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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야

박능후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경영참여 제외…나중에 검토”

지난 4월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 보건복지부 제공

지난 4월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 보건복지부 제공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의결을 앞두고, 관심을 모은 경영참여 여부에 대해 “안건에서 제외됐으며, 나중에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제5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이번 안건에 경영참여 주주권행사는 제외됐다”며 “노후 자산을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해 기업 경영의 감시자 역할을 적극 수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경영 참여가 제외된 점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기금운용위는 이날 ‘국민연금기금수탁자책임에 관한 원칙(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등 3건의 안건을 의결할 예정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국민연금이나 자산운용사와 같은 투자자가 충직한 집사(Steward)처럼 고객이 맡긴 자산을 제대로 관리하게 하는 행동지침으로, 정부는 지난 17일 도입방안 초안을 공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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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장관의 말대로라면,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는 도입하되, 재계의 의견을 수용해 경영 참여에 해당하는 이사 선임·해임, 감사 추천, 정관변경 제안 등은 보류할 것으로 보인다. 박 장관은 다만 “향후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주주활동에 대해서는 금융위원회와 논의해 합리적인 해결 방법을 찾아보겠다”며 여지를 남겼다.

박 장관은 “안건에 경영참여 주주권행사는 제외됐지만, 현재 법률상 국민연금이 행사할 수 있는 적극적인 주주권행사 내용은 모두 포함돼 있다”며 “예컨대 심각한 기업가치 훼손이 발생하면 해당 기업의 이름을 공개하고 공개서한을 보내 공단의 입장을 널리 알 수 있으며, 주주총회에서 관련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기업들이 국민연금의 주주권행사가 경영 간섭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지만 대다수 건전하고 투명하게 운영되는 기업들은 이를 통해 기업가치를 더 높이고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국민연금은 심각한 기업가치 훼손과 주주권익침해 행위로 국민의 소중한 자산에 피해를 일으키는 기업에 대해서만 수탁자로서 주주가치 제고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 눈치본 반쪽짜리 ‘스튜어드십 코드’, 결국 재논의

국민연금이 도입하기로 한 ‘스튜어드십코드’ 논의가 난항에 부딪쳤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때 거수기 노릇만 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국민연금이 국민들 노후가 걸린 기금 운용에서 기업감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 일종의 ‘지침’인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려 했으나 26일로 예정됐던 결정을 결국 보류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26일 오전 회의에서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안에 대해 이견이 많아 의결을 하지 못했다면서 “최대한 빨리 위원회를 열어 다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 회의는 오는 30일로 잠정 결정됐다. 보건복지부가 앞서 내놓은 초안에 담긴 ‘주주권 행사’의 내용이 미흡해 반쪽짜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컸던 것이 의결을 미루게 된 주된 원인이었다.

이번 회의에서 위원들은 사외이사 추천 등 ‘경영 참여’에 해당되는 수준으로 주주권을 행사할지를 두고 논쟁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복지부는 17일 공청회 때 발표한 초안에서 “경영 참여에 해당하지 않는 주주권 행사부터 시작하자”고 했고, ‘기업 눈치보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연금행동’ 등 시민단체들은 “경영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알맹이를 빼버리면 기업을 견제하는 효과가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반면 기업들은 “연기금이 민간기업 경영에 간섭해선 안 된다”며 맞섰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26일 회의 시작 직전에도 “경영 참여는 안건에서 제외했으며, 나중에 검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논쟁이 되풀이됐다. 일부 위원들은 ‘경영 참여로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사를 추천하고 정관을 바꾸는 등 경영에 참여해야 물의를 일으킨 기업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대한상공회의소 등 사용자 위원들은 “연기금이 지나치게 경영에 간섭할 수 있다” “국민연금 가입자 단체들이 기업을 좌지우지하고 기업의 의사결정을 방해할 수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박 장관이 국회에 출석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몇몇 위원들도 자리를 떴고, 의결은 연기됐다. 한 위원은 “위원회의 취지로 봤을 때 표결로만 정하는 것은 맞지 않고, 다시 한 번 이견을 좁혀볼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기금운용위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이 되고 정부 부처 관료들이 당연직으로 참석하며, 사용자 대표와 근로자 대표, 지역가입자 대표와 전문가 등 20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번 회의에서는 경영 참여 여부가 주로 논란이 됐지만, 국민연금이 자산운용사에 의결권을 위임하는 문제를 두고도 견해 차이가 큰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부담을 느낀 정부는 위임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대기업 눈치를 보기 쉬운 자산운용사들에 의결권을 넘기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꼴”이라고 반발한다. 기금운용 실무평가위원회의 한 위원은 “이틀 전 실무평가위 회의에서도 외부 위원들 대다수가 정부의 의결권 위임 방침에 반대했다”고 전했다.

현재 운용위 내부에서는 국민연금의 기업경영 참여는 단계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지만, 시민단체들은 의결 전까지 계속 경영참여 필요성을 설득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용건 연금행동 위원장은 “현재 정부가 내세운 주주권 행사 수준으로는 기업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라며 “처음에 제대로 만들어 도입하지 않으면 단계적인 논의는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고객과 수탁자가 맡긴 돈을 관리운용할 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일종의 지침이자 규범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국민연금기금본부는 환경과 사회, 기업 지배구조 등 52개 지표를 기준으로 매년 1~2차례 기업을 평가하게 된다. 최근 대한항공 경영진 ‘갑질’ 논란에 대해 경고 서한을 보냈듯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위반했을 때 경고를 하거나, 이사 선임 등 주주총회 주요 안건에서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주주대표소송 등 법적 싸움과 주식매각 등의 행동에 나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