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르치고 배우기

“40년 만에 ‘사립유치원 원장’이 부끄러웠다”

ㆍ위성순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 회장

위성순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 회장이 18일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집단 휴업 파동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강윤중 기자

위성순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 회장이 18일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집단 휴업 파동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강윤중 기자

“사립유치원 원장이란 사실이 40년 만에 처음으로 부끄러웠다.” 

서울 강서구에서 사립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는 위성순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전사연) 회장(60)은 최근 벌어진 ‘한유총 사태’를 보면서 “유아교육 인생 40년을 처음으로 후회했다”면서 “사립유치원장이라고 어디 가서 말하기도 부끄럽게 됐다”고 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소속 유치원들이 주도해 벌어진 집단 휴업 사태는 막판에 한유총 측이 휴업 계획을 철회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18일 교육부 집계에 따르면 휴업을 한 유치원은 전국에 한 곳도 없었다. 

하지만 사립유치원들에 대한 따가운 시선은 위 회장처럼 수십년 동안 유치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돌봐온 이들에겐 ‘없던 일’로 치부할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사립유치원 원장들은 싸잡아 ‘아이를 볼모로 돈을 벌려 하는’ 사람들이 돼버렸고, 국·공립유치원들과 결이 다른 다양한 교육을 시도해오던 이들까지 그런 시선을 이겨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휴업 파동’에 전국의 모든 사립유치원들이 동조했던 것은 아니었다. 위 원장이 이끄는 전사연은 한유총에 이어 두번째로 큰 연합단체로, 전국 사립유치원 4200여곳 중 1200여곳이 속해 있다. 위 회장은 매일 아침 유치원 정문에서 원아들과 학부모를 맞는다. 하지만 18일에는 도저히 문앞에 설 수가 없었다고 했다. 전사연은 집단 휴업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미리 발표했는데도 그랬다. 이날 만난 위 회장은 “휴업을 하지 않는다고 학부모들에게 알리긴 했지만 사립유치원 원장으로서 부끄러워 한 분도 못 만나겠더라”고 했다.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한 위 회장은 1980년부터 교사 생활을 시작했고 1995년 유치원을 세워 원장이 됐다. 그는 “처음 교사할 때 아이들이 엄마보다 나를 더 좋아해서 머리모양이나 옷차림을 따라하기도 했다. 그 아이들이 이제 중년의 학부모가 돼 우리를 비난하니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러려고 교사가 된 것은 아닌데….” 그는 “평생 유아교육에 몸담은 선배들은 정말 열정이 있는 분들이었고 오로지 아이들이 좋아서 유아교육 외길을 걸어왔는데 이런 일로 비난받는 게 가슴 아프다”고 했다.

위 회장은 이번 파동을 한유총 소속 일부 강경파가 주도한 것이라고 봤다. “한유총 소속 유치원 원장들도 집단 휴업에 많이 참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얘기하더라”며 “교육청에서 공문도 왔고, 원장들도 학기 중에 임의로 휴업하는 것은 불법임을 다 안다. 휴업을 강행했어도 실제 참여한 유치원이 많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유총은 1995년 출범했고, 전사연은 원로 축에 속하는 원장들을 중심으로 2010년에 만들어졌다. 한유총이 당국이 추진하던 사립유치원 평가를 거부하던 상황이었다. 당시 서울의 한 유치원과 평가위원 사이에 갈등이 있었는데, 그걸 빌미로 사립유치원들 모두 평가를 보이콧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평가를 준비하던 원장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위 회장 등 원장 300여명은 당국의 설명을 듣고 평가에 동참하기로 했고, 이 사건은 전사연이 출범하는 계기가 됐다. 

위 회장은 “유치원 평가가 2008년 시작돼 이제 10년이 됐는데 한유총은 아직도 평가에 반대하고 있다”며 “(직능)단체는 정부가 정책을 입안할 때 현장에 필요한 정책이 되도록 협력하는 역할을 해야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위 회장이 특히 이번에 심각하게 생각한 것은 아이들을 볼모로 삼은 행동이었다. “사안에 대해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는 있지만 아이들을 볼모 잡은 것은 무조건 잘못한 것”이라며 “한유총에 소속된 원장들조차 이번 사태로 ‘한유총이 우리를 시궁창에 박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가장 문제가 되는 이들은 유치원을 여럿 운영하는 사람들”이라며 “많게는 15곳을 운영하는 원장도 있다. 규모가 클수록 비리의 온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사립유치원을 통틀어 매도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유총의 행태와 일부 사립유치원은 문제가 있었지만, 사립유치원들이 목소리를 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국가가 유아교육을 지원하고 관리하게 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는 “나라가 가난할 때에는 사립유치원이 유아교육의 한 축을 담당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이제 유아교육도 공교육으로 가야 한다는 전제에 동의하며 사립들도 발맞춰 가려고 하지만, 이번 파동을 계기로 정부도 사립유치원 지원 정책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감사가 시작된 것은 누리과정 지원금을 받은 2013년 이후의 일이다. 그 전까지 사립유치원들의 회계는 ‘알아서 하는’ 식이었다. 유치원들이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는 장치를 진작부터 만들어가면서 정부가 정책을 추진했어야 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전국 사립유치원의 80%가량은 법인이 아닌 개인 소유다. 당국은 이를 법인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법인 소유가 되면 출연금과 법인세, 취득세 등을 내야 하는데 이는 영세한 유치원들에겐 큰 부담이다. 법인으로 전환하면 연간 수익의 절반가량을 출연금으로 내야 한다. 위 회장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사립유치원 원아 1인당 정부의 월 지원금 29만원 중 22만원은 정규시간에 대한 교육과정 지원금이고 7만원은 방과후과정 지원금이다. 위 회장은 당장 사립유치원의 정부 지원금을 올려주기 힘들면 방과후과정 지원금을 전액 교육과정 지원금으로 바꿔 전체 학부모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