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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고 배우기

한국서도 ‘바칼로레아’ 가능할까

“창의융합형 미래인재를 육성하는 수업과 학습이 가능하도록 하는 평가혁신의 방안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7월10일 열린 취임 3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조 교육감의 지시로 서울시교육청은 ‘평가 혁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가운데는 학생들의 시험을 어떻게 혁신할지도 포함돼 있다.


TF는 새로운 시험 중 하나로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IB)’도 들여다 보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시교육청 대강당에서는 현직 교사들을 대상으로 관련 세미나도 열렸다.

일본도 도입한 바칼로레아

IB는 스위스에 있는 비영리 공적 교육 재단 ‘국제 바칼로레아 기구(International Baccalaureate Organization·IBO)’가 주관하는 시험이다. 1968년 외교관 자녀·상사 주재원 자녀 등을 위한 시험으로 개발돼 현재 전세계 146개국 3700여개 학교에서 100만명 이상의 학생들이 이수하고 있다. 교육과정은 초등·중등·고등 3가지인데, 이 중 고등과정인 ‘IB 디플로마 프로그램’은 한국의 고등학교 2·3학년 연령대 학생들이 2년간 이수한다.

유럽의 독일·스위스·노르웨이, 캐나다와 미국 일부 주정부 등은 IB를 오랫동안 대입시험으로 활용해 왔다. 각국의 대입 시험도 있지만 IB를 대입 시험에 준하도록 인정해준다. 일본도 2013년 아시아 최초로 IBO와 협정을 체결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2015년 1월 발표한 교육개혁안에는 IB를 공교육에 도입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지난해 기준 일본 내 60개 학교가 ‘IB 디플로마 프로그램’을 일본어와 영어로 운영했고, 같은해 11월 일본어로 된 첫 IB 시험이 치러졌다. 일본정부는 2018년까지 200개 학교에 ‘IB 디플로마 프로그램’을 도입할 계획이다.

IB 시험, 어떻기에

“시간은 문학 작품의 중요한 주제이다. 시간은 ‘미래를 위한 희망’, ‘잃어버림과 슬픔’, ‘추억의 중요성’ 등 인간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공부했던 작품 중에서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서 논하시오.”(국어)

“한 국가를 예로 들어 산업화가 삶의 수준과 근로 조건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시오.”(역사)

“서로 다른 전통들을 되새기기 위해 시청에서 전통복장을 입고 참여하는 파티를 개최합니다. 당신의 친구에게 당신이 어떤 의상을 택했고, 왜 그것을 택했는지 알려주는 이메일을 쓰십시오.”(외국어)

IBO가 시험문항 예시로 공개한 문제들이다. 5지 선다 객관식, 단답형 주관식 문제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매우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교육전문가들은 이제 ‘답이 정해지지 않은, 학생들의 힘을 길러주는 시험’을 통해 생각하는 교육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국내 IB 전문가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2017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국어 영역을 보면 총 45개의 문제 중 ‘다음 중 적절한 것은’ 유형이 25개, ‘다음 중 적절하지 않은 것은’ 유형이 19개였다”며 “수능이 나온 지 20여년이 지났지만 시험문제의 유형·성격·형태 모두 그때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또 “수능보다 학교에서 보는 중간·기말고사 같은 내신 시험문제가 더 심각하다”며 “내신 시험문제는 등급을 나누기 위해 교사들이 어떻게든 틀릴 만한 문제를 출제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한국형 바칼로레아’는 가능할까

IB 도입을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은 제각각이다. 주로 현직교사들은 ‘공정성 논란’ ‘준비 부족’ 등을 이유로 ‘시기상조’를 주장하는데 반해 IB 전문가들은 ‘국제적으로 검증이 됐다’고 맞서는 모양새다.

지난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신성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실장은 “교육과정이 논·서술형 평가 지도가 가능하도록 구성돼 있지 않다”며 “국어나 사회탐구 과목부터 논·서술형을 도입한 뒤 비중을 순차적으로 늘리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어 “중·고교 6년 동안 충분한 교육이 되지 않은 상태로 수능에서 논·서술형을 즉각 도입할 경우, 또 다른 사교육이 늘어나고 빈부 차에 따른 차이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논·서술형 시험이라 채점에서 공정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 객관식에 익숙한 한국 학생들이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토론회에서 제기됐다.

이현숙 건국대 사범대학 교수는 ‘검증된 시험’이라고 반박했다. 이 교수는 “(공정성 문제는)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채점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고 일부 방안은 현재 대입 논술 채점에서도 이미 반영하고 있다”며 “문제는 채점의 전문성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 사회적 풍토와 1점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입시의 경쟁 구조에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내에도 이미 IB 교육은 들어와 있다. 경기 의왕 경기외고는 영어에 능통한 일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IB 교육을 하고 있다. 한 경기외고 학생은 “IB는 역량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은 기존에 성적이 낮았던 학생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기회가 주어지기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공교육에서 학업에 흥미가 없어 엎드려 자는 아이들에게도 가능할 것”이라며 “아이들이 자는 것은 교육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