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미혼모 ㄱ씨는 지난 6월 자신이 지내던 ‘원룸텔’에서 돌봐주는 이 없이 홀로 아이를 낳았다. 월세가 싼 대신 환기가 안 되는 열악한 방이었지만. 이 곳을 이용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ㄱ씨는 출산 전후 4개월 동안 일을 하지 못해 월세를 낼 수 없었고 당장 주린 배를 달랠 돈도 없었다. ㄱ씨는 뒤늦게 미혼모 지원 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한 절차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사이 ㄱ씨의 아이는 폐렴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12일간의 입원비는 400여만원에 달했다.
낙태죄를 둔 논쟁은 매년 이어지고 있으나, 아이를 위해 ‘용감한’ 결정을 한 미혼모들의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다수의 미혼모들은 출산 전후 경제사정이 악화돼 비좁은 거처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았으며, 일부 미혼모들은 친척집이나 고시원을 전전하는 등 제대로 된 거처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혼모 지원 단체인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는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미혼모 주거복지 필요성과 개선방안’ 토론회를 열고 열악한 미혼모들의 주거실태를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미혼모들의 사례는 처절했다.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어 집을 구할 돈조차 없던 미혼모 ㄴ씨는 정부의 ‘즉시지원전세임대제도’ 혜택을 받게 됐으나, 본인부담금 350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임신 8개월 상태에서 물류센터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다. 또 광주에 사는 청소년 미혼모 ㄷ양은 아이와 둘이 곰팡이가 핀 원룸에 살고 있었는데, 미성년자라 다른 집을 계약하지 못해 오랜기간 이 곳에 머물러야 했다. ㄷ양은 성인이 된 최근에야 지방자체단체의 도움을 얻어 새 집을 찾기 시작했다.
미혼모들의 열악한 주거는 통계로 드러났다. 김승희 강원대 교수가 통계청 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 현재의 미혼모 가구 중 55% 가량은 아이를 낳기 전까지 15평 이상의 집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출산 이후에는 15평 미만에 사는 비중이 65.5%로 급증했다. 미혼모들은 주거비와 생활비 부담을 크게 느껴 자기 집이 있다고 해도 월세방에 사는 이들이 65%였다. 2016년 기준으로 친척집이나 친구집, 시설 등에 사는 이들은 전체 미혼모의 20%를 차지했다.
네트워크 측은 출산 전후 미혼모들을 위해 정부의 긴급주거지원 대책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재 한부모복지지원법상 ‘일시지원복지시설’이 마련돼 있으나. 이 시설들은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제공돼 미혼모들은 이용하기 힘든 상황이다. 유미숙 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례관리팀장은 “앞으로 생계가 어려운 미혼모들이 지원받을 수 있도록 일시지원복지시설의 지원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혼모들을 위한 임대주택 혜택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현재 미혼모들은 정부에서 제공하는 매입임대와 전세임대, 영구임대주택을 이용할 수 있으나 영구임대나 매입임대는 배점에서 밀려 사실상 이용하기 힘들다. 그나마 이용할 수 있는 전세임대주태도 물량이 부족해 많은 이들이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상태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선미 성북주거복지센터장은 “하자가 있어 장기간 임대되지 않은 매입임대주택을 확보한 뒤 수리해 미혼모들에게 지원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영나 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근본적으로 보면 현재 미혼모들의 주거현황을 파악하고 통계를 만드는 작업부터 미비한 상태”라며 “통계를 제대로 세우고 미혼모에 다가가는 정책이 이뤄져야 어려운 상황에 있는 엄마와 아이를 보다 안전한 공간으로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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