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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왜 이래

[날씨가 왜 이래]가을장마? 한해 날씨 절반 결정하는 북태평양고기압의 정체는

충청과 전북, 영남과 경기 남부 강원등 전국 곳곳에 호우경보와 주의보가 내려진 것과 달리 27일 제주시 북촌 앞바다에서 바라본 제주의 해뜨는 하늘은 붉고 푸르게 물들어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충청과 전북, 영남과 경기 남부 강원등 전국 곳곳에 호우경보와 주의보가 내려진 것과 달리 27일 제주시 북촌 앞바다에서 바라본 제주의 해뜨는 하늘은 붉고 푸르게 물들어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가을 장마’가 찾아온 걸까. 이번주 후반까지는 비구름이 중부와 남부를 오르내리며 장대비를 뿌릴 것으로 예보됐다. 평상시 늦여름부터 초가을 사이에 나타나는 가을 장마처럼 한반도 상공에 정체된 비구름대가 만들어져 있기는 하지만, 이번 비는 흔히 가을 장마라고 부르는 현상과는 거리가 있다. 유독 강했던 북태평양고기압이 아직도 우리나라 쪽으로 세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7일 기상청에 따르면 경기북부와 강원북부를 제외한 전국 대부분 지역에 많은 비가 내렸다. 특히 호남과 일부 영남지방을 중심으로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50㎜내외의 강한 비가 내렸다. 경남 산청군에는 이틀간 400㎜에 가까운 집중호우가 쏟아졌고, 전남 구례와 진안, 장수 등의 이틀간 누적강수량도 300㎜를 넘으며 피해가 속출했다. 충청남도와 경기남부 등에도 100㎜가 넘는 비가 쏟아졌다.

기상청은 이날 밤부터 기압골이 다시 강화되면서 28일 낮까지 전국에 많은 비가 내리겠다고 예보했다. 비는 이번주 후반까지 중부와 남부를 오가며 계속되다가 중부지방은 목요일부터, 남부지방은 금요일부터 그칠 것으로 보인다. 장대비가 내리면서 농업용 저수지의 저수율은 눈에 띄게 올라갔다.

8월 말에서 9월 초 사이 늦여름과 초가을에 1주일가량 내리는 비를 흔히 ‘가을 장마’라고 한다. 정식 기상 용어는 아니고 초여름에 발생하는 장마와 발생 원인도 다르지만 한동안 비가 계속된다는 뜻에서 관행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 비는 평상시 나타나는 가을 장마와 발생 원인이 다르다. 가을 장마는 여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뀌는 과정에서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가 남동쪽으로 물러나는 북태평양고기압을 밀어내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차가운 공기가 한반도로 내려오면서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에 비가 그치면 날씨가 선선해지고 계절이 바뀐다.

하지만 올해는 일본에 머물고 있는 북태평양고기압이 아직도 한반도 상공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대신 태풍이 빠져나가면서 그 자리에 찬 공기가 들어왔고, 북태평양고기압의 경계를 따라 중국 열대저압부에서 수증기가 유입돼 정체된 전선이 생겼다. 그래서 비가 그쳐도 한반도가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들어 구름이 많고 평년보다 더울 것으로 보인다. 금요일인 31일 서울의 최고기온은 30도, 최저기온은 22도로 예보됐다. 열대야는 한풀 꺾이겠지만, 남부 일부 지역은 아침 최저기온이 24~25도 수준으로 예보돼 열대야가 나타나는 곳도 있을 수 있다.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한반도 날씨의 절반은 북태평양고기압이 얼마나 확장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북태평양고기압은 말 그대로 북태평양 중위도상에 위치하는 거대한 공기덩어리다. 적도 부근에서 데워져 상승한 공기가 극지방으로 올라가다가 중위도 부근에서 일부가 식어서 하강하는 대기 대순환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전형적인 아열대 고기압이다. 따뜻한 바다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고온다습하다.

이 공기덩어리는 겨울철에는 하와이 동북쪽 바다에 머물다가 여름이 가까워지면 세력을 키워 한반도 상공의 차가운 오호츠크해 기단을 밀어내며 장마전선을 만든다. 여름철에 이 고기압이 강하게 발달할수록 덥고 습한 공기가 유입돼 폭염과 열대야를 늘린다. 특히 올해는 열대 서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높아서 필리핀해 부근의 대류활동이 활발했다. 상층으로 올라가는 뜨거운 공기가 많았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고기압이 평년보다 훨씬 강해졌고, 대기 상층의 뜨겁고 건조한 티베트고기압과 만나 한반도에 역대 최악의 폭염을 불렀다.

태풍도 이 고기압의 영향을 받는다. 북태평양고기압은 대기 대순환 과정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매우 안정적이며, 직경이 수천㎞에 달하고 높이도 높다. 열대성 저기압인 태풍은 그에 비하면 훨씬 약해서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이동한다. 제19호 태풍 ‘솔릭’이 오기 전 한반도에 태풍이 한 번도 오지 않은 이유도 이 고기압의 기세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북태평양고기압이 남동쪽으로 물러가면 길었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찾아온다. 현재로서는 이 시기를 추측하기 쉽지 않다. 워낙 큰 공기덩어리이기 때문에 한번에 수축하기도 어렵다. 기상청은 최근 3개월 기상전망에서 9~11월 평균기온이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아 ‘더운 가을’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북태평양고기압의 영향으로 9월 초반까지는 여름철 더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