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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방향’이라던 유은혜의 속도전? 김상곤과의 차별화 속에 정책 뒤집기라는 비판도

유은혜 사회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열린 ‘차담회’에서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은혜 사회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열린 ‘차담회’에서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은혜 교육부총리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유 부총리는 8월30일 후보자로 내정된 직후 그리고 지난 2일 취임식에서 “교육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지만 지난 며칠간의 행보는 유 부총리가 과연 이 말을 되새기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에 충분하다. 그는 취임 첫날부터 고교무상교육을 1년 앞당겨 시행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유치원 방과후 영어교육, 초등학교 1,2학년 영어 방과후과정을 잇따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8일에는 사회복무요원의 장애학생 폭행사건이 발생한 서울의 한 특수학교를 찾아가 긴급간담회를 열고 관련 대책을 ‘깜짝 발표’했다. 유 장관의 이날 방문은 갑작스레 이뤄졌다. 당초 교육부가 지난 5일 공지한 이번주 유 부총리 일정에는 특수학교 방문 내용이 없었다.

그는 이날 오후 서울인강학교를 찾아 학부모 대표 및 교원들과 간담회를 가진 후 병무청과 함께 이 학교 재학생 127명에 대한 피해여부를 전수조사하는 한편 사회복무요원이 배치된 특수학교 150곳에 대해서도 실태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특수학교에 상시 근무할 수 있는 전문상담교사를 늘리고, 장애학생 학교폭력·성폭력 예방을 위한 인권침해 예방 대책을 세운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인강학교에선 최근 장애학생들의 수업을 돕는 사회복무요원들이 학생들을 인적이 드문 곳에 끌고가 폭행하거나 괴롭혔다는 의혹이 불거져 서울 도봉경찰서가 지난주 수사에 착수했다.

약자 보호차원에서 교육부가 관련 대책을 내놓는 것은 마땅하지만 교육계 안팎에선 유 부총리의 이같은 행보가 다소 뜬끔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긴급간담회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된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당초 김원찬 부교육감이 참석하기로 했다가 교육부 요청에 부랴부랴 조희연 교육감의 원래 일정을 조정하기까지 했다.

한 교육 공무원은 “장애학교라는 점을 감안해도 한 학교의 폭행 사건에 부총리가 직접 가서 대책을 발표하는 경우는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일 오후 서울 도봉구 서울인강학교를 방문해 학부모들에게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일 오후 서울 도봉구 서울인강학교를 방문해 학부모들에게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유 부총리가 발표한 무상교육 조기 시행 및 방과후 영어교육 허용을 놓고도 말들이 나온다. 무상교육의 경우 내년도 정부예산이 이미 확정된 상태에서 나온 것으로 예산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와의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 무상교육 재원마련을 위해선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도 개정해야 한다. 준비가 덜 된 상태라는 것이다.

유치원 및 초등학교 1,2학년 방과후 영어교육 허용과 관련해선 평소 그를 지지했던 교육단체들마저 강도높게 비판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유 부총리 스스로 그동안의 의정활동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2014년 당시 유은혜 의원실은 유치원 원장과 교사 387명을 대상으로 한 조기 영어교육 문제점 조사에서 응답자의 51.4%가 유치원 등의 영어 특별활동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자료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전교조 관계자는 “유치원 교육 정상화를 위해선 유치원 뿐 아니라 학원에서의 선행학습도 금지하도록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정부가 사교육 팽창을 조장하는 정책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도 “유 부총리가 교육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고 스스로 말해놓곤 오히려 모든 문제를 속도로만 풀고 있다”며 “지금까지 보여준 정책결정의 방향이 뜬끔없고, 의원 시절 보여준 본인 소신과도 정반대여서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교육계 안팎에선 이같은 유 부총리의 행보가 주요 정책 결정을 공론화에 부치면서 ‘결정장애’라고 비판받은 김상곤 전 부총리와 차별화를 꾀하는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유치원 방과후 영어수업의 경우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금지 방침을 내렸다가 반발에 거세지자 결국 1년 유예한 뒤 공론화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허용 방침 선회로 공론화는 아예 무산됐다.

또한 유 부총리는 내년 4월 총선출마 예정으로 야당 반대를 무릅쓰고 부총리에 임명됐다는 정치적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정책 결정의 속도전을 내고 있는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는 손바닥 뒤집듯이 기존 정책들을 뒤집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교육계 한 관계자는 “방과후 영어교육 허용 방침은 물론 장애학교 간담회 등도 진행 과정을 봤을 때 유 부총리의 정치적 셈법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