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

[정리뉴스]‘언론부역’ 당사자가 방문진 이사 된 까닭은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수정2018-08-16 07:52:45
 

지난해 10월 11일 제17차 정기이사회가 열리는 방송문화진흥회 앞에서 최기화 MBC 기획본부 본부장이 MBC 노조원들이 들고있는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가 적힌 피켓들 사이로 입장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방송통신위원회가 언론계에서 ‘부적격 후보자’로 지목한 두 인물을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로 선임해 논란이 일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이들을 추천했다고 알려지자 MBC 구성원들과 언론단체들은 그동안 비판 받아온 ‘정치권 나눠먹기’ 관행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방통위는 지난 10일 비공개로 전체회의를 열고 후보자 24명 가운데 방문진 이사 9명과 감사 1명을 선임했다. 강재원 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김경환 방문진 현 이사, 김도인 전 MBC 편성제작본부장, 김상균 방문진 현 이사장, 문효은 전 다음 부사장, 신인수 법무법인 여는 변호사, 유기철 방문진 현 이사, 최기화 전 MBC 기획본부장, 최윤수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가 11기 방문진를 이끌게 됐다. 감사에는 김형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가 임명됐다. 임기는 13일부터 3년이며 이사장은 이사회에서 투표로 결정한다.

‘부역자 명단’에도 오른 인물…뒷배경엔 정치권 ‘오더’?

최기화 전 본부장과 김도인 전 본부장은 정치적 편향성과 자질 문제로 언론계가 강하게 반대해왔다. 김장겸·김재철 사장 시절 요직을 두루 거치며 방송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부당노동행위를 주도한 탓이다. 지난해 언론노조가 발표한 ‘언론장악 적폐 청산을 위한 부역자 명단’에 두 사람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최 전 본부장은 박근혜 정권 때 보도국장으로 편파·왜곡 보도를 주도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2015년 자사 보도를 비판한 노조의 보고서를 찢고 노조 간사와 접촉하지 말라고 지시해 물의를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최 전 본부장은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김 전 본부장은 2011년 라디오본부 편성기획부장 시절 국정원이 작성한 문화방송 장악 문건에 따라 김미화·윤도현 등 블랙리스트 방송인 퇴출에 앞장섰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앞서 방통위는 그동안 이사진을 꾸리는 과정에서 정치권에 휘둘리던 관행을 버리고 국민 의견을 수렴해 후보를 검증하겠다고 했다. 방송문화진흥회법상 방통위에 방문진 이사 선임 권한이 있지만 실제로는 정부여당이 6명, 야당이 3명을 선임해왔다. 이번에도 자유한국당이 2명, 바른미래당이 1명의 이사를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한국당은 문제가 된 최 전 본부장과 김 전 본부장을 추천했다.

MBC 노조는 10일 성명을 내고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자유한국당 추천 김석진 방통위원에게 ‘최기화, 김도인으로 밀어붙이라’는 ‘오더’를 내렸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 정치권이 개입하고 방통위는 사실상 들러리만 선 꼴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방송독립시민행동 회원들이 공영방송 이사 후보자를 검증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방송독립시민행동 제공


“이럴 거면 왜 국민 의견 수렴했냐…선임 원천 무효”

241개 언론·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국민참여 방송법 쟁취시민행동’(방송독립시민행동)은 이번 이사 선임을 두고 “국민 의견 수렴 절차는 요식행위에 불과했고, 선임 기준과 과정을 공개하라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묵살한 것은 오늘과 같은 밀실, 담합, 위법 인사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방송독립시민행동은 지난달 방통위가 KBS와 방문진 이사 후보자 명단을 공개한 뒤 국민의견을 수렴할 때 두 사람이 부적격하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MBC 노조도 “형식만 공모와 검증이었을 뿐 사실상 정치권이 시키는대로 한 것”이라며 “이럴 거라면 애초에 국민의 의견을 듣는 절차는 왜 밟은 것이냐”라고 목소리를 냈다. 노조와 방송독립시민행동은 이사 선임 취소를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인선 명단을 보면 방통위가 지역성과 성평등, 다양성 구현 또한 실패했다”며 “탈법 관행의 밀실과 담합 인사를 이번에도 반복했다. 법대로 하지 않은 이번 방문진 이사 선임은 원천 무효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KBS와 EBS 이사 선임도 앞두고 있다. 방송독립시민행동은 “현 방통위원들에게 방문진 뿐만 아니라 곧 선임을 앞둔 KBS와 공모 중인 EBS이사회 이사 선임도 맡겨서는 안 된다. 정치권의 개입을 원천 차단하고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가운데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정을 다시 밟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