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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그후]6년만에 ‘폭염 백서’ 다시 만든다는데…주거개선은 여전히 무대책

서울 광화문 인근도로에서 주변 직장인들이 지열이 올라와 이글거리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서울 광화문 인근도로에서 주변 직장인들이 지열이 올라와 이글거리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정부가 올해 극심한 폭염 뒤 더위 피해도 ‘재난 수준’으로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그 바탕이 될 기본적인 데이터조차 변변히 확보된 게 없다. 그동안 폭염 피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별로 크지 않았고, 피해 실태조사도 2012년 이후 6년 동안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다시 실태조사에 나서기로 했으나 폭염대책이 체계화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여러 부처가 협력해 대응해야 하는데다, 가장 핵심적인 취약계층 주거대책 등은 준비도 예산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질병관리본부는 2012년 이후 중단된 폭염 피해조사를 시작한다고 30일 밝혔다. 정부는 지난 28일 발표된 내년도 예산안에 폭염 취약계층의 인구·사회학적 특징을 파악하는 사업을 반영하고 총 9700여만원을 책정했다. 과거에는 열사병 등 온열질환 피해자의 성별과 나이, 발생장소 등 기본적인 정보만 파악했으나 앞으로는 피해자들의 월평균소득과 학력, 가족관계, 냉방기기를 갖고 있었는지와 같은 세부적인 특징도 분석한다. ‘사회적 부검’을 통해 더위 피해의 실상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온열질환 사망자는 30일까지 48명에 이른다.

분석을 마치면 2012년 이후 6년여만에 ‘폭염 건강피해 백서’가 다시 나올 수 있다. 정부는 그 해 폭염으로 14명이 숨지자 백서를 펴냈지만, 백서를 만드는 작업이 법규에 규정돼 있지 않은데다 폭염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면서 일회성으로 끝났다. 그러다 올해 기록적인 폭염으로 피해가 커지고 온열질환자의 인구·사회학적 정보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자 실태조사를 다시 해 백서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질병관리본부는 매년 5월 중순부터 9월까지 응급의료기관을 찾은 온열질환자 실태를 모니터링하는 ‘온열질환 감시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는 여기에 보고된 질환자 자료에 건강보험 데이터를 종합해 정확한 온열질환자 규모를 추산하고, 지방자치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사망자들의 특성을 정리할 계획이다. 김유미 질병관리본부 미래감염병대비과장은 “미국의 경우 온열질환 사망자와 인구·사회학적 특성이 비슷하면서도 피해를 입지 않은 대조군을 선정해 온열질환에 결정적으로 어떤 원인이 작용했는지 분석한다”라며 “우리도 이런 방법을 통해 향후 어떤 정책을 펴야 하는지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폭염을 재난으로 명문화하는 작업이 국회를 통과하면 향후 발생하는 피해에 지원금을 줘야 한다. 하지만 온열질환으로 숨지는 이들은 대개 다른 병을 앓고 있었던 경우가 많다. 행안부 관계자는 “온열질환 사망자 판단 기준을 어떻게 개선할지 질병관리본부와 논의하고 있다”며 “심의위원회를 구성할지도 판단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폭염 피해는 온열질환에만 그치지 않으며, 대응책도 질환·사망 대책을 넘어 주거환경 개선과 도시 폭염대책으로 확장돼야 한다. 환경부는 햇빛을 반사하는 ‘쿨루프’ 등 도시 ‘열섬’ 현상을 예방하는 방법을 모아 폭염 대응 모델을 만들어 보급할 계획이지만 예산부족이 우려된다. 환경부는 올해보다 48% 늘린 598억원을 기후변화 대응 예산으로 책정했으나 대부분 기업체 온실가스 감축 지원 등에 초점이 맞춰졌다. 국토교통부의 경우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하는 예산은 늘렸지만, 임대주택 혜택을 받지 못하는 취약계층의 주거환경을 어떻게 더 개선할지에 대해서는 답을 내놓지 않았다. 국토부 한 관계자는 “폭염 이후 주거여건 개선을 확대하자는 얘기는 부서 안에서 들어보지 못했다”라며 “다른 쪽에서 대책을 추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