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유치원 방과 후 영어 허용···‘오락가락’ 교육정책에 비판 가중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입력 : 2018.10.04 12:44:00 수정 : 2018.10.04 18:22:45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4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자유한국당 이철규 의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유치원·어린이집 방과 후 영어수업을 금지하겠다던 방침을 철회하고 내년부터 ‘놀이 중심’ 영어수업을 허용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4일 “놀이중심 유아교육의 방향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학부모의 영어교육 요구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유치원 방과후 과정에서 놀이 중심 영어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정규 교육과정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아의 흥미와 발달단계를 고려해 노래와 율동, 게임 등으로 구성한 영어 놀이 활동을 허용한다는 계획이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내년도 원생 모집 계획 등이 10월 중 완료되기 때문에 제가 취임하면서 유치원 방과 후 영어 과정 관련해서 더 이상 (결정) 시기를 늦출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학부모들이 유치원 방과 후 영어가 금지되면 사교육이 더 늘 거라는 우려를 많이 해 놀이 중심으로 유치원과 학부모에게 선택 기회를 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봤다”고 했다.

교육부는 향후 시·도교육청이 ‘놀이 중심 영어교육’이라는 원칙 하에 지역 여건 등을 고려해 유치원 방과 후 과정을 운영하는 세부 기준을 마련하도록 할 계획이다. 유치원은 방과 후 영어수업 수요가 있으면 운영위원회 심의·자문을 거쳐 수업을 운영하게 된다. 방과후 영어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별도의 돌봄을 제공한다. 놀이 중심 기준을 벗어난 운영 사례는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철저히 지도·감독할 예정이다.

현재 정규 교육과정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배운다. 선행학습을 금지한 공교육정상화법에 따라 초등학교 1, 2학년은 정규 수업시간은 물론 방과 후 활동시간에도 영어를 배울 수 없다.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을 고려해 지난해 12월 유치원을 대상으로도 같은 규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내놨다가 여론 반발에 밀려 결정을 1년 뒤로 미뤘다. 당시 학부모들은 “그나마 저렴한 서민층 교육프로그램을 없애면 모두 고액 영어학원에 보내라는 말이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교육부가 유치원 방과 후 영어수업을 허용하기로 하면서 초등학교 1, 2학년 방과 후 영어수업을 허용하는 방안도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초등학교 1, 2학년 방과 후 영어수업을 계속 금지하면 유·초등 영어교육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빠른 시일 내에 초등학교 1, 2학년 방과후 과정의 운영 현황을 점검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현재 진행 중인 유치원 방과 후 영어교육 관련 정책숙려제를 찬반을 묻는 방식이 아닌 국민 의견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개선할 계획이다.

지난해 수능 개편을 1년 유예한데 이어 유치원 방과 후 영어수업을 금지하는 문제까지 결정을 미뤘던 교육부의 오락가락 행보를 두고 다시 비판이 일 것으로 보인다. 그간 교육부는 학생과 학부모 등 교육 당사자들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설익은 정책을 들고나와 혼란만 부추겼다. 

교육단체들은 교육부가 소신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이날 논평을 내고 “이번 결정은 유아교육과 공교육의 본질을 고려하지 않고 대중적 영합주의에 의해 교육정책을 좌지우지하겠다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장관 취임 후 이틀만에 최초의 정책 결정이 교육개혁을 위한 횡보가 아닌 유아의 발달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결정한 정책을 뒤집는 퇴행적 결정이라는 점에서 애석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