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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야

[인터뷰]사회학자 오찬호 "결혼·육아도 경쟁, 모두가 억울한 대한민국 부모들"

최근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이라는 책을 펴낸 사회학자 오찬호씨가 지난 7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씨는 “출산과 육아마저 경쟁 속에 이뤄지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부모들은 모두가 ‘억울한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최근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이라는 책을 펴낸 사회학자 오찬호씨가 지난 7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씨는 “출산과 육아마저 경쟁 속에 이뤄지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부모들은 모두가 ‘억울한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사회학자 오찬호는 “한국사회 부모들이 ‘죽도록 억울해지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애 키우는 부모 몇 쌍이 모이면 종종 ‘억울함 성토대회’가 일어나는 것을 목격한다. 아내는 애 키우면서 집안일까지 ‘독박’을 쓰느라 억울하고, 남편은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은데 가족 때문에 계속 다녀야 해서 억울하다. 부모가 돈이 없어서 남들보다 좋은 학원을 못 다니는 아이조차도 억울함의 주체가 된다. 부모는 억울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 ‘정답’을 찾으려 하고, 아이가 자신처럼 살게 하지 않기 위해 아이에게 ‘경쟁해서 이기라’고 말한다.

최근 사회학자 오찬호씨(40)가 사랑에 기반해야 하는 연애, 결혼, 출산, 육아가 고통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사회를 분석해서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이라는 책을 냈다. 그는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진격의 대학교> 등의 책에서 차별을 내재화한 대학생들에 대해서 써왔다. 이 책은 두 아이의 아빠인 오씨가 자신을 포함한 부모들을 관찰하면서 느낀 것들을 사회학적으로 풀어낸 책이다. 지난 7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그를 만났다.

“제 이야기를 불편해하시는 분이 많더라고요. ‘그 부부는 왜 이상해졌을까’라는 것이 테마죠. 결혼, 육아에서 나타나는 ‘이상한’ 현상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고, 개인을 비꼬지 않고 사회학적인 시선으로 풀어내고 싶었어요.”

연애부터 육아까지 남녀가 만나서 이루는 공동체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돼있지만 한국사회에서 이 전 과정은 대단한 결심을 동반하는 ‘투자’에 가깝다. 2015년 기준 대한민국 30대 전체의 36.3%가 미혼인 상태에서 결혼은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다. 결혼 후 더 강화되는 가족 내 성차별, 아이를 키우면서 발생하는 경제적 부담을 고려하면 결혼은 마냥 행복한 일은 아니다. 오씨는 “(결혼한 이들은) ‘쿨’한 척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괜한 집착을 보인다”며 “결혼에 대단한 결심을 동반하는 시대는 이렇게 탄생한다”고 말했다.

‘대단한 결심’을 가지고 기혼자라는 커뮤니티에 들어온 이들은 그 안에서 모두와 동일한 기준을 가지고 정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100만원이 훌쩍 넘는 ‘국민 유모차’를 사기 위해 육아박람회에 가고, 아이를 낳으면 모유 수유를 해야만 좋은 엄마인 것처럼 가르치는 산후조리원에 들어간다. 이후에는 엄마의 모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육아서를 열독하고 이를 따르려고 한다.

“일단 결혼, 육아 공동체에 발을 들이고 나면 그 안에 있는 기준을 따르게 돼요. 경쟁사회에서는 1등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모두가 평균이 되고 싶어하거든요. 평균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 결혼, 육아에서도 굉장히 강해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평균치 자체가 굉장히 높아요. 그리고 그 높아진 평균치를 따르는 게 별 효용이 없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더라도 배제되지 않기 위해서 평균이 되려고 하죠.”

경쟁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아도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은 쉽지 않다. 2007년에 결혼한 그에게는 초등학교 3학년 딸과 5살짜리 아들이 있다. 그는 책에서 경쟁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부모들이 사교육에서 벗어나서 아이들을 자유롭게 기르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오씨는 “저도 아이들에게 사교육을 시키고 있다”며 “평범한 사람이 대단한 각오와 결심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하는데,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것도 대단한 ‘다짐’이 되어버리는 사회”라고 말했다.

오씨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기준을 두고 경쟁하듯 결혼과 출산, 육아를 해내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길 바란다. 오씨는 “부모들도 자신이 과부하가 걸렸고 좀 더 시민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스스로 알고 있다”며 “부모가 느끼는 한스러움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