이 많았다. 대서 평균기온은 0.3도 올랐고, 입추는 기온이 0.6도 올랐다. 더위가 물러나고 일교차가 커지는 처서(處暑)는 과거보다 시점이 이틀 당겨지고, 일교차는 2.2도까지 줄었다.

한반도가 더워지고 있다는 의미다. 일년 중 가장 덥다는 ‘삼복(三伏)’을 버틴 개도 요즘 여름 날씨면 한참 더 엎드려 있어야 한다. 24절기에 포함 안돼서 ‘잡절’로 불리는 삼복의 기준점은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와 가을에 들어선다는 입추이다. 하지로부터 세 번째로 돌아오는 경일(庚日, 60간지(干支) 중에 경(庚)자가 들어가는 날)이 초복, 네 번째 돌아오는 경일이 중복이 된다. 말복은 입추로부터 첫 번째 맞는 경일이다. 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된 올해는 말복을 지나 처서(23일)까지도 폭염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윤기한 기상청 사무관은 “지난해는 처서 즈음에는 더위가 꺾였다”면서 “요즘 추세로는 9월 초까지를 여름으로 봐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30년간 입추일 서울의 기상 정보. 해마다 등락은 있지만, 기온의 상승 추세를 살펴볼 수 있다.   | 기상청

최근 30년간 입추일 서울의 기상 정보. 해마다 등락은 있지만, 기온의 상승 추세를 살펴볼 수 있다. | 기상청

9일 전국에 구름이 많고, 곳곳에 소나기가 내린다. 소나기는 10일에도 이어지는데 국지적으로 매우 강한 비가 내릴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최고기온 36도 안팎의 폭염이 계속되며, 습도가 올라 불쾌지수도 상승한다. 중기예보에선 18일에도 서울 34도의 무더위가 예상된다. 윤기한 사무관은 “이전에는 대기 중·하층부터 상층까지 뜨거운 공기로 차있어 대류 현상이 활발하지 못했는데, 최근 상층 티베트 고기압의 세력이 조금 약해져 하층의 뜨거운 공기가 상대적으로 차가운 상층으로 오르면서 대기불안정에 따른 소나기가 내리고 있다”면서 “하지만 북태평양고기압의 세력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에 35도 안팎의 더위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