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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야

국민연금 기금위 개선안 발표…‘개악’ 논란

국민연금 기금위 개선안 발표…'개악' 논란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수익률도 낮아 비판을 받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 정부가 ‘메스’를 들이댔다. 기금위를 상설화하고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위원들의 자격 요건을 올리겠다는 방침이지만, 일각에선 오히려 이번 계획이 정부의 장악력을 더 키울 수 있다며 ‘개악’이란 평가를 내렸다.

기금위는 5일 서을 ‘더 플라자 호텔’에서 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의 ‘국민연금 기금운용위 운영개선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기금위 측은 먼저 그간 분기별로 진행된 회의를 사실상 상설 회의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기금위는 사용자와 노동자 단체 관계자들이 참여해 중요한 안건을 사회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기구지만, 그간 별도 사무국도 없이 1년에 5~6차례만 회의를 열어 다양한 문제를 다루기 힘들었다.

회의를 상설화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고 시간이 걸리기에, 우선 기금위는 상근위원을 둬 사실상 상설화에 가까운 효과를 내겠다고 밝혔다. 상근위원들은 운용위에 새로 설치되는 3개 소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회의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연다는 방침이다. 기금위 활동을 지원하는 사무처는 보건복지부에 설치되며, 복지부 장관이 뽑은 사무처장이 기금위 간사 역할을 맡게 된다.

기금위는 앞으로 기금위원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안건은 회의에서 공식 안건으로 논의하는 등 위원들의 참여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이제까지 위원들은 안건을 제안할 권한이 없었으며, 위원장이 올린 안건을 수동적으로 심의하기만 했다. 다만 기금위는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위원들의 자격 요건은 강화할 예정이다. 이제까지 기금위 민간위원 14명은 별다른 자격 요건 없이 가입자단체가 추천한 인사들로 구성됐다. 기금위는 앞으로 민간위원을 금융이나 경제, 자산운용, 법률 등 분야에서 3년 이상의 경력이 있는 이들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기금위는 개선안이 그간 제기된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이라고 했지만, 가입자 단체들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연금행동)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며 반발했다. 이들은 특히 이번 안은 복지부가 사실상 주도해 만든 것으로, 정부의 ‘관치 통제’를 더 강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금행동은 “사실 그간 기금운용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은 복지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대표적인 것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라며 “이런데도 복지부는 기금위의 사무기구를 장학하고 기금 운용을 통제하려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반개혁적인 행태”라고 비판했다.

연금행동은 이번 개선안이 기금위원의 자격요건을 엄격히 정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 관계자들이 기금 운용에 참여할 기회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금행동은 “그나마 이제까지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의 기금 운용 개입을 차단한 것은 가입자 대표의 역할이었다”며 “기금위의 역할은 직접적인 자산운용이 아니기에, 전문성은 외국처럼 적절한 지원과 교육프로그램으로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기금위 위원들도 이번 개선안을 보고받은 뒤 “단순히 위원회 위원의 자격요건을 신설하여 전문성만 강화하기보다, 전문성과 대표성이 상호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기금위는 이날 발표된 개선안은 어디까지나 초안으로, 국민들의 의견을 모은 뒤 11월초 국민연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오늘 발표는 그간 정부가 준비해 온 개선안을 처음으로 국민들에게 알리는 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